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1997)는 참 역설적인 영화이다. 제목과는 달리 전혀 아름답지 않은 사건,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이라는 인류 역사의 비극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생존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는 같은 시대를 다룬 다른 영화들과 달리 시종일관 유쾌하고 낙관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유대인 청년 귀도 오라피체는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사랑을 쟁취하며, 아들과 함께 수용소에 끌려가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는다.

이 영화를 다룬 비평의 일반적인 시선은 '인생은 아름다워'가 유대인 대학살에 관한 영화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건 절반의 진실에 지나지 않는다. 이 영화는 1922년 이탈리아에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들어선 이후 1943년 무솔리니 실각에 이어 독일이 괴뢰정권을 수립하는 긴 기간을 배경으로 한다. 이탈리아에서 본격적인 유대인 탄압과 학살이 자행된 건 1943년부터이며, 영화에서도 홀로코스트라는 소재가 부각되는 건 도라를 향한 귀도의 구애가 성공한 다음, 즉 상영 시간의 절반가량이 흐른 뒤이다. 코미디언 출신인 베니니의 의도는 이와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발견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코미디의 형식-사회적 교정으로서의 희극론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웃음-희극성의 의미에 관한 시론'에서 코미디의 속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웃음은 무엇보다도 교정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모욕감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웃음은 그 웃음의 대상에게 고통스러운 느낌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희극적 웃음이란 개인의 비사회적, 비사교적, 부조화적인 행동이나 태도에 가하는 섬뜩한 징벌이며, '눈에 띌'만큼 유별난 개인의 돌발행동을 목격한 사람들이 그 개인으로 하여금 다시는 그런 돌발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주의하고 자제할 것을 요구하는 일종의 경고가 된다.

사회는 항상 일정한 형태, 자연스러운 흐름을 유지하고 있지만, 누군가의 예기치 않은 행동이 이 과정의 원활함과 유연성을 깨뜨리고 혼란을 일으키며 뭔가 '삐걱'대게 한다면, 그는 조화를 파괴하고 사회의 규율로부터 일탈한 존재가 된다. 바로 이런 순간 사람들은 그런 혼란과 단절을 야기한 이를 보고 웃는다. 요컨대 희극적 웃음이란 사회가 개인을 별난 존재가 되지 않도록 교정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영화나 방송 등에서 일상적으로 쉽게 접하는 코미디 대다수는 이러한 베르그송의 희극 모델에 잘 들어맞는다. 무대 위의 코미디언이 어리석은 짓, 바보 같은 언행을 하면 할수록, 그들이 더욱 고통받을수록, 관객의 웃음 역시 커진다. 사회의 흐름에 쉽게 융화되지 못하는 타자에 대한 소외의 형식. 이처럼 희극적 웃음의 바탕에는 소수에 가하는 다수의, 개인에게 가하는 사회의 잔인성이 깔려 있다. 돌출된 개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비정상'으로 간주하려는 사회적 시선의 폭력이다. 이것이 인류 역사 이래 변함없이 이어져 온 희극적 웃음의 원천이었다.

■뒤집기-세상을 갖고 노는 희극적 웃음의 역전

하지만 베니니는 희극적 웃음에 관한 베르그송의 해석을 정반대로 뒤집어엎는다. '인생은 아름다워'가 코미디 영화로 탁월한 점이 있다면 기존 코미디와는 전혀 상반된 지점에서 희극적 웃음의 가능성을 찾아냈다는 발상의 특이함에 있다. 영화에서 귀도는 단 한 번도 다른 인물들에게 골탕을 먹지 않으며 소외의 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특유의 재치와 임기응변, 뻔뻔해 보일 정도의 자신감과 천진난만함으로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상황에서도 항상 중심에 서며, 상대방으로부터 놀림의 대상이 되고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남을 골탕먹인다. 이건 오랜 세월 이어져 온 희극성의 전제 자체를 뒤집어엎어 버린 일대 혁신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귀도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세상이 된다. 베니니의 시선에는 민주주의가 종말을 고하고 권력에 순종하는 것이 미덕이 된 가운데,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사회 안정의 명목 아래 억압받은 '미쳐버린' 시대야말로 '비정상적'이며 따라서 '비웃음' 당해야 마땅한 것이었다. 이런 시대상을 통해 베니니는 희극적 웃음을 통제와 억압의 수단이 아니라 선(善)과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수단이며, 개인으로 하여금 부조리한 집단과 세상에 두려움 없이 맞설 수 있도록 하는 정신적인 힘으로 재해석한다.

베르그송이 사회철학적인 관점에서 '웃음'을 다루면서 인간성의 저변에 깔린 폭력성을 보았던 것과 반대로, 베니니는 '웃음'을 통해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생명의 역동성과 정치적 해방의 가능성을 본다.

■웃음-삶을 긍정하는 최후의 방법

우리는 귀도가 고통받는 데서 웃는 게 아니라 그의 유쾌함과 즐거운 행동, 삶에 관한 낙천성을 보고 공감하며 웃게 된다. 그는 상황으로부터 '소외'당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자세로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그는 폭우가 쏟아지는 성당 앞 광장에서 레드카펫을 펼쳐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도라의 약혼식에 말을 타고 들어와 그녀를 채가며 당당하게 사랑을 쟁취한다.

강제 노역장에서 '더는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절규하지만, 아들 조슈아를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처형당하는 순간까지 우스꽝스러운 걸음을 걸으며 아들의 시선에서 사라진다. 이 장면들은 희극적 웃음에 관한 베니니의 철학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다.

베니니가 영화 제목을 '아름다운 인생'(La bella vita)이 아니라, '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e bella)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견디기 힘든 시련과 고통, 절망의 구렁텅이에 처해서도 호롱불처럼 가느다란 한 줄기 기쁨의 빛을 찾아내려는 의지가 있다면, 더없이 지난한 인생의 역경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는 것.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웃음'이, 아니 '웃음'을 창출해낼 수 있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 웃음을 통해 우리는 긴장을 풀고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나 '그래, 다시 한 번' 삶을 긍정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뒤에야 우리에게 인생은 선물(dora)이 되고 단단하게만 보였던 삶의 조건들이 조금은 말랑말랑해지지 않겠는가?


# '인생은 아름다워'의 모티브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각본에 큰 영향을 준 것은 베루비노 로미오 살모니가 쓴 수기 '결국 나는 히틀러에게 이겼다'였다. 살모니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에서 살다가 1944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 형제들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은 경험을 책으로 남겼다. 그는 2011년 91세 때 사망했다. 영화 제목은 러시아 혁명 지도자 중 한 사람인 트로츠키가 멕시코에서 암살되기 직전에 남긴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는 글귀에서 따온 것이다. 또 파시즘 시기 이탈리아에 대한 시선과 장면 연출은 동시대를 다룬 이탈리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의 '아마코드'(1974)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는데, 베니니는 펠리니의 후기작 '달의 목소리'(1990)의 주연을 맡았다.

조재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