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부산교구 신자들이 오는 8월 열리는 시복식의 성공 개최를 염원하는 도보 순례를 하고 있다. 천주교부산교구평신자사도직협의회 제공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마르코 8,29)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오는 8월 한국 방문을 앞두고 벌써 마음이 설렌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복식을 통해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는 복자(福者)로 선포된다. 복자는 가톨릭교회에서 죽은 사람의 성덕(聖德)을 증거하여 부르는 존칭 중 하나이다. 1857년 한국 교회에 처음으로 82명의 가경자(可敬者)가 선포되었고, 이들 중 79위가 1925년에 복자에 올랐다. 1984년 한국을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는 103위의 한국 순교자를 성인으로 선포했다. 다만 복자가 성인(聖人)과 다른 점은 그 범위가 보편교회가 아닌 지역에 한정된다는 점에서다.

하느님 나라에서 이미 복된 삶을 누리고 있을 순교자들을 교회가 복자와 성인으로 선포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하느님과 천상교회에 영광을 드리는 기쁨의 순간이겠지만, 시복식은 세상 안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지상교회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가톨릭 혼인예식에서도 사제는 "두 분은 이제 거룩한 혼인 계약을 맺으려는 것이니 서로 오른손을 잡고 하느님과 교회 앞에서 두 분의 뜻을 밝히십시오"라고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할 것을 요구한다. 이때, 정혼자들은 교회와 공동체 앞에서 "예, 약속합니다"라고 언표함으로써 공식적으로 부부라는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젠더 트러블'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주디스 버틀러도 한 인간의 성 정체성은 "여자·남자아이입니다"라는 간호사나 의사의 공식적인 발화(發話) 행위를 통해 주어진다고 주장했다.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인간에게 정체성 확인 작업은 언어적인 발화가 필요하다. 아기가 이미 부모로부터 육체적인 성(sex)을 받았지만, 별도의 인간 언어를 통해 사회적인 성(gender)을 타자와 공동체로부터 부여받게 된다는 것이다.

김춘수 시인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노래했듯이, 123위 복자의 이름이 2014년 8월 한국 교회 안에서 불리고 선포될 때, 그들은 우리에게 와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꽃이 되어줄 것이다. 산 자들의 지상교회와 순교자들의 천상교회 사이의 긴밀한 유대성이 신앙의 언어로 발화(發話)되는 순간, 이미 하느님 나라에서는 복된 시민으로 살고 있을 성인성녀들이 지상의 교회에 아름다운 신앙의 꽃을 발화(發花)시켜줄 것이다.

'성인공경'에서 피터 브라운이 고대 후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성인성녀는 천상과 지상을 연결해주는 "보이지 않는 동반자요 친구"라고 쓰고 있듯이, 죽음 앞에서도 신앙을 '고백했던' 성인들의 이름을 우리의 목소리로 부를 때, 순교자들은 마지막 지상의 여정 앞에서 불안감을 느끼게 될 우리에게 신앙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줄 것이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마르코 8,29) 그러므로 베드로가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의 마을에서 예수님께 드렸던 신앙고백은 단순히 스승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발화 행위가 아니었다. 굳이 확인시켜드리지 않아도 무관한 하느님의 아드님께 대한 선포가 아니라, 스승님의 죽음을 앞두고 불안해하던 베드로 자신의 신앙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오늘 나는 이미 천상교회에서는 정체성을 부여받으신 복된 성인들의 복자 선포를 앞두고 어떻게 나의 신앙고백을 준비할 것인가! 순교복자들의 이름이 불릴 그 날을 앞두고 나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먼저 점검해볼 일이다.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