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묵속 고통 세월호 생존자도
- 희생자와 함께 보듬어 안아야
-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프리모 레비 지음
- 이소영 옮김/돌베개/1만3000원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유대계 이탈리아인 작가 프리모 레비가 쓴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읽으면 이 말이 마지막까지 남는다. 책 자체가 워낙 충격적이면서 인간의 근원에 관한 탐구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독자에 따라 인상이 다를 수 있다. 세월호 참사 탓인지, 지금 이 시점에서는 유독 이 말이 도드라진다. 더욱이 제목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단테의 '신곡' 중 '지옥' 편에서 가져왔는데 묘하게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전해진다.
저자는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다. 이 책은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인 1986년에 썼다. 그는 이전에도 수용소의 참상을 고발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아우슈비츠에서 돌아온 직후인 1947년에 공개한 처녀작이자 대표작 '이것이 인간인가'는 증언문학의 고전에 올랐고 국내에도 많이 알려졌다. 저자가 아우슈비츠에서 생환한 지 40년 만에 발표한 이 작품은 결국 유서가 됐다.
오랜 시간이 지났고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려고 했지만, 저자에게 아우슈비츠의 참상은 절대 잊히지 않는 악몽이었다. 그리고 그가 자살할 수밖에 없는 아픔을 이 책에 내비쳤다.
"동료에게 의도적으로 해를 끼치고 빼앗고 구타한 데 대해 자신이 유죄라고 느낀 생존자들은 소수이다. 그런 일을 한 사람들은 그 기억을 지운다. 그에 반해 거의 모든 사람은 도움을 베풀지 않은 데 대해 자신이 유죄라고 느낀다." (91쪽)
"다른 사람 대신에 살아남았기 때문에 부끄러운가? 수용소에서 '구조된 자들'은 최고의 사람들, 선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 메시지의 전달자들이 아니었다. 내가 겪은 것은 정반대임을 증명해 주었다. 최악의 사람들, 즉 적자(適者)들이 생존했다. 최고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97쪽)
저자는 우리가 아우슈비츠에 관해 가졌던 상식과 고정관념을 모두 깨버렸다. 정의로운 사람들은 모두 죽었고 생존자 대다수는 독일에 협력하고 같은 유대인을 괴롭힌 적자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수용소에 관한 참상이 여전히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고 있으며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진실을 전해줄 사람들은 모두 죽었고 정작 살기 위해 발버둥 친 최악의 사람들이 살아서 진실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압제자는 압제자로, 희생자는 희생자로 남을 뿐이라고 단언한다. 대학살을 주도한 나치 추종자들은 자기변호 논리로 무장해 스스로를 보호하지만, 정작 희생자들은 그 상처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한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생존자들이 마지막으로 택하는 것이 자살이라고 에둘러 표현한다. 수용소에 있을 때는 죽음이 너무 가까워 자살 자체를 생각하지 못했으나 살아남은 뒤 죄책감과 수치로 평생을 괴로워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이 책의 한 단면이다. 저자는 그동안 우리가 단편적으로 알았던 수용소의 실상을 생생하고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책을 펼치는 그 순간부터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다. 나치에 의해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 된 사람들. 그리고 같은 유대인에게도 학대받은 사람들. 수십 번 사선을 넘으면서 살기 위해 오직 자신만 돌본 사람들의 비극적인 모습이 모두 들어있다.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이 어떤 얼굴을 보여주는지 저자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증언한다.
이 책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말해준다. 수백 명을 사지로 몰아넣은 세월호의 일부 선원들은 끝까지 자기 보호로 버티고 있다. 반면 죽음의 순간에서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침묵한다. 그중 일부는 공개적으로 자신이 잘못했다며 눈물을 흘린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살아남은 것 자체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희생자와 함께 우리가 보듬어 안아야 할 사람들은 침묵 속에 고통받는 생존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