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쿠바에 관한 인문학 강좌를 들었다. 수마에 취해 꾸벅거리며 졸기도 했지만, 쿠바라는 나라를 새로 알게 된 좋은 기회였다. 그날 소개된 여러 모습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쿠바 국민의 건강하고 밝은 표정이었다. 가난하지만 자본에 잠식되지 않은 그들의 당당한 삶은 강사(김수우 시인)가 직접 찍은 사진 너머로도 확연하게 다가왔다.

당장 식량이 부족해도 빨래에 쓸 가루비누만큼은 쌓아놓고 있다는 엉뚱한(대한민국 시선으로 볼 때) 생활방식에 "하하하!"하고 웃던 나는 문득 쿠바 사람과 오버랩 되는 소설 속 주인공들 때문에 "켁!" 하고 사레가 걸려버렸다. 심지어 이 인간들은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으로 짠하고 나타났다 사라졌다. 피켓에는 이런 질문이 적혀 있었다. "과연 나(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치열하게 달려가고 있는가? 당장 지금 우리(나)는 행복한 것인가?"

평소에도 중요한 화두였지만, 최근 일주일간 심각할 정도로 나를 괴롭히던 질문이었다. 날 괴롭히러 나타난 악당들은 내가 일주일간 읽고 있는 장편소설 '면장선거'의 주인공 이라부(신경정신과 의사)와 간호사 마유미이다.

'면장선거'는 속칭 '이라부 시리즈'의 최종편으로 이전 작품으로는 '공중그네' '인 더 풀'이 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정신과 의사 이라부와 간호사 마유미는 저 쿠바 국민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사람처럼 보인다. 이 찰떡 콤비는 제아무리 세상을 호령하는 권력자라도 단숨에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능력이 있다. 아주 현실적인 상대 등장인물들은 화도 내보고 이성적으로 따지고 들려 하지만 결국 그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작가는 이 혼란 상태를 등장인물들이 가진 병을 치유하는 최고의 힐링으로 제시한다. 말 그대로 철부지 바보가 최고의 명의로 재탄생하는 순간이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반복되는 것인데 이 소설의 네 가지 에피소드 중 '구단주' '안퐁맨' '카리스마 직업'이 '의뢰자와 해결사'란 전형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뻔하디뻔한 이야기들은 이라부와 마유미라는 독특한 캐릭터로 인해 '또 어떤 사고를 칠까'라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신기하게도 위에서 던진 질문과 같이 묵직한 주제를 묘하게 독자의 어깨에 올려놓는다.

특히 소설의 백미는 마지막 에피소드 '면장선거'에 있다. 이라부, 마유미 콤비의 엽기적 행태는 여전한데 외딴섬의 과열된 선거판에 그들이 떨어진다. 마치 화학실험을 하듯 실험 대상에 '퐁'하고 새로운 성분을 떨어뜨린 격인데, 이 콤비는 이 섬에서 엄청난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그 화학반응은 반목과 증오를 커다란 목표를 위해 함께 가는 화합으로 뒤바꾸고, "내(우리)가 왜 이렇게 달려가고 있는가?"에 관한 각성을 가져온다.

화합과 각성…. 어쩌면 소설 속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책이 주는 감동은 가슴을 적시고 고여 있던 사고를 흔들어 준다.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지금 난 잠시라도 행복했었다는 점.

문득 소설 속 선거판과 앞으로 있을 6월의 선거판이 오버랩 된다. 아아, 행복감이 사라지려 하는 건 왜일까?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