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정체성 앓이' 중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그들이 누군지 알려주신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마르코 2:28)

'나는 가수다'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즐겨본 적이 있다. 서바이벌 방식으로 진행되기에 다소 긴장감이 유지될 수 있었고, 방청객 500여 명이 평가에 참여하므로 대중소통의 방송문화가 지향하는 참신한 시도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나는 가수다'는 '정체성 앓이' 중인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솔직담백하게 보여준다. '나는 장관이다' '나는 도지사다' '나는 선배다'라는 사회풍자 패러디부터 '나는 가방이다'는 광고 문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반응을 생산해 냈다.

'정체성'의 질문은 이제 다양한 분야에서 친숙한 주제가 되었다. 춤과 미모만 괜찮으면 노래를 못해도 가수인 경우가 있고, 스페인어를 못해도 스페인어학과 졸업생이라는 간판 때문일까? 아니면 진실의 상대화 속에 담론이 뭉게구름 같은 허상을 생산할 뿐이라는 후기 구조주의 철학이 우리 사회를 강타한 것일까? 이유는 불분명해 보이지만 가치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어느 시대보다 많은 사람이 내가 누구인지 묻기 시작했다.

리처드 굴라는 인간의 기본적 자유를 설명하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물을 때, 세상에서 다른 가치를 보게 된다"고 했다. 선택의 자유와 '바라봄'의 주제 그리고 정체성의 질문은 서로 연결돼 있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에게 하느님의 자녀라는 고백 속에는 그분의 계획과 보살핌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하겠다는 고백이 담겨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강타한 정체성의 질문은 이미 윤리학의 분야에도 나타났는데, 행위와 금지를 강조하던 전통적인 윤리학은 인간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하는 덕의 윤리학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는 금기사항이 강조되던 도덕 교육이 문제 해결에 한계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칼 심슨은 덕의 윤리학이 "응용 윤리학이나 도덕철학같이 절대적인 용어나 특정 상황에서 특정 행동(낙태, 안락사, 전쟁 도발 등)으로 선악을 판단하는 대신에,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고려한다"고 했다.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는 모습을 보고 바리사이인들은 예수님께 물었다. "당신의 제자들은 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돌아온 예수님의 대답은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는 정체성 대답이었다(마르코 2:23-28). 바리사이인들은 행위 중심의 전통적인 도덕규범으로 질문했지만,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 당신이 누구이신지 알려 주셨다. 십자가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마지막 여정 직전에도 예수님은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를 지나며 물으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마르코 8:29)

오늘날 우리는 어느 때보다 정체성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지만, 내가 믿는 하느님은 끊임없이 당신이 누구이신지 알려주시는 자애로운 분이시다. 이제 나 스스로에게 할 질문은, 당신이 누구이신지는 관심도 없으면서 '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만 되뇌었는가이다. 그리고 자비로우신 주님께 매달리게 된다. "주님! 춤만 잘 추고 노래를 못해도 가수인지를 묻던 방청객이 탈락시킨 7위 가수처럼, 당신 앞에 섰을 때 일곱 번째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산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