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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홍문학관 전시실. 이주홍 흉상이 눈에 띈다. 문재원 제공 |
# 온천동 문학관
- 애초 작가 기거한 가옥 개조해 문 열었으나
- 차밭골로 시설 옮겨와
- 아동문학 이외에 소설·시 등 작품 가득
- 문학사 자료 빼곡히
# 합천 어린이문학관
- 유년시절 보낸 곳
- 부산서 유품·자료 옮겨
- 동화 친필 원고 만나고
- 고향-작가 연결하는 스토리텔링 눈길
- 부산은 시민공간 중심
- 합천은 관광효과 방점
- 양쪽 교류 밑거름 기대
■시비로 조성된 부산 1호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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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동래구 온천장에 문을 연 이주홍문학관 전경. |
모처럼 하늘이 개었다. 부산에 있는 문학관 세 곳 중 이런 하늘과 제일 어울릴만한 공간은 이주홍문학관일 게다. 아마도 '이주홍' 하면 '이야기 들려주는 안경 할아버지'의 이미지와 아동문학이라는 장르가 맞닿아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파랗기만 한 파랗기만 한 저 하늘같은' 동심에 관한 상상으로 달려가게 하는 곳이 이주홍문학관이다.
도시철도 명륜동역에 내려 유락여중 방향으로 가다가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면 건너편에 도로 안내판이 보인다. '이주홍문학관 120m'. 오른쪽으로 짙은 목재 외벽이 인상적인 건물에 눈길이 간다. 어지럽고 스산한 주차장을 가로질러 '李周洪文學館(이주홍문학관)' 문패를 만난다. 애초 이주홍문학관이 개관되었을 때는 현재의 장소가 아니었다. 1971년부터 1987년 별세할 때까지 작가가 기거했던 온천1동 177의18 가옥을 문학관으로 개축해 2002년 10월 문을 열었다. 당시 시비를 받아 조성된 부산의 1호 문학관이었다.
그런데 재개발 공사 탓에 불가피하게 현재의 차밭골(온천1동 435의25)로 옮겨와 문학관을 신축하고, 2005년 5월 재개관했다. 동래 온천장 일대는 향파가 만년에 많은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했던 창작의 산실이었다. 향파가 작품 구상을 하며 오갔던 금강공원 산책길에 그의 문학비가 세워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2층 전시실은 근현대 한국문학사 수업시간
2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우선 빽빽한 자료에 가위눌리고 이어 '파랗기만 한 동심'에 관한 편견이 교정된다. '짧은 상·하의를 입고, 제 키 높이의 낫을 들고 서 있는' 소년은 향파가 만들어 낸 소년이다. 이 농촌 소년은 일제 강점기 어린이 잡지 '신소년' 1929년 12월호의 표지화이며, 향파의 작품이다. 당시 식민지 소년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소년상은 당시 나라 잃은 설움과 울분을 삼키고 있는 이미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 옆으로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아동문학 기관지 '별나라'가 보인다. 노동자 복장을 한 남성이 깃발을 든 아이를 목마 태우고 걸어가는 표지화도 예사롭지 않다. 향파는 근대문학사에서 카프 작가로 활동하면서 일제 강점기의 민족적 모순에 대한 저항의 의지를 비장감이 감도는 소년으로 형상화했다. "문학은 살벌한 세정의 인식, 항거의 전위부대"라고 했던 작가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이주홍문학관에서 만나는 향파는 일반적으로 '아동문학 작가'라는 고정된 시각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는 '배암색기의 무도'라는 동화로 등단했지만, 이후 동화 작품에만 머물지 않았다. '해변' '현이네 집' '풍경' '탈선 춘향전' 등 소설, 동시, 시, 희곡 등 다양한 장르의 방대한 작품 활동의 흔적이 가득하다.
다양한 매체 활동에도 적극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소년' '별나라' '풍림' '영화연극' 등 근대문학사의 획을 긋는 주요한 잡지를 통해 그의 문학사적 족적을 읽을 수 있다. 지역문학과 향파의 밀착을 보여주는 잡지 매체 '문학시대' '윤좌' '갈숲'이 보인다. 부산에 정착하면서 지역문학의 밑을 돋우고 넓히고자 했던 그의 열정이 생생하다.
그뿐만 아니다. 전시실 사이사이를 채우고 있는 서화나 잡지 표지화는 또 다른 예술적 감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아동문학가이면서, 작가이자 시인이자 서예가이자, 화가이자, 지역문화 활동가 등의 타이틀을 꼼꼼하게 확인할 수 있다. 크지 않은 전시실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수많은 근현대문학사의 자료는 어느 하나 가볍게 건너뛸 수 없는 증언 목록들이다.
2층 전시실은 한마디로 근현대 한국문학사 수업시간이다. 마침, 전국 문학기행 중인 문학과 공간에 관심이 많다는 지리교육과 졸업반 학생을 만났다. 이 공간의 인상에 관해 "꼼꼼한 자료 정독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향파의 작품세계를 보면 어느 사소한 것 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일일이 훈수 두는 꼬장꼬장한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전시공간이 확보되지 않아 아직도 수장고에 일부 자료가 잠자고 있다는 이야기가 안타깝다.
■합천 이주홍어린이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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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합천 이주홍어린이문학관 입구에서 어린이들이 해맑게 웃는 모습. |
향파는 1906년 합천군 합천읍 금양리 사동에서 태어났다. 1920년 서울로 올라가기 전 유년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2011년 12월 합천군 '이주홍어린이문학관'을 개관하여 직접 운영하고 있다. 개관 당시 이주홍문학관에 있던 작가의 일부 유품과 자료를 옮겼다.
문학관에 들어서면, 그의 동시 '감꽃'을 새긴 시비와 그 옆에 아이를 안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주홍 할아버지를 만난다.
"말갛게 쓸어 놓은/ 골목길 위에/ 감꽃이 떨어졌다/ 하나 둘 셋…."
문학관 뜰에서 술래잡기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 어린이문학관이구나'라고 실감한다. 아이들에게 사진을 찍자고 하니, 자연스럽게 할아버지와 아이 옆에 척하니 포즈를 잡아 준다. 문학관 안에 들어서면 동화 '못나도 울엄마' 친필 원고가 우리를 맞는다. '이주홍 선생님은 어떤 분이세요?'로 시작해 어린이문학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작가의 동화 작품 '우체통'에서 착안한 '소망 우체통'도 재미있다. 시 낭송이나 퍼즐 맞추기를 통해 동시를 암송하도록 하는 활동 공간들은 아이들의 눈높이를 고려했음 직하다. 2층의 도서관도 어린이도서관답게 그림 동화책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합천과 이주홍을 반복적으로 연결하는 점이다.
"합천은 신라 옛적/대야주 고을/바다만큼 넓은/대야실 강변은/대야 아이들이 놀던 곳/흘러라 흘러라/지금은/합천 아이들이/노는 곳…."
합천의 역사와 강가에서 노니는 아이들을 연결하는 '대야실 강변'이라는 향파의 시가 벽면을 채우고 있다. 작가의 동화 작품들을 따라 나오다 다시 '경상남도 합천, 이주홍 선생님의 아름다운 고향' '이주홍 선생님의 발자취를 따라 합천을 걸어가다' '빼어난 아름다움과 천년의 지혜가 오롯이 살아있는 곳'이라는 소제목들로 이어지는 합천-이주홍-합천의 스토리텔링 공간을 만난다.
■두 곳의 문학관이 상생·발전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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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합천 이주홍어린이문학관 전시실 내부. |
같은 작가의 문학관이 두 군데 이상 건립된 예가 국내에서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박경리 한용운 조정래 유치환 최명희 등의 문학관이 작가의 고향, 작품 활동을 한 곳, 작품 배경지 등을 명분으로 건립됐다. 이때 이전의 문학관과 어떤 차별화 전략을 구상할 것인가가 최대 관건이다. 온천장의 이주홍문학관이 작가가 작품 활동을 한 곳이라는 데 의미를 두고 지어진 공간이라면, 합천의 이주홍어린이문학관은 작가의 고향이라는 점에 방점을 두면서 공간을 배치하고 있다.
이주홍문학관이 기존 아동문학가의 이미지를 수정하고 소설, 시, 희곡, 시나리오, 매체 활동 등 다양한 장르와 연결하면서 향파의 내·외연을 확장하고 있다면, 이주홍어린이문학관은 방정환 마해송 윤석중 등 한국의 아동문학가들을 동원해 아동문학가 이주홍의 이미지를 더욱 확고하게 하고 있다.
이주홍문학관은 도심 골목에 위치하여 '시민을 위한 공간'에 고민하고 있고, 합천은 인근 합천영상테마파크와 연계한 관광효과를 고민하고 있다. 합천이 문학관 옆에 이주홍 생가를 재현해 관광객의 숙박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점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애초에는 동래와 합천의 문학관이 자료를 분할 전시한 뒤 공동 추모 프로그램도 개발하는 등 향파의 문학세계를 더 적극적으로 재조명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한 작가를 두고 여러 지역에서 문학관이 건립되는 경우 문화적 헤게모니 갈등이 일어나기 쉽다. 향파 이주홍이 생전에 실천해 보였던 것처럼, '이주홍'이라는 기호가 하나의 정전이 되어 권력으로 작동하지 않고 이곳과 저곳의 수평적 문화교류의 밑자리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향파 이주홍
향파(向破) 이주홍(1906~1987)은 1928년 '신소년' 5월호에 동화 '배암색기의 무도(舞跳)'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1980년대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면서 200여 권의 작품집을 내놓았다.
동시집 '현이네 집', 소설집 '해변', 소년 장편소설 '아름다운 고향' 등이 있으며, '톡톡 할아버지', '피리부는 소년' 등 동화집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탈선 춘향전' 등 50편이 넘는 희곡,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1947년 부산으로 옮겨와 작품 활동은 물론 '문학시대' 등 잡지 창간에도 참여하면서 지역문학의 너른 밑거름 역할을 했다.
문재원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인문한국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