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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신문 전신인 산업신문 1948년 1월 7일 자 2면에 실린 소설 '서거픈 이야기'. 이순욱 박사 제공 |
- 지역의 좌파 매체들 통해
- 이념적 색깔 담은 작품 발표
- '이따위 악질 모리배들…'
- 사회현상 날카롭게 비판
- 새로운 민족국가 열망 표출
- 기존 '절필기' 의미 퇴색
- 문학 연대기 재설정 필요
그동안 '광복기' 요산 김정한 선생에 관한 평가는 상당히 엇갈렸다. 1974년 창작과 비평사에서 펴낸 '김정한소설선집'에 실린 연보를 보면 1940년(33세) '일제의 발악 극도에 달해 이로부터 붓을 꺾음'이라고 표기돼 있고 1966년(59세) '10월 '모래톱 이야기' 발표로 중앙 문단 복귀'라고 쓰여 있다. 1940~1966년을 요산의 '절필기'로 규정한 근거 중 하나다. 하지만 2008년 (사)요산기념사업회에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발간한 정본 '김정한전집'에서는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조갑상(경성대), 황국명(인제대) 교수와 이순욱 박사가 협의를 거쳐 '절필'이란 표현을 뺐다. 요산이 광복기에 발표했던 작품들이 뒤늦게 속속 발굴되면서 '절필'의 의미가 많이 퇴색했기 때문이다.
부산·경남 지역 문학사 연구에서 많은 성과를 낸 문학평론가 이순욱 박사는 최근 새롭게 발굴한 요산의 광복기 소설과 시를 통해 요산이 스스로 말한 '절필기'에 실제로는 좌파 민족주의자로서의 성격을 드러내는 작품을 많이 발표했다고 주장했다. 이 박사는 광복기 몇몇 유력 매체에 의존했던 기존 자료 수집 방식에서 벗어나 부산과 경남지역에서 발간된 '민주중보' '인민해방보' '자유민보' '대중신문' '신한일보' 등 신문과 잡지 '전선' 등 다양한 이념적 색깔을 지닌 광범위한 매체를 조사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들을 발굴했다.
■요산, 정치문학을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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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산 김정한 선생의 1970년대 모습. 최근 그가 광복기에 쓴 소설과 시가 새롭게 공개됐다. |
이 박사는 요산이 광복 후 배달학원 강사, 조선예술동맹 부산지구협의회 위원장, 조선문학가동맹 경남도위원장 겸 부산지부장, 조선문화단체총연맹 경남지부 부위원장 등을 지내며 좌파 민족주의자로 활동했다고 강조했다. 또 이 시기 요산이 발표한 작품은 대부분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담아 좌파 관련 매체를 통해 발표했다고 덧붙였다. 요산은 현실 비판과 새로운 민족국가 건설에 대한 강한 열망을 표출했는데 광복 후 정국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소설보다 시로 먼저 드러냈다. 1945년 10월 '인민해방보'에 발표한 4수로 이뤄진 연시조 '해방부'는 아이들의 앞날을 위해 '형극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다짐을 보여준다. 이후 등장한 시들도 비슷한 경향을 띠고 있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광복기 요산이 지역이 아닌 서울 매체('문학·비평')에 유일하게 발표한 것으로 알려진 소설 '설날'이 실제로는 그에 앞서 지역의 좌익지 '대중신문'에 '호출의 설날'이라는 제목으로 먼저 연재했다는 사실을 이 박사는 이번 논문에서 밝혔다.
특히 국제신문의 전신인 산업신문에 연재된 소설 '서거픈 이야기'가 이 박사에 의해 새롭게 공개되면서 광복기 정치문학을 전개한 요산에 관한 재평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왜 우리 조선에는 이따위 악질 모리배들이 많을가"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서거픈 이야기'는 사회 현상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소설이다. 요산이 스스로 절필기라고 표현한 것과 관련해 이 박사는 "1940년대 초반 일제 국책기관의 관리로 일한 경력과 1949년 생존을 위해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면서 전향한 점을 자책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요산, 광복기를 복원하자
이 박사는 광복기 활동을 고려해 요산의 문학적 연대기를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전기-중기-후기' 또는 '초기-절필기-후기'로 구분했는데 앞으로는 등단작 '사하촌'(1936년) 이후의 문학적 청년기를 요산문학 1기, 정치문학으로서 가능성을 표출한 광복기를 2기, 국민보도연행 가입과 전향, 한국전쟁을 거쳐 대표작 '모래톱 이야기'(1966년)를 발표하기 이전까지를 3기, '수라도'(1969년), '인간단지'(1970년) 등 수작을 배출한 시기를 4기로 분류하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