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나이 54.5세. 2014 국제신문 신춘문예 뚜껑을 열어보니 '문학청년'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인생의 깊이를 삭히고 삭힌 '문학 중년' 또는 '중고 신인'들이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출발이 조금 늦었을 뿐 당선자들은 살아온 세월만큼 삶의 경험을 작가 노트에 차곡차곡 쌓아뒀다. 그리고 등단의 관문을 통과하면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을 기세다.


# 단편소설 유희민 씨

- 독학으로 글쓰기… 탄원서가 계기
- "글 쓰는 것이 제일 편하고 쉬워"

■독학으로 소설 공부='공룡과 공룡새'로 단편소설에 당선된 유희민(54) 씨. 그는 다른 당선자들과 차별화되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목포고와 목포해양대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30년 넘게 살면서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다. 학교에서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고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당선 소감에 자신을 지도해 준 선생이나 함께 공부한 도반의 이름 몇 명을 나열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유 씨의 당선 소감에는 단 한 명도 없다. 그럴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글을 쓰게 된 동기도 예사롭지 않다. 45세에 누군가를 위해 쓴 탄원서가 화제가 돼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평소 신문을 꼼꼼하게 읽으며 자료를 모으는 유 씨는 시간이 나는 주말에 집중적으로 글을 쓴다. 그렇게 해서 마침표를 찍어놓은 작품이 20편이 넘는다. 선이 굵고 서사구조가 뚜렷한 소설을 쓰는 유 씨의 꿈은 원대하다. 한국인 첫 노벨문학상 수상에 도전한다는 목표를 세워뒀다. 그는 "글을 쓰는 것이 제일 편하고 쉽다"고 말했다. 그동안 글을 쓰지 않고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할 정도로 소설을 향한 유 씨의 열정은 뜨겁다.


# 시 김유진 씨

- 첫 신춘문예 도전서 당선 영예
- "한 줄이라도 감동 주는 시 쓸 것"

■첫 도전으로 등단=시 당선자 김유진(본명 김옥진·51) 씨는 당선통보 전화를 받고 기쁜 나머지 고함을 질러 한동안 정상적인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만큼 김 씨에게 등단과 시를 쓰는 작업은 절실했다. 알고 보면 김 씨는 축복받은 중고 신인이다. 그는 첫 번째 신춘문예 도전에서 덜컥 당선까지 되는 영예를 안았다. 신춘문예는 1년에 단 한 번 열리기 때문에 평생 당선과 연을 맺지 못하는 '문청'이 부지기수고 당선이 되더라도 몇 년은 가슴앓이해야 한다. 그런 어려운 고비를 단번에 넘었다. 그래서 김 씨는 주위에서 단순히 운이 좋은 사람으로 여길까봐 매우 조심스럽다. 그럴 필요가 없다. 김 씨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해 시를 쓰기 시작했고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에서 김영남 선생을 만나 많은 영향을 받았다. 김 씨의 시는 갈증과 안타까움에서 쏟아져 나왔다. 자신의 속에 담긴 생각들을 명징하게 표현하기 위해 수년 동안 도서관에서 책에 파묻혀 갈증을 풀어냈다. 김 씨는 "단 한 줄이라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 시조 김정수 씨

- 시민문예대학 참가로 인생 바뀌어
- "더 늦기 전에 꼭 책을 내고 싶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시조 당선자 김정수 씨는 올해 예순둘이다. 하지만 김 씨 앞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신춘의 영광을 안았지만 김 씨는 "아직 성숙하지 못하다. 조금 더 삭히고 더 많이 배우고 싶다"는 의욕을 보였다. 평범한 주부였던 김 씨는 5년 전 울산문인협회에서 주최하는 시민문예대학에 참가했다가 박영식 선생을 만나 인생이 변했다. '3장6구' 같은 단어들은 수십 년 전 학교에서 배웠던 시조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시조의 매력에 푹 빠졌다. 얼마나 좋아했던지 김 씨의 생활은 온통 시조와 연관돼 있다. 고1인 늦둥이를 포함해 다섯 식구를 뒷바라지하는 와중에 글쓰기를 손에 놓은 순간이 없었다. 메모지를 항상 가지고 다니는 그는 생각 날 때마다 부지런히 적어서 주방 등에 붙여 놓는다. 그렇게 쓴 시조가 벌써 150편에 달한다. 시조집을 낼 수도 있지만 김 씨는 한사코 배움을 더 강조한다. 그는 "친정 할머니가 학식이 높은 집안 무남독녀였는데 어릴 때 할머니께 교육을 받은 영향이 컸다. 이제는 열심히 공부해서 더 늦기 전에 꼭 책을 내고 싶다"고 꿈을 내비쳤다.


# 동화 우애란 씨

- 아이들 그림동화 수업 많은 도움
- "장편 동화로도 인정 받고 싶어"

■준비된 동화 작가='동물원이 된 버스'로 동화 부문에 당선된 우애란(51) 씨. 국문과를 졸업하고 월간지 기자를 거쳐 해운대 신시가지에서 논술과 독서 지도를 했다. 그러다 자기 글을 쓰고 싶어 동화에 뛰어들었다. 그동안 초등학교 아이들과 그림 동화 수업을 많이 한 덕분에 소설이 아닌 동화를 택했다. 지난 10년 동안 습작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썼고 각종 공모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신춘문예를 통해 동화 작가로 데뷔했다. 우 씨는 글을 쓰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 그래서 오전에 도서관으로 글을 쓰러 가서 온종일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빠진다. 그것도 모자라 밤에 잠을 잘 때도 동화 속 인물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에게 동화는 행복한 대상이고 도서관은 책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놀이터다. 심지어 도서관 때문에 이사를 했을 정도다. 당선 통보 뒤에도 우 씨는 늘 하던 대로 글을 쓰고 있다. 이제는 원고지 400장 이상의 장편 동화에 도전한다. 그는 "오랜 습작 기간 많은 동화를 썼다. 단편이 아닌 장편으로도 인정을 받고 책도 내고 싶다"고 새해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