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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의 공간-부산 근현대의 장소성 탐구 <22> 을숙도

광활한 갯벌서 잡은 재첩의 추억…개발 광풍에 밀린 철새와 갈대숲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12-30 21:03:18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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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숙도는 한국 최대의 철새 도래지로 명성을 날렸지만 지금은 을숙도대교의 개통과 개발 여파 속에서 친환경성을 급속히 위협받고 있다. 사진은 한 사진가가 을숙도 갈대밭을 촬영하는 모습. 국제신문DB
- 삼각주 퇴적층 속에는
- 강·바다 밑에서 쌓인 생성의 비밀 숨겨져

- 섬에 온 가난한 이주자
- 척박한 자연환경에 고통
- 갯벌에서 생계 유지
- 방문객은 생태계 체험
- 문학 논하고 음악 연주

- 낙동강 하구둑 건설로 주민 모두 외부 이주
- 강서 공단·택지 개발로
- 삶의 터전 아닌 스쳐가는 경치 인식

'섬'(島, island)은 고립된 황량한 자연적 존재에 불과한가? 아니면 인간에 의해 '개발 혹은 보존'되어야 할 대상일 뿐인가? 과학성, 합리성, 발전(자본축적) 등의 근대성과 자본주의 이념의 수행에 의해 대규모로 파괴된 자연은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 지속적으로 채워질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낙동강 하구(河口)에 위치한 작은 섬, 을숙도는 자연의 경이로움, 주민의 고단한 삶, 방문객(외부인)의 낭만적인 추억, 국가와 자본 권력의 작동 등의 의미와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이들의 고찰을 통해 우리는 자연의 가치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볼 수 있다.

■상이한 시간의 지층과 (미)생물의 안식처

   
낙동강하구 을숙도 갯벌의 1967년 풍경. 국제신문DB
경상도 사람들의 젖줄이자 영남 사회와 문화의 토대가 된 낙동강의 강물과 크고 작은 섬들을 품고 있는 남해의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 즉 낙동강 삼각주(delta)를 구성하는 여러 섬들 가운데 하나가 을숙도이다. 이 섬들은 장구한 시간을 통해 강과 바다 밑에서 자갈, 모래, 진흙 등이 쌓여서 만들어졌으며, 이에 관한 비밀은 을숙도를 포함한 낙동강 삼각주의 퇴적층(지하 50~60m) 속에 숨겨져 있다. 삼각주 퇴적층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을숙도가 탄생할 시점의 위치는 추운 기후(제4기 최종빙기, 1만5000년 전)로 인한 빙하의 확장으로 해수면이 지금보다 100m 이상으로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를 관통하여 대마도 쪽으로 흘러가는 긴 하천의 중간이었고, 강바닥에 돌과 자갈이 쌓였다. 이후 이 지역은 기후가 따뜻해져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짐에 따라 바닷물 속에 잠기어 거대한 내만(內灣)으로 변하였고, 을숙도는 해안환경 속에서 모래와 진흙이 퇴적되면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당시의 자연환경 하에서 내만의 서북쪽 끝자락인 김해의 구릉지대에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이 앞바다에 서식하는 굴, 조개 등을 먹거리로 정착 생활을 하였고, 이후 김해 일대의 부족들을 통합하여 고대왕국인 금관가야가 세워져 해상무역과 주변의 철광 산지를 활용하여 한동안 번성하였다. 지금으로부터 1,700년 이후 해수면이 조금씩 낮아짐에 따라 낙동강의 중ㆍ상류에서 공급되는 퇴적물이 쌓여 현재와 같은 삼각주의 모습이 점진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가장 북쪽에 '대저도'란 하중도(河中島)가 생성되었다.

을숙도는 대저도 남쪽에 모습을 보인 여러 하중도 가운데 하나이며, 섬의 가장자리(특히 남쪽)에 넓은 갯벌이 생성되어 수많은 (미)생물들이 서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미)생물의 서식처는 추운 북쪽과 따뜻한 남쪽을 주기적으로 이동하는 여러 종류의 철새들이 머무르는 장소가 되었으며, 낙동강 하구의 저녁놀과 함께 이들이 펼치는 군무는 사람들에게 신비감과 황홀감을 선사하였다.

■섬사람 고단한 삶과 이방인 낭만적 추억

오랜 시간 동안 강과 바다 속에서 퇴적물이 쌓여 수면 위로 모습을 나타낸 을숙도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1930년 초반에 낙동강 본류가 동서로 나누어지는 지점인 물금 부근에 서쪽으로 흐르는 낙동강을 통제하기 위해 대동수문이 건설된 이후 낙동강 삼각주에서 농업활동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대동수문은 낙동강강물의 대부분을 동쪽으로 흐르게 함에 따라 을숙도에 보다 많은 퇴적물이 쌓여 섬의 크기가 확대되었다.

무성한 갈대숲, 습지, 모래벌판, 갯벌, 매서운 바람 등의 자연환경은 을숙도에 정착하기 시작한 가난한 이주자들에게 큰 고통을 주었고, 또한 자연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방법의 터득을 요청하였다. 특히 가뭄은 담수가 부족한 을숙도 주민의 농사와 식수 확보에 큰 어려움을 주었고, 빈번한 태풍과 홍수는 섬의 저지대 농경지와 가옥을 침수시켜 재산과 인명 피해를 발생시켰다.

'낙동강의 파숫꾼'으로 알려진 요산 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1966년)는 일제 강점기 이후 1960년대까지 을숙도(주변 섬들)에 살았던 사람들의 아픔과 애환을 가슴에 와 닿게 묘사하고 있다. 1960년대 초반부터 1970년대 중반에 거주하였던 을숙도 주민의 상황을 보면, 주변의 하단동, 녹산면, 대저면, 명지동 등에서 그리고 먼 곳인 밀양, 창원, 고령, 함안 등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주로 농사와 상업을 하면서 살았다. 주민 대부분은 생활이 어려웠고, 일부는 직접 경작할 수 있는 농토가 없어 품팔이 노동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농토와 함께 을숙도 주민의 생계에 도움을 준 것은 섬 주변에 펼쳐진 광활한 갯벌이다.

여기서 잡은 신선한 조개는 갈대숲 속의 물길을 따라 섬과 육지를 왕래하는 소형 어선으로 하단 나루터로 운송되었고, 이것을 구입한 상인들은 파란국물의 재첩국을 끓여 "재첩(치)국 사이소" 소리와 함께 부산 곳곳을 돌면서 팔았다. 을숙도 주민과 부산 사람들의 삶을 연결한 재첩국은 낙동강의 오염, 갯벌의 매립 등으로 인해 아련한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을숙도와 낙동강 하구의 풍경 그리고 나룻배(터)는 부산과 경남 나아가 전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혹은 잊지 못하는 체험과 추억의 장소로 남아있다. 수많은 방문객(이방인)들은 동트고 해질 무렵, 맑은 날과 흐린 날 혹은 사계절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기억 속에 혹은 글과 사진으로 포착하여 간직하고 있다. 을숙도를 처음 찾은 방문객은 2~3m까지 높이 올라간 갈대숲과 이들 속에 만들어진 뱃길, 갈대숲에 사는 새, 늪지대를 연결한 다리, 갈대 지붕과 울타리의 민가, 섬 주변의 갯벌과 생명체 등을 통해 자연(생태계)의 다양함과 경이로움을 느끼거나 체험하였다.

1960, 70년대 을숙도와 하단을 연결한 나루터 강변과 가까운 에덴공원에는 전국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낙동강 하구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일상의 회포를 풀고, 문학을 논하거나 구상하고, 음악을 연주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낙동강 중ㆍ하류에 건설된 공단들의 폐수에 의한 강물의 오염 그리고 1980년대 중반 낙동강 하구둑의 완공을 시작으로 낙동강에 접한 하단 지역의 아파트촌의 건설, 강서구의 개발로 인해 을숙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하단 나루터와 에덴공원의 장소성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권력의 작동에 의한 추상적·합리적 공간화

1970년대 이후 중화학공업에 의한 한국 경제가 급속하게 발전하고 이에 따라 서울과 부산 등의 소수 대도시 인구가 증가하고 기존의 공업단지가 외부로 이전하거나 새로운 공장부지가 필요하게 되어 외곽지역이 공업과 주택 단지로 개발되었다. 사하구 하단동과 강서구 명지동을 연결한 낙동강 하구둑 건설(1983년 4월 23일 기공 ~ 1987년 11월 16일 완공)은 섬 주민의 생활 터전이자 다양한 생명체의 활동 장소인 을숙도를 국가(혹은 지방정부), 자본, 개발지향적 엘리트 권력이 작동하는 추상적·합리적 공간으로 완전하게 변모시켰다.

강서지구의 공단과 택지 개발, 삼각주의 농경지 염해방지, 용수확보, 부산과 서부경남(진해, 창원, 마산, 진해)을 잇는 교통로 확보 등의 다목적 하에 국가(수자원공사)가 관리하는 낙동강 하구에 현대건설이 10개의 거대 수문을 완공하였다. 이후 을숙도와 주변 지역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낙동강을 가로막은 하구둑과 함께 을숙도는 낙동강 서쪽 지역인 강서구와 물적·인적 교류를 원활하게 하는 다리 역할을 수행함에 따라 명지주거단지와 녹산·신호 산업단지의 건설이 수월하게 되었고, 진해 창원 마산 등 서부경남으로의 이동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을숙도는 일상적으로 차량 통행을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이자 생명체의 활동 장소가 아닌 유리창을 통해 볼 수 있는 경치나 스쳐가는 대상(물체)으로 인식되었다. 더욱이 낙동강 하구둑이 완공된 이후 주민 모두가 외부로 철거됨에 따라 을숙도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섬이 되었다. 따라서 을숙도는 누가 어떠한 이념(가치) 혹은 목적으로 관리할 것인지가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을숙도는 몇 개의 계획공간, 즉 상업공간, 교육공간, 보존공간, 완충공간 등으로 구획되어 이에 준하는 건축물이 건설되고 활동이 이루어졌다. 을숙도의 생태보존에 긍정적 역할을 하는 낙동강하구에코센터가 을숙도철새공원에 준공(2007년 6월 10일)되었다. 을숙도는 낙동강 하구의 변화 역사, 다양한 생태계의 안식처, 자연경관의 아름다움, 주민 삶의 애환을 간직하고 있다. 추상적·합리적 공간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한한 가치를 지닌 장소이다.

박규택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지리학 박사

※공동기획 :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의인문학연구단, 국제신문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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