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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문학기행 <35> 고정희·김남주 시인의 고향 전남 해남을 찾다

'수도자'와 '옆집 아저씨'…유신·군부 저항 두 시인, 고향은 그렇게 기억했다

  • 국제신문
  • 김희국 기자 kukie@kookje.co.kr
  •  |  입력 : 2013-12-24 20:11:22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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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팀이 지난 22일 해남 김남주 시인 생가에서 김경윤 김남주기념사업회장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 고정희

- 중학교도 못간 '부엌데기'
-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 살아남은 자의 책임
- 불꽃같은 글쓰기로 다해

# 김남주

- 남민전 사건으로 체포
- 10년 가깝게 수감 생활
- 강철 같던 신념과 달리
- 지인들에겐 '순한 사람'

흑산도라 검은 섬 암벽에 부서지는 하얀 파도 없다면/남해바다 너 무엇에 쓰랴/전라도라 황토길 천군만마 휘날리는 말발굽 소리 없다면/황산벌 너 무엇에 쓰랴/무엇에 쓰랴/천으로 만으로 흩어진 아우성 소리 없다면/이 거리 이 젊음 무엇에 쓰랴/살아라 형제여 한 번 살아봐라/한 번 죽어 골백번 영원으로 살아라/창대 빛 죽창에 미쳐 광화문 네거리 우두두 떨어지는/녹두꽃 햇살에 미쳐/사월의 자유에 미쳐(김남주-'춤')

1970~90년대 대학을 다닌 기성세대가 여전히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는 시인이 있다. 1994년 세상을 떠난 김남주 시인이다. 그의 시는 죽창처럼 날카로웠지만, 가슴속 상처를 어루만지는 묘약 같은 힘을 갖고 독재 정치에 신음하던 대학생들을 위로했다. 서정적이면서 토속적인 시어는 운동권 가요의 히트곡으로 살아남아 지금도 불리고 있다.

이번 달 문학기행 팀은 '전사' 김남주 시인의 고향 전남 해남으로 떠났다. 그리고 김남주 시인의 생가 지척에 자리 잡은 '여성해방 전사' 고정희 시인의 생가도 둘러봤다. 세상을 떠난 두 시인 대신 전 광주·전남작가회의 의장이자 김남주 기념사업회장인 김경윤 시인과 문재식 시인이 문학기행 팀을 맞았다.

■해남은 한국시문학 1번지

   
고정희 시인 생가의 내부 모습.
고정희, 김남주 시인의 생가에 앞서 문학기행 팀이 들른 곳은 전남 해남군 해남읍 녹우당길에 있는 고산 윤선도 유적지다. 중·고교 정규 교육을 거쳤다면 누구나 윤선도를 만났을 것이다. 윤선도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없는 조선 시대 최고의 시조시인이었다.

윤선도가 일궈놓은 시 세계가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쳤을까. 1950, 60년대 '풀잎'으로 유명한 박성룡(1934~2002) 시인이 해남의 시문학을 알렸고 광주민주화운동을 처음으로 시로 알린 김준태 시인, 그리고 김남주, 고정희 시인에 이어 황지우 시인까지 해남 출신 시인 계보는 끊이지 않고 있다. 외지인들에게 해남은 '땅끝 마을'로 알려졌지만, 문학인들에게 해남은 걸출한 시인을 많이 배출한 시문학의 고장으로 굳어져 있다.

■부엌데기서 여성해방전사로

해남에 가면 부러운 것이 있다. 시인의 생가를 알리는 도로 표지판이다.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관광지나 유적지 안내 표지판은 쉽게 볼 수 있지만, 시인이나 문학인의 생가 표지판은 찾기 어렵다. 그만큼 해남은 자신들이 낳은 시인을 사랑하고 있다. 여성해방전사로 알려진 고정희 시인의 생가 역시 해남에 접어들면 내비게이션 도움 없이 도로 표지판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고정희 시인의 생가는 시인의 올케가 지키고 있다.

시인은 1991년 6월 9일 머리를 식히러 그렇게 좋아했던 지리산에 갔다가 갑자기 불어난 계곡 물에 실족사했다. 그때 시인은 경기도 안산에 살았다. 사후 가족이 시인의 유품을 정리해 생가로 가져왔다. 그렇게 고정희 시인의 생가는 문을 열었고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넘었지만, 사람의 발걸음은 여전하다. 시인의 유품이 정리된 방에는 시인의 손때가 묻은 책과 시인이 썼던 시, 그리고 사진으로 가득 찼다. 유독 눈에 띄는 것은 '고행, 묵상, 청빈'이라고 시인이 직접 쓴 좌우명이었다.

시인은 생가에서 20세까지 살았다. 5남 3녀의 장녀로 태어나 집안일을 거든다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진학을 하지 못했다. 한때 고향 어른들은 시인을 '부엌데기' 또는 '단발머리 못생긴 여자아이'로 기억했다고 한다. 그 부엌데기는 어릴 때부터 엄청난 독서광이었고 중학교 진학을 못 한 대신 혼자서 공부를 했다. 독학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언론사 기자와 광주 YWCA 간사 등으로 일했다. 그리고 1975년 '현대시학'에 '연가', '부활과 그 이후' 등을 추천받아 시인으로 세상에 나왔다. 총 11권의 시집을 남긴 시인은 특히 80년대에 거의 매년 시집을 낼 정도로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

시인의 세계관은 워낙 다양해 단정 짓기 어렵다.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면 기독교와 광주민주화운동을 통한 역사, 그리고 여성 문제다. 기독교는 시인의 삶을 관통한 종교였고 역사는 1980년을 지나온 모든 사람에게 그랬듯이 시인에게도 부여된 살아남은 자의 책임이었다. 그리고 시인은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을 지냈고 1990년에는 시집 '여성해방출사표'를 냈을 만큼 우리나라 초기 여성운동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래서 그를 여성해방전사로 부른다. 평생 혼자 수도자처럼 살았던 시인은 매일 새벽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를 썼다. 시인이 세상을 떠난 뒤 짐을 정리하던 중 '죽은 시인을 두고 어머니가 염을 하는 모습을 그린' 시가 발견됐다. 시인은 자기 죽음을 예감했던가.

■투사, 전사?…옆집 아저씨!

   
문재식 시인이 문학기행 팀을 위해 김남주 시인의 시를 노랫말로 붙인 '노래'를 대금으로 연주하고 있다.
고정희 시인의 생가 인근에 김남주 시인의 생가가 있다. 한때 김남주 시인의 이름을 부르는 것 자체가 두렵던 시절이 있었다. '진혼가', '나의 칼 나의 피', '학살', '꽃 속에 피가 흐른다' 등 섬뜩한 제목의 시집과 시들. 그리고 무시무시한 죄목으로 감옥에서 보낸 숱한 날들. 그는 무섭고도 서정적인,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이미지를 모두 지닌 시인이었다. 시인은 1972년 유신헌법이 선언되자 전국 최초 반유신 지하신문을 제작했다가 8개월 복역했다. 그 뒤 1974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잿더미', '진혼가' 등 7편의 시를 발표해 문단에 데뷔했다. 1978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에 가입했고 1979년 체포돼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아 광주교도소에 수감됐다. 1984년 수감 중 첫 시집 '진혼가'가 세상에 나왔다. 1988년 12월 형집행정지로 9년 3개월 만에 석방됐으나 1994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시인이 감옥에서 시를 쓴 일화는 유명하다. 펜과 종이를 주지 않아 우유를 싼 은박지에 못을 갈아 썼거나 펜의 심만 구해 화장지에 어렵게 시를 적었다. 그렇게 쓴 시는 두꺼운 책 커버에 숨기거나 친했던 간수의 도움을 받아 세상의 빛을 봤다. 워낙 위험인물(?)이라 시인의 시를 읽고도 읽었다고 말하기조차 무서운 세상이었다. 좋은 세상이 왔을 때도 평론가들은 시인의 시에 대해 말을 꺼내기를 주저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썼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노랫말로도 대박을 쳤다. 시 '춤'과 '노래'뿐만 아니라 가수 안치환이 시인의 시로 노래를 많이 만들었는데 '저 창살에 햇살이'같은 곡은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노랫말로 일반 대중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다. 문학기행 팀과 동행했던 문재식 시인이 등에 맸던 대금을 꺼내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로 시작하는 '노래'를 연주하자 한겨울의 칼바람도 잠시 숨을 골랐다.

시인의 시는 강렬했다. 그는 반외세와 반독재, 통일을 외치고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겼다. 하지만 시인의 품성은 시와 달랐다. 생전 그와 친했던 시인들은 한결같이 '옆집 아저씨'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시인은 순했다.

시인이 떠나자 그를 사랑했던 후배들이 생가를 조성했다. 생가는 그동안 주변 땅을 조금씩 사들여 처음보다 넓어졌고 시인이 수감 생활하면서 읽었던 책 등을 보관하고 있다. 시인의 유품 대부분은 강화도에 거주하는 부인이 소장하고 있다.

김남주 기념사업회장인 김경윤 시인은 "다시는 김남주 같은 시인이 나오면 안 된다. 그 시대가 불행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며 "앞으로는 김남주 시인의 생가를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는 방법 등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남주 시인과 고정희 시인은 가까운 곳에서 태어났지만 생전에는 교류가 많지 않았다. 아버지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잘 알았지만 시인들은 활동시기가 달라 서로 잘 몰랐다고 김경윤 시인이 알려줬다.


※ 고정희 시인은

▷1948년 전남 해남 출생

▷1975년 '현대시학'에 '연가', '부활과 그 이후' 등이 추천돼 활동 시작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초혼제', '눈물꽃', '여성해방출사표', '광주의 눈물비',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등

▷수상= 대한민국 문학상(1983)

▷경력=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 여성문학인위원회 위원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등

▷1991년 6월 9일 지리산에서 실족으로 사망


※ 김남주 시인은

▷1946년 전남 해남 출생

▷1974년 '창작과 비평'에 '진혼가', '잿더미' 등 7편의 시를 발표

▷시집= '진혼가', '조국은 하나다', '사상의 거처',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이 좋은 세상에' 등

▷시선집=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학살' 등

▷수상= 신동엽창작기금상(1991), 단재문학상(1992), 윤상원 문학상(1993)

▷경력= 민족문화작가회의 상임이사,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

▷1994년 2월 13일 췌장암으로 사망


▶주최=롯데백화점·부산문화연구회

▶특별후원=국제신문

▶여기서 '신나는 문학기행'은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그동안 '신나는 문학기행'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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