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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의 공간-부산 근현대의 장소성 탐구 <17> 하야리아 부대

미군 부대와 공존한 본동마을 흔적없이 사라져… 소중한 기억까지 지우나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11-26 20:40:02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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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리아 부대 터에 들어설 부산시민공원 조성공사로 인해 흔적 없이 사라질 부산진구 범전2동 본동마을 일대의 공사 전(왼쪽) 모습과 현재의 모습.
- 수십년간 부대 밖에선
- 반미 목소리 터져나오고
- 안에선 美문화 즐기려는
- 한국인들 북적이던 곳

- 서면방향 출구 마을은
- 미군 상대로 생계 꾸려
- 경마 즐긴 할아버지
- 매표소서 일한 할머니
- 양색시에 방 빌려주기도

- 부대서 빠져나온 물자
- 국제시장 등 만들고
- 단속반 감시 받았지만
- 부산 경제의 한 축 성장

■우리 땅, 저거들 공원

하야리아 부대가 부산시로 반환되기 전까지 필자에게 이 부대는 미군에 점령당한 우리나라 땅의 일부였다. 높은 담벼락과 그 위에 둘러쳐진 철조망은 반미운동의 목소리를 차단하는 방음벽과 같아 보였다. 미국과 관련이 많았던 한국의 정치적 사건, 불균등한 한미 간 무역 분쟁 혹은 압력, 미군들의 횡포로부터 국민이 희생당할 때면 부대 앞에서 '양키 고 홈'의 목소리가 들리던 곳이었다. 우리 경찰이 하야리아 부대로 통하는 길을 차단하고, 사람들이 접근하는 것조차 두렵게 만들었다. 하야리아 부대는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에 의한 세계지배질서가 한국에 관철되는 현장이자 축소판이었다.

반면 하야리아 부대 안에서는 미국식 문화를 경험하는 한국인들로 북적였다. 부대안 클럽에서 패티김의 노래를 들으면서 싼 가격으로 스테이크를 썰었다. 빠징코 경험도 할 수 있었고, 영화관에서는 '가위질'되지 않은 '오리지널'을 볼 수 있었다. 부대 경험을 한 것은 대단한 자랑이었다. 한국 최고의 가수들은 미군부대의 무대를 거쳐 탄생하였다. 많은 미국 노래가 이들의 목소리로 젊은이들을 매료시켰다. 담장의 안과 밖의 공기가 이렇게도 달랐다. 한쪽에서는 반미를 외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미국문화에 환호했다.

■부대와 마을 사람들

가을의 기분도 느낄 틈새없이 찾아온 초겨울에 시민공원 조성이 한창인 옛 하야리아 부대를 찾았다. 정확히 말하면 하야리아 부대라기보다 공원조성에 애물단지였던 부산진구 범전2동 본동마을을 보고 싶었다. 도로 주변 몇몇 상가건물을 제외하고는 본동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백양산 계곡물로 농사를 짓던 마을 주민들이 일제시대에는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경마장에게, 한국전쟁 이후에는 하야리아 부대에게 그들의 농토 대부분을 내어준 뒤, 지금 만들어지는 시민공원에게 집터마저 내 주고 공중분해 되어 버렸다. 이렇게 마을의 기억, 아니 부산의 기억이 쉽게 지워질 수 있구나 하는 아쉬움에 철거된 마을의 잔해를 모아둔 쓰레기 더미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이런 흔적마저 공개되기를 싫어하는 철거회사 직원이랑 실랑이가 벌어졌다.

본동마을은 부대에서 서면 방향의 출구에 위치한 마을이다. 부대 출입구로 향하는 도로변에는 상가건물이 줄을 지어 있었다. 미군이 빠져나간 뒤라 인적은 드물었으나 과거 미군이 많았을 때의 흔적을 짐작할 만하였다. 'VICTORY' 'HONG KONG CUSTOM TAILOR' 'ORIENT GIFT SHOP' 등 영어로 표기된 낡은 간판들이 흡사 미국의 어느 상가를 온 느낌이었다. 영업하고 있는 가게 주인들은 대부분 수십 년을 이곳에서 미군을 상대로 생활한 사람들이었다. 미군에게 양복을 맞춰주고, 기념품을 팔았다. 1970, 80년대 항공모함이라도 들어오면 이곳은 전국에서 모여든 미군 상대 장사꾼들의 임시장터가 되었다.

이 거리 뒤편으로는 좁은 미로들로 이어져 있다. 갈림길로 잘못 들어서면 완전히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색이 바랜 기와지붕, 수십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감나무 등에서 마을의 시간을 읽을 수 있다. 일제시대 경마장에서 말 달리는 구경을 했다는 할아버지, 경마장 매표소에서 표를 팔았다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에서 더 깊은 마을의 기억을 찾을 수 있었다. 집집마다 넓은 마당에는 반드시 아래채가 있었다. 미군이 들어온 뒤 한국인 여자, 소위 양색시와 살림을 차린 미군들에게 세를 줄 목적으로 한 칸의 방이라도 더 넣었다. 부대가 들어오자 마을 사람들의 경제생활에 적잖게 도움이 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마을 사람들은 미군이 맡기는 세탁, 마을 사람들 말로 '론더리'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마을 어린이들에게도 미군은 초콜렛, 츄잉껌, 씨레이션 등 처음 먹어보는 먹거리를 제공하는 은인이었다. 지금처럼 담장이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을 때에는 부대안으로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다. 미군들이 하던 야구를 보면서 야구룰을 익히기도 하고, 야구장비를 다루면서 야구에 흥미를 가지기도 하였다. 하야리아 부대는 마을 사람들의 삶과 떼어 놓을 수 없었다.

■비공식 미군 물자 유출과 부산 경제

하야리아 부대는 주한미군이 사용할 물자를 미국에서 공수해 오면 임시 보관하였다가 전국의 미군부대로 공급하였다. 하야리아 부대의 미군물자는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흘러나와 부산 경제의 한 축을 만들었다. 서면 공구상가를 토대로 한 부산 기계공업과 국제시장과 깡통시장의 발생사가 미군부대에서 빠져나온 물자와 관련있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하야리아 부대 물건이 부산으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이 마을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부대에서 근무하는 군무원이나 카튜사와 같은 군인들이 하나 둘 들고 나오는 휴지나 오렌지들이 유통되기도 하였으나, 양공주와 중간상인 아줌마들이 국제시장과 깡통시장을 좀 더 국제적인 이미지로 만든 공로자인 셈이다. 물론 이들에게는 지켜야 할 상도덕이 있었다. 각자 취급하는 전문 상품도 있었다고 한다. 의약품과 식료품들이 일반적이었다. 이들은 항상 단속반의 감시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단속 공무원들이 택시에서 내리면 미리 알았다는 듯 기다리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밥값을 쥐어주면서 달래보기도 하고, 달려들어 싸워보기도 하고, 이것도 안되면 빌면서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기도 했다. 마을 청년들이 시내로 향하다가 갑자기 달려드는 공권력으로부터 몸 수색을 당하는 것도 다반사였다. 양담배 운반책을 단속한다는 명분 때문이었다.

1970년대 청소년기를 보낸 마을의 어느 중년 아저씨는 자기 집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데리고 온 적이 없다. 집이 어디냐는 질문에 그냥 서면이라고만 말한다. 평생을 이곳에서 생계를 꾸려왔던 할머니는 양색시들의 풍기문란을 부끄러워하는 딸들의 요구로 몇 번이나 마을을 떠날 결심을 했다. 그러면서도 생일 때면 하야리아 부대에 들어가 스테이크, 햄버거를 먹으면서 미국문화를 즐기기도 하였다. 하야리아 부대와 본동, 그곳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많은 혜택을 받기도 하면서, 이 때문에 감시와 배제의 대상이 되기도 하면서 자기들의 경험을 만들어 왔다.


# 시민공원 안 건물 영원히 보존하는데 함께 한 마을은 불도저로 밀어버려

■ 사라진 마을사람들의 기억

시민공원이라는 대규모 사업이 진행되면서 공원의 의미에 대한 논의가 적지않았다. 최초 설계안이 '부산의 역사와 생활', '기억'이 없다고 해서 긴 시간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약간의 수정안이 만들어졌다. 공원 안에 역사문화관을 만들어서 장소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고, 미군들이 사용하던 건물 몇 개를 보존하여 외형적으로 과거 공간의 이미지를 되살리는 방향으로 정리되었다.

본동마을이 완전히 사라진 현장을 보면서 부산시가 시민공원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였다. 지난 가을 경북 울진군 금강소나무숲길을 다녀온 적이 있다. 옛날 보부상들이 울진의 해산물을 태백산맥 너머 태백, 봉화 지역으로 짊어지고 나르던 길을 탐방코스로 개방한 것이다. 숲길 탐방은 산골마을 주민들과 산림청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탐방코스 안내와 각종 편의제공은 철저하게 마을주민들이 담당한다. 탐방객들은 마을주민이 현지에서 생산되는 재료로 된 식사를 제공받고, 주민들이 경험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즐거운 숲속 생활을 한다. 마을주민과 탐방숲길, 산림청이 철저하게 공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야리아 부대의 역사 또한 마을 주민들과 공존해 왔다. 부대 내 각종 문화시설을 활용해 봤고, 미군들과 오랜 시간 접촉하면서 경험하였다. 부대를 매개로 생계를 이어왔다. 하야리아 부대에 대해 이보다 더 많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부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경험을 가진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아쉽게도 시민공원은 그렇게 긴 기억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하루 빨리 개장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텅 빈 기억의 시민공원에서 우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차철욱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조교수·한국현대사 전공

※공동기획 :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의인문학연구단, 국제신문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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