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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문학기행 <34> 신경림 시인의 고향 충북 충주를 찾다

목계장터·씻김굿·남한강…고향 떠나 세상 헤매어도 늘 내 발길에 붙어있었다

  •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  |   입력 : 2013-11-19 20:01:48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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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가운데)이 고향인 충북 충주시 목계나루 터에 세워진 목계장터 시비 앞에서 문학기행팀에게 시에 얽힌 일화를 들려주고 있다. 이승렬 기자
- 옛날 지명수배 때
- 목계나루 지났고
- 이곳서 체포됐지
- 검사가 마르크스·레닌
- 책 제목 들먹여
- 석방되자 읽어봤지

- 시의 방향 달라지고
- 시적 세계도 넓어져
- 목계나루는 시의
- 변곡점이 된 셈이지

- 고향은 내 삶의
- 출발점이자 종착점
- 늘 떠도는 내게
- 원초적 근원 같은 것

2002년에 출간된 책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2권'의 '여는 글'에는 신경림 시인이 시를 바라보는 심상이 압축적으로 표현돼 있다. "시의 리듬이란 자연스러움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요즈음 시에 리듬이 없다는 지적은 결국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말이다. 시가 감동을 주는 것은 그것이 삶에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으로서, 삶과 동떨어진 시는 결코 감동을 주지 못한다. 시에 있어서 아름다움이란 삶에 뿌리박은 데서 비로소 오는 것이다." 이 책은 김지하에서 안도현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생존시인 23명을 만나고 대상 시인들의 시 세계와 삶을 신경림 시인 자신의 눈으로 읽어낸 '시인 탐방기'이다.

그보다 4년 앞서 출간된 '시인을 찾아서 1권'의 '여는 글'도 보자. "시를 가장 잘 이해하려면 그 시인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떤 조건 아래 살았으며, 그 당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를 알아야 한다."

이 시대 '시의 장인' 신경림(78) 시인. 우리 현대시와 시인들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알려면 위의 책들이나 그의 다른 시론집 '우리 시의 이해' 등을 읽으면 되고, 그의 문학 세계와 삶을 좀 더 깊이 알려면 (시집을 제외하고) 자서전 격인 '바람의 풍경', '나의 문학 이야기' 등을 읽으면 된다. 그러나 아무리 책을 읽는다고 한들 '대가'의 육성 한마디 듣고 그와 함께 보조를 맞춰 걸어보는 것만큼의 감동이 있을까. 그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떤 조건에서 살았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더 잘 알 수 있을까. 그래서 이번 달 문학기행 팀은 지난 17일 신경림 시인의 시와 삶의 뿌리인 충북 충주를 찾아 그의 유년기 추억이 깃든 생가와 초등학교 교정, 남한강 갈대밭, 그리고 목계나루를 함께 거닐었다. 이 땅의 많은 시인을 찾아갔던 신경림 시인을 이제 문학기행팀이 찾아간 것이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강바람은 쌀쌀했지만, 시인은 천진난만한 소년의 표정으로 부산에서 온 손님들을 맞아 건강한 발걸음을 옮겼다. 강바람도 덩달아 훈훈해졌다. 문학기행팀은 대문호와의 동행을 통해 비로소 그의 시와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기행에는 특별히 부산시청독서모임 회원들도 함께했다.

■고향, 떨쳐낼 수 없었던 곳

   
고향 생가 앞 느티나무 옆에 선 신경림 시인.
신경림 시인은 삼한 시대 마한의 땅이었던 충주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말해 주는 탄금대에서 문학기행팀을 맞았다. 함께 탄금대 열두대를 둘러보며 충주에 대한 이야기꽃을 한바탕 펼친 후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그의 유년기 놀이터였던 충주시 노은면 노은초등학교로 향했다. 교정에 선 시인은 잠시 회상에 잠겼다. 이윽고 이어진 그의 고백.

"이곳 노은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일찍이 금광이 개발된 곳이라, 당시에는 충주장 다음으로 큰 장이 섰고 돈도 넘쳐났다. 광부들의 호주머니를 노리고 주점, 심지어 창부촌까지도 들썩였을 정도로 당시로써는 번화했던 동네다. 아버지는 그냥 농부가 아니라 금융조합의 서기였다.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았다. 그래서일까. 아버지는 도박과 술, 바람 등에 빠졌고 책도 좀체 읽지 않았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닮고 싶지 않아 반대로 갔고 실행에 옮겼다. 아, 물론 술은 항목에서 제외해야 겠지만….(웃음). 늘 고향을 떠나고 싶었다. 그것이 어쩌면 내 방랑의 출발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향을 싫어하는 마음과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 그 감정의 갈등과 상충 속에 내 시가 탄생했다. 농무, 목계장터, 씻김굿, 달 넘세, 남한강 등 내 시와 시집들의 배경이 바로 이곳 고향인 다음에야 내가 어떻게 진실로 고향을 떠날 수 있었겠는가. 고향을 떠나고 싶어 세상을 헤매다녔지만, 가는 곳마다 고향은 늘 내 발길에 들러붙어 있었다"고 말했다.

학교 뒤로 200여 m만 가면 시인의 생가가 있다. 지금은 다른 사람의 소유지만, 주황색 양철 지붕의 아담한 집 대문 앞에는 '신경림 시인 생가'를 알리는 현판도 서 있다. "늘 그리운 곳이지만 자주 오지는 못한다"며 잠시 마당을 거닐던 시인이 집 앞 둥치 굵은 느티나무 옆에 섰다. 시집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에 담긴 시 '더딘 느티나무'의 실제 소재가 된 바로 그 느티나무다. 한학을 공부했고 개화주의자로서 일찍이 한글 전용과 농촌계몽운동에도 앞장섰던 시인의 할아버지가 심었다.

■목계장터, 시의 변곡점이 된 곳

   
신경림 시인이 2008년 펴낸 시집 '낙타'에 수록한 시 한 편을 낭송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까지만 해도 남한강 최대 나루터였던 목계나루. 내륙과 서울의 물자 교역 거점이었던 이곳에는 목계장터라는 큰 시장이 섰고 수백 호의 주민이 살아가던 번성한 곳이었다. 시인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집안 어른들의 대화 속에서 종종 '낙원'으로 묘사되던 목계를 처음 봤다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그때 본 모습을 공책에 적어놓은 것이 주변의 눈에 띄여 '꼬마 시인'으로 불렸다.

문학기행팀과 함께 찾은 목계에는 그 옛날 번성했던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나루도, 장터도, 풍요를 빌던 별신제도 남한강 갈대밭에 이는 바람 속에서 옛이야기로만 속삭일 뿐이다. 목계교라는 다리가 생긴 후 나루는 사라졌고, 장터도 그 훨씬 이전부터 흔적을 지웠다. 이제 신경림의 시 '목계장터' 시비(詩碑)만이 작은 식당 옆 공터에서 유장하게 흐르는 남한강의 물소리를 벗 삼아 서 있을 뿐이다.

시인은 "1961년께던가. 어떤 일로 지명수배를 당했는데, 고향 집에서 도망치면서 목계나루를 통과했고, 열흘쯤 뒤 돈이 떨어져서 집으로 찾아가다가 경찰에 체포된 곳도 목계나루다. 저기 둑 아래 갈대밭 일대가 나루와 장터가 있던 곳"이라며 회상했다. 그는 또 "그런데 검사가 나를 취조하면서 용공분자인 줄 알고 마르크스, 레닌의 책 제목을 들먹이며 읽었느냐고 몰아치는데, 사실은 들어보지도 못했던 책인 거라. 그래서 석 달 뒤 석방되자마자 그 책들을 읽어봤지. 그 이후 내 시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고 시적 세계도 한층 확장됐어. 목계나루는 내 시의 변곡점이 된 셈이지"라고 덧붙였다. 그만큼 시인에게는 특별한 의미였던 목계나루와 장터를 생각하며 썼던 시 목계장터는 사실은 세 차례나 고쳐 쓴 시다. 유신반대 운동에 헌신하고 있을 당시였던 1975년 말 금지 서적 소지 등의 이유로 문학평론가 염무웅 교수와 함께 또다시 비자발적 방랑생활을 하던 중 이곳을 거쳐간 후에 비로소 완성한 것. 지금의 시비에 새겨진 것이 바로 그 완성본(?)이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후략)"로 이어지는 바로 그 친숙한 명작.

■광산·길·장날, 그리고 삶의 필연

신경림 시인과 함께 남한강의 섬인 비내섬에 들어가 갈대밭 사이로 난 비내길을 걸었다. 그의 1956년 등단작인 시 '갈대'의 직접적인 무대는 아니지만, 충주 구간 남한강 변이 온통 갈대밭이니 딱히 어디라고 특정한들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시인은 스물이 갓 넘은 나이에 갈대를 통해 인생을 노래했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중략)//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그는 몰랐다.//"

갈대 무성한 비내길을 함께 걸은 시인은 "내 삶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인 곳이 고향이다. 고향을 떠올리면 세 가지가 떠오른다. 광산, 길, 장날이다. 이것들은 필연적으로 내 삶과 이어져 있었고, 늘 떠도는 내 삶의 원초적 근원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펴낸 시집 '낙타'의 표제시이기도 한 '낙타'에서 느낄 수 있듯이 신경림 시인은 어쩌면 남한강 변 갈대밭을 걸으며 별과 달과 해를 벗 삼아 모래밖에 없는 삶의 사막을 걷는 낙타가 되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 신경림 시인은

▷1935년 충북 충주 출생

▷1967년 동국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1956년 '문학예술'에 시 '갈대' '묘비' 등이 추천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 '농무', '새재', '새벽을 기다리며', '달넘세', '씻김굿', '우리들의 북', '가난한 사랑노래', '남한강', '쓰러진 자의 꿈', '우리들의 복', '저 푸른 자유의 하늘', '갈대',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목계장터', '뿔', '낙타' 등

▷동시집='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산문집='민요기행 1, 2'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1, 2' '바람의 풍경' 등

▷평론집='한국 현대시의 이해', '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 '우리 시의 이해' 등

▷수상=제1회 만해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산문학상, 단재문학상, 대산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4·19문화상, 만해상, 시카다상, 호암상 예술부문(2009)

▷경력=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상임의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의장, 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현 동국대 석좌교수


▶주최=롯데백화점·부산문화연구회

▶특별후원=국제신문

▶참가문의=http://문학기행.kr (051)441-0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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