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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이규정 씨. 국제신문DB |
- '바보같은 친구' 뜻하는
- '치우' 등 단편 7편 실어
- 작가인생 37년째인
- 진중한 작품세계
- 은은한 향기 풍겨
부산의 원로 소설가인 이규정(79) 작가가 아홉 번째 소설집 '치우(癡友)'(산지니 발간)를 펴냈다. 2002년 신라대 국어교육과 교수직에서 정년퇴임을 한 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이던 2006년 펴낸 여덟 번째 소설집 '멀고도 먼 길' 이후 7년 만에 세상에 내보낸 이번 소설집에는 총 7편의 단편이 실렸다.
시의 생명이 '다의성'에 있고 소설의 생명력이 '서사의 힘'에 있다고 본다면, 이 작가의 이번 소설집은 그 '서사의 힘'을 바탕으로 모든 문학 장르가 갖춰야 할 본질적 가치에 충실했다. 그 가치는 바로 인간의 감정과 행동에 미치는 강한 '여진(餘震)'으로, 이 '떨림'이라는 게 등단 이후 꾸준히 견지해온 그의 진중한 작품세계로부터 우러나오는 은은한 향기와 같다.
작가는 해방과 6·25전쟁, 보도연맹 사건, 연좌제, 좌우 분열과 감시 등 우리 현대사의 상처들이 오늘날까지 한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그런 질곡의 시대에 사람다운 삶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집요하게 되묻는다. '바보 같은 친구'를 뜻하는 표제작 '치우'와 해방 이후 경남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폭설' 등의 작품에서 이런 특징은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동시에 작가는 암울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살아야 했던' 인간의 영혼은 과연 어떻게 안식을 찾을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따뜻한 어조로 풀어낸다.
이런 성찰은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연결된다. 작품 '죽음 앞에서',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 '치우' 등은 한결같이 죽음을 이야기한다. 작중 화자는 지인, 친구, 배우자 등을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그들과 살았던 시대의 아픔과 인간적 관계, 일화 등를 떠올린다. 고통스럽고 쓸쓸한 경험들은 고스란히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 화자 스스로 삶과 기억으로 치환된다. 죽음을 바라보는 한 인간의 고뇌와 성찰은 독자들에게 삶과 죽음이 이분법적으로 나뉠 수 있는가, 과연 구원은 있는가 등의 근원적 물음표를 던진다.
서사의 힘만으로 작품을 풀어나가는 힘도 돋보이는 작가는 "종교가 현실을 외면할 수 없듯이 소설도 현실과 유리돼서는 안된다. 여전히 맺힌 것 많은 이 시대의 작가로서 과연 정의롭게 살아왔는가를 되묻는 일이 많은 요즘"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무리 단계의 장편소설 2편의 완성을 위해 여전히 펜을 놓지 않고 있다. 1977년 월간 '시문학지'에 단편소설 '부처님의 멀미'를 발표하며 등단한 그는 올해로 작가인생 37년째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