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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원(맨앞) 소설가와 문학기행 참가자들이 지난 27일 대관령 옛길을 함께 걸으며 작품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을 포함한 작가의 문학 세계와 길에 대한 생각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
- 유순하게 굽이도는 내리막길 걸으니
- 아들 율곡의 손 잡고
- 서울 가던 중 지었다는
- 신사임당 시화판에서 걸음 멈췄다
- "함께 걷는 길은 대화 나누기 좋지요
- 동네 길이나 냇가 길
- 가족과 함께 걸으면 더 사랑하게 될 겁니다"
만산홍엽. '산이 이글대며 불타오르는 계절' 10월 말의 대관령은 말 그대로 만산홍엽이라 할 만했다. 강원도 강릉과 평창군 사이의 백두대간을 넘는 큰 고갯길인 대관령은 예부터 영동과 영서지방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통행로였다. 신작로가 뚫리기 전인 조선 시대와 그 이전에도 수많은 시인 묵객과 관리, 장사꾼, 유랑객들이 이 길을 넘었다. 요즘에야 차를 타고 넘나들지만, 옛사람들은 굽이굽이 돌아가는 산길을 타고 넘었다. 어린 율곡의 손을 잡은 신사임당도, 관동팔경을 유람하던 송강 정철도, 진경산수화를 그리며 금강산으로 오가던 겸재 정선도 이 길을 넘나들었다.
옛날에는 유일했던 통행로가 오늘날 '대관령 옛길'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수많은 걷기 마니아가 이 길을 걸어보려고 찾아온다. 이 길이 다시 유명세를 탄 것은 어쩌면 이 사람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은비령'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 이순원(56). 강릉이 고향인 이순원은 1996년 초 어느 날 고향의 부친을 뵈러 가던 중에 당시 초등학생이던 큰 아들과 함께 온종일 대관령 옛길을 걸어서 갔다. 그날 아들과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쓴 작품이 장편소설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이다. 1박 2일 일정으로 지난 26일과 27일 진행된 10월의 문학기행은 강릉의 소설가 이순원과 함께했다. 작가가 17년 전 아들과 함께 걸었던 길, 대관령 옛길에서 문학기행 참가자 30여 명은 작가와 함께 걸으며 이순원의 문학과 길에 관해 이야기를 듣고 나눴다. 불타오르는 단풍 또한 걸으며 대화하는 작가와 독자들을 한층 흥겹게 해줬다.
■사람이 걷는 길, 인생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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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원 작가가 길 중간 쉼터인 주막터에서 즉석 문학강연을 펼치는 모습. 이승렬 기자 |
이순원의 소설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을 안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 이전까지는 한국 현대문학에서 '길'이라는 말이 제목에 들어간 작품 중에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이청준 선생의 '눈길'이 유일했다. 잘 알려졌다시피 '눈길'은 고향 집과 어머니 그리고 가족사에 얽힌 이야기로 궁극적으로는 모성애를 담은 작품이다. 그런데 이순원의 작품은 모성애도 일부 나오지만, 전체적으로는 부성애를 담았다. 그런 면에서 이청준의 '눈길'과 대비되는 작품이다. 작품 중 일부(우정에 대하여)가 2011년 개정 초등학교 5학년 국어교과서에 수록됐다.
지난 27일 오전 대관령 옛길의 출발점에 선 작가 이순원의 표정은 밝았다. 부산에서 온 30여 명의 시민 독자들과 함께 그 길을 걷는다는 감회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듯했다.
"대관령을 흔히 '아흔아홉 굽잇길'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다 합치면 백 구비도 훨씬 넘을 겁니다. 차를 타고 고개를 넘는 것이 일상화된 요즘도 이 길을 걸어보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찾아온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인데,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오늘은 내리막 코스를 택했으니 여유 있게 2시간 정도면 될 겁니다. 자 함께 출발할까요."
해발 800m 부근에서 시작된 내리막길은 들머리부터 유순하게 굽이돌며 딱 걷기 좋게 이어졌다. 이순원 작가는 "어때요? 전혀 힘들지 않죠? 아마 겨울이었으면 봅슬레이나 썰매를 타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라며 "오늘 이 길을 느리게 걷는 여러분은 대관령의 속살을 원 없이 만끽하는 셈이네요"라고 웃었다. 그렇게 크지 않은 몸집에 이웃집 아저씨 같은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는 작가의 표정은 평화로웠다.
30분쯤 걸었을까? 길옆에 세워진 커다란 시화판 앞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이순원 작가는 "신사임당이 아홉 살 나던 아들 율곡의 손을 잡고 이 길을 걸어서 서울로 가던 중에 지었다는 시가 여기 있네요. 많은 시인이 이 길을 넘나들며 시문을 남겼지만, 아마도 사임당의 이 시가 가장 널리 알려졌을 겁니다"라며 설명을 해 나갔다.
사임당과 율곡이 모자지간이었다면 작품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속에서는 40대 아버지와 10대 초반의 아들이 이 길을 함께 걸으며 나누는 이야기다. 작가는 어차피 사람이 산다는 것이 길을 걷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길을 사랑한다. 고향 가는 길이나 인생길이나 큰 차이가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길을 걷다가 만나는 사람들이나 사람이 살아가면서 연을 맺는 사람들이나 모두 다 소중한 내 길의 동반자들이다.
■대화의 길, 사랑의 길
대관령 옛길 중간쯤에 있는 주막 터에 이르자 이순원 작가는 잠시 쉬어가자며 작품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을 쓰게 된 사연을 들려줬다. 그는 "강릉지역 문인들과의 한 모임에서 아들 녀석과 대관령 옛길을 넘으며 나눴던 이야기를 했더니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소설로 써 보라'고 권하고, 한 출판사 대표도 적극 권유를 하는 바람에 쓰게 됐어요. 아들이 그날 걷고 나서 '뭔가를 많이 배운 것 같다' 말했을 때는 정말로 하루 만에 훌쩍 커 버린 느낌이더군요. 그런데 사실은 그 이야기를 쓰면서 제가 더 많이 배우게 됐죠"라고 말했다.
작품 속에도 그런 작가의 마음이 표현된 부분이 있다.
"아빠." "응." "저는 오늘 이 길이 참 좋았어요. 저 꼭대기에서부터 제가 아빠하고 걸어왔다는 게…."
"아빠도 그렇다. 네가 아빠하고 함께 걸을 수 있을 만큼 큰 것도 대견하고."
"이제 제가 힘들 때 이 길을 생각할 거예요."
"아빠도 그랬어. 아빠가 힘들 때."
(중략)
"여기 우리가 걷는 길옆의 나무들과 풀과 돌과 냇물과 그밖에 우리가 보고 온 모든 것들. 그리고 어두운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다본 별들까지도. 하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먼 거야. 앞으로 네가 살면서 걸어야 할 길도 그렇고."
"알아요, 아빠. 무슨 말인지."
"산꼭대기에서 보았을 때보다 네가 더 큰 것 같은 생각도 들고."
"저도 그래요."
"그게 이 길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이야. 오늘 네가 아빠한테도 많은 걸 가르쳐주었지. 할아버지와 아빠 사이에 대해서도. 그게 아빠와 너희들 사이와 같은 건데." 〈231~232쪽, '아직도 우리가 가야할 먼길에 대하여' 중〉
이 작품은 대화가 줄어든 오늘날의 우리 가정에서 대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소설이다. 길, 특히 함께 걷는 길은 대화를 나누기에 가장 좋은 장소이다. 이 작가는 "길이 소중한 이유는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혼자서도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함께 걷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요. 우선 가족들과 함께 걸어보라 권합니다. 꼭 대관령 옛길이 아니면 어때요. 동네 길도 좋고 냇가 길도 좋고 들판 길도 좋아요. 서로 걸으며 대화하다 보면 서로 더 알게 되고 더 사랑하게 될 겁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인생길이 사랑의 길이 되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현재 대관령 옛길은 2009년부터 강릉과 대관령 일대에 조성된 걷기 코스인 '강릉 바우길'의 제2코스에 해당한다. 작가 이순원이 강릉 바우길 탄생의 산파역을 한 것이다. 그의 길과 길 걷기에 대한 관심과 예찬은 그를 '전국 길 걷기 연합회' 초대회장까지 만들었다.
대관령박물관 앞에서 끝난 이 날의 걷기를 마치고 이 작가는 "지난 3일로 회장직을 마쳤어요. 후임 회장은 제주 올레길의 주인공인 서명숙 씨가 맡기로 했지요. 부산의 갈맷길도 여러 번 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어떤 길이라도 좋으니 꼭 걸어보세요. 그리고 강릉 바우길 홍보도 많이 해 주시고요"라며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 작가 이순원은
▷1957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76년 강릉상업고등학교 졸업 ▷1984년강원대 경영학과 졸업 ▷198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단편소설 '소') ▷1988년 문학사상 신인상 수상
▷저서 :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1992년) 얼굴(1993) 미혼에게 바치다(1995) 수색 그 물빛 무늬(1996) 어떤 봄날의 헌화가(1997) 해파리에 관한 명상(1998) 독약 같은 사랑(1998) 그대 정동진에 가면(1999) 19세(1999) 순수(2000) 첫사랑(2000) 나무(2007) 첫눈(2009) 영혼은 호수로 가 잠든다(2009)
▷수상: 1996년 제27회 동인문학상('수색, 어머니 가슴속으로 흐르는 무늬'), 1997년 제42회 현대문학상('은비령'), 2000년 제1회 이효석문학상('아비의 잠'), 제7회 한무숙문학상('그대 정동진에 가면'), 2006년 제1회 허균문학작가상, 제2회 남촌문학상
▶주최=롯데백화점·부산문화연구회
▶특별후원=국제신문
▶참가문의=http://문학기행.kr (051)441-04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