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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문래예술촌 예술가들에게 창작 전시 공연 커뮤니티 지원 공간 역할을 하는 문래예술공장. |
- 쇠락의 길 걷던 철공소 밀집지역
- 10여년 전부터 임대료 고민하던
- 예술가들 모여들어 이질적 공생 시작
- 주민들과 소통 통해 낡은 골목 활기 돌며
- 찾아오는 이들 늘어
- 서울시가 부지 매입
- 갤러리·작업실 갖춘 '문래예술공장' 개관
- 지역 예술가 힘모아 아트페스티벌 마련
- 해마다 판 키워가며 서울 대표 축제 성장
서울은 한국의 '중심부'이다. 정치 경제 사회뿐 아니라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자본과 인력의 절대다수가 서울로 집중되고 있는 것 또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인구 1200만 명의 이 거대한 도시에도 화려함과 그늘이 공존한다. 사회구조가 변하면서 예전에는 번성했던 지역이 쇠락의 길을 걷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를 맞는 지역도 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일대는 전자에 해당한다. 30, 40년 전만 해도 이 일대는 대한민국 최대의 철재상가와 철공소 밀집지역으로서 경제도 '쌩쌩' 잘 돌아갔던 지역이다. 그러나 1990년을 기점으로 쇠락하기 시작했고, 언제부턴가 소음과 먼지만 날리는 거리가 됐다. 옛 영화를 그리워하는 지역이 된 것이다. 그랬던 문래동이 최근 문화예술의 기운을 받아 활력을 되찾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문래예술촌'과 '문래예술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예술의 꽃이 활짝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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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과 전시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문래예술공장 내 다목적 발표장. |
정확히 말하면 서울 영동포구 문래동 3가. 이곳은 1960년대 중반부터 50여 년째 '철공소 골목'으로 불리고 있다. 크고 작은 철공소가 1300여 곳이나 몰려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제법 규모가 큰 철공소들이 자리 잡은 골목을 '샤링 골목'이라고 부르는데, 샤링은 영어의 시어링(shearing)에서 온 말이다. 시어링은 금속을 원하는 모양대로 자르는 작업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철판이나 강판, 봉 등을 자유자재로 재단해 크고 작은 기계 부품 등으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옛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 일대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람 빼고 못 만드는 게 없었다"는 말이 지금도 은근한 자부심을 동반한 채 회자하고 있다. 그 자부심은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영등포 일대에 크고 작은 공장들이 집중적으로 건설될 무렵부터 철공소 단지가 형성됐고 한때는 대한민국 철강재 판매 1번지로, 소위 '잘 나갔다'는 역사적 자부심이다. 하지만 공장들이 이전하기 시작한 1990년 무렵부터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었다.
요즘의 문래동은 낮과 밤이 다른 '두 얼굴의 동네'로 변했다. 낮에는 여전히 철공소의 쇠 깎는 소리 망치 두드리는 소리 등의 금속성 소음과 기름때, 먼지, 윤활유 냄새 등이 동네를 장악하지만 밤에는 이들 철공소의 구석구석에서 야행성 예술가들이 창작 열기를 뿜어낸다. 낮에는 철공소지만 밤에는 예술촌이 되는 것이다.
문래동 일대 철재상가 및 철공소 골목을 처음 찾아가면 도대체 이곳에서 예술을 만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 의문부터 든다. 하지만 조금 자세히 찾아보면 철공소 또는 철재상가 건물의 2, 3층 곳곳에 얼굴을 내민 아주 작은 공방들의 수줍은 간판을 찾을 수 있다.
서울의 예술가들이 이곳에 예술촌을 형성하게 된 것은 자연 발생적이었다. 쇠락하던 철공소 거리 건물들의 2, 3층에 공간이 나기 시작하자 홍대 앞, 대학로 등에서 비싼 임대료 때문에 밀려난 예술가들이 찾아들었다. 저렴한 임대료, 넓은 작업공간, 편리한 교통은 젊지만 가난한 예술가들에게는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2003년 무렵부터였다. 철공소 밀집지역에 예술의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서울 전역에 소문이 나면서 방문객도 많아졌다. 서서히 지역 활력도 되살아나고 있었다.
■문래예술공장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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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래동 철물상가 골목의 한 구멍가게 외벽에 그려진 벽화. |
서울시는 이들 예술가를 지원하기 위해 2010년 '문래예술공장'을 열었다. 철재공장 부지를 사들여 지하 1층~지상 4층, 총면적 2820㎡에 대형작업실, 다목적 발표장, 카페형 갤러리, 세미나실, 레지던스 공간 등을 마련한 것이다. 문래예술공장은 시각예술뿐 아니라 밴드 등 음악 관련 예술, 미디어, 퍼포먼스 등의 장르까지 지원하고 나섰다. 지원받는 예술가들도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기름때 묻은 낡은 골목길의 시멘트벽에 벽화를 그리고 공장을 실험적 예술공간으로 변신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문래예술공장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문래동예술 투어'가 안착하면서 지역이 변신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지역주민과 가까이 가려는 예술가들의 노력에 호응해 주민과 철공소 직원들의 태도도 바뀌었다. 공연과 전시를 관람하고, 행사 후에는 예술가들과 함께 거나한 뒤풀이도 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쓰다 남은 자투리 철재를 재료로 쓰라며 조형 예술가들에게 무상으로 건네주기도 했다.
■시민과 소통하는 예술축제
철공소 골목 예술촌의 예술가들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하고, 공동 블로그도 운영하며, 다른 장르 간 공동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그리고 이 지역의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페스티벌을 추진, 호응을 얻으면서 이제는 서울의 대표적인 젊은 예술가들의 명물 아트페스티벌로 성장시켰다.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작가들은 2007년 6월에 거리축제인 '경계 없는 예술프로젝트 : 문래동'을 열었고, 10월 연합축제인 '물레아트페스티벌'로 시민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축제로 판을 키웠다. 매년 10월에 열던 페스티벌은 올해 8월(8월 21~25일)로 옮겨 '간객(間客)'을 주제로 한 기획전, 물레페스티벌의 판을 처음 연 '춤추는 공장'의 융합 공연, 국내·외 예술가들을 초청한 워크숍 등으로 속을 꽉 채웠다. 해를 거듭할수록 페스티벌에 관한 주변의 관심과 기대가 높다.
그래서 문래동은 여전히 젊은 작가들이 선호하는 동네다. 지난 3월 입주한 30대 선후배가 운영 중인 '재미공작소'는 다양한 기능을 하는 대안 문화공간이다. 예술가들의 입소문을 타고 출판기념회, 개인전, 공연, 창작워크숍까지 자유롭게 진행되고 있다. 인디 공연과 유화 강좌, 시 창작 강좌 등으로 달력이 꽉꽉 채워지고 있다.
문래예술공장은 이들 젊은 예술가에게는 베이스캠프이자 놀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페스티벌이 열리고 유망 예술가 발굴 및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가 육성 인큐베이터의 기능도 수행한다. 젊은 예술가들과 이들의 예술을 접하려는 일반인들이 몰려들면서 활기가 넘치는 동네로 문래동이 변모한 것이다.
고민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재개발 재건축 바람이 이곳을 엄습하고 있어 미래가 불투명하다. 젊은 예술가들은 "아파트와 주상복합에 밀려난다면 또 다른 곳으로 유랑해야겠지만, 이 지역은 자발적 예술촌인 만큼 서울시 등 행정 당국에서 창조지구 등으로 지정해 계속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 외부 전문가들이 본 부산 컬처노믹스
- BIFF 덕분에 조폭·항구도시 이미지 바뀌어
- 감천문화마을도 성공 사례
부산 역시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재생과 지역 활성화에 주목한 지도 어느 정도 세월이 흘렀다. 외부 전문가들은 현재 부산의 '컬처노믹스'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한국언론재단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최근 개최한 관련 강좌에 강사로 참석한 전문가들은 대체로 후한 평가를 하고 있다.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세계화를 주도했고, 현재는 강원도 평창에서 지역 문화예술센터인 감자꽃스튜디오를 세운 용인대 문화콘텐츠학과 이선철 교수의 말이 인상적이다. 이 교수는 "문화예술이 지역 이미지를 변화하는 데 얼마나 유용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부산국제영화제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부산'이 항구도시, 조폭도시, 마약도시 등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면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드러났듯이 이제는 부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영화다. 부산은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 패션 변신에 성공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지역 활성화를 자꾸만 경제적인 부분과 연계해서 성급하게 '인풋(투자) 대비 아웃풋(생산 소득)'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과 행복지수의 향상이다. 경제적인 부분은 그다음이다"고 덧붙였다.
마을 만들기를 통한 생활문화공동체사업의 전문가인 신동호 코뮤니타스 대표는 "행정편의주의식 추진을 경계해야 한다. 마을의 정체성, 특수성, 지역성에 기반을 둔 스토리텔링, 이미지텔링을 갖고 마을을 만들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부산 감천문화마을은 공공디자인 전문가와 행정, 주민들의 협업화가 긴밀히 진행되면서 성공한 사례다. 다른 지역의 마을 만들기의 귀감이 될 만하다. 지역 주민의 동의와 참여가 있을 때에만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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