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폐막을 하루 앞둔 11일 오후 영화의전당 두레라움광장에서 열린 오픈 토크 '타란티노가 봉준호를 만났을 때'에서 타란티노 감독을 직접 보고 이야기를 듣기 위해 500여 명의 영화팬들이 운집해 영화제 막바지 열기를 높이고 있다. 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 타란티노

- "'괴물' 처음 보고 봉 감독에 놀라
- 1970년대 스필버그 재능 지녀"

# 봉준호

- "1994년 '펄프 픽션'에 충격…
- 배우 변희봉의 잇단 캐스팅
- 타란티노에게 영향 받은 것"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은 이상하고 완전히 망가진 가족이 영화 속 스타다. 그런 인물들은 미국에서 볼 수 없다. 그런 영화들이 장르 재창조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형님 영화 속 인물들이 더 이상해요."(봉준호 감독)

세계적 감독들은 서로 통했다. 11일 오후 영화의전당 두레라움광장에서 열린 타란티노, 봉준호 감독의 '오픈 토크'는 거장들의 유쾌한 영화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검은색 셔츠와 바지, 선글라스 차림으로 등장한 타란티노 감독은 손으로 'V'자를 그리며 부산의 시네필들에게 인사했다. 2시간 전부터 광장을 가득 메우고 기다렸던 관객들은 타란티노 감독에게 환호성으로 답했다. 그는 "마카오를 방문했는데 친구가 봉 감독을 만나게 해준다고 해서 충동적으로 왔다. 부산에서 봉 감독을 처음 만나 이틀 동안 즐겁게 지냈다"고 소개했다.

타란티노 감독은 "봉 감독 영화는 '괴물'을 처음 보고 놀랐다. 20년 동안 많은 감독을 만났는데 1970년대 스필버그의 재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봉 감독은 "1994년 '펄프 픽션'을 보고 충격받았다. 그래서 일부러 앞서 나온 '저수지의 개들'을 찾아봤다"고 타란티노 감독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타란티노 감독은 한국에 대한 특이한 경험을 공개했다. 그가 비디오가게 점원으로 일하며 홍콩의 무협 영화 등에 열광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졌다. 타란티노 감독은 "1970년대 홍콩에서 활동한 한국 감독들의 무협 영화를 접하면서 한국이 일본에 강제로 억압당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역사책에서 배우기 이전에 영화를 통해 한국의 역사를 배웠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부산에 와서 영화제 카탈로그를 보다가 장철 감독의 '외팔이'를 발견하고 정말 기뻤다. 극장에서 나의 영웅인 장철 감독의 영화를 35㎜로 볼 수 있어 흥분됐다"고 말했다.

	11일 부산 방문 이유 등을 밝히고 있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타란티노 감독은 "봉 감독은 연쇄살인범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들었다"며 질문을 던졌고 봉 감독은 "'살인의 추억'을 준비하면서 공부를 많이 했고 해외 영화도 '양들의 침묵' 같은 영화를 연구했다"고 답했다.

반대로 봉 감독도 궁금했던 부분을 물었다. 그는 "내 영화에는 변희봉이라는 배우가 3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그분은 TV 드라마에 주로 나왔지만, 영화는 거의 10년 동안 찍지 않았다. 많이 잊힌 배우였다. 그런 면에서 나는 타란티노 감독에게 영향받았다. '펄프 픽션'에서 한물간 스타였던 존 트라볼타를 되살렸다. 그런 배우를 쓰는 이유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타란티노 감독은 "영화마다 비슷한 역할만 하는 배우들이 있다. 나는 그런 배우들에게 좋은 시나리오를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줄곧 했고 그것이 좋은 배우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장르에 대해 타란티노 감독은 "연쇄 살인범 이야기는 내가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고 고개를 흔들었고, 봉 감독은 "2차대전 중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절대 불가능한 장르는 뮤지컬이다. 노래가 시작되는 순간 부끄러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 말을 들은 타란티노 감독은 "봉 감독의 대탈출을 뮤지컬 버전으로 보고 싶다"고 재치 있게 거들었다.

1시간을 훌쩍 넘긴 두 감독의 즐거운 대화는 관객들의 진한 아쉬움 속에 끝났다. 관객들은 박수와 환호성으로 타란티노 감독을 기분 좋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