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호(왼쪽)와 배창호 감독이 10일 오후 해운대 한 호텔 커피숍에서 대담하면서 그동안의 영화 인생과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

- 1970·80년대 전성기 누린 두 감독
- 故 최인호 감독·부산과의 인연 추억
- 과거 제작 환경·문화정책 고충 밝혀
- 대기업화·투자자 위주 현실 비판도

이장호(68)와 배창호(60) 감독. 1970, 80년대는 두 감독의 전성시대였다.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시네필에게는 낯설지만, 굳이 비유한다면 오늘날 박찬욱, 봉준호 감독이라고 보면 된다. 두 감독이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함께 찾았다. 10일 오후 해운대 한 호텔 커피숍에서 그들을 만나 과거 영화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었다.

-영화제를 찾은 계기와 근황은.

▶18년 만에 만든 장편 영화 '시선'이 초청돼 BIFF에 데뷔하는 기분이다. 현재 서울영상위원장 역할도 맡고 있다.(이장호·이하 '이'로 축약)

▶부산영상위원회가 주최하는 '2013 FLY(차세대 영화인재 육성사업)'에서 지도 감독하고 있다. 오늘 각국 학생들과 내 영화를 보고 마스터클래스를 영어로 했다. 영어가 가능한 감독을 찾다가 나를 선택한 것 같다.(배창호·이하 '배'로 축약)

-두 감독의 인연은.

▶돌아가신 최인호 선배가 이 감독을 소개했다. 최 선배는 대학(연세대) 연극부 선배다. 1977년 자작 시나리오를 들고 최 선배를 찾아갔더니 이 감독을 소개했다. 1978년 아프리카 케냐로 발령이 나서 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없어 1년 만에 사표 쓰고 돌아와서 처음부터 이 감독 밑에서 퍼스트 조감독으로 일했다. 그 당시 퍼스트 하려면 4, 5년 걸렸는데 운이 좋았다.(배)

▶배 감독이 내 영화 '바람불어 좋은날'(1980년)과 '어둠의 자식들'(1981년) 조감독을 한 뒤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로 데뷔할 때 기획을 맡았다.(이)

-최근 돌아가신 최인호 작가와 남달랐는데.

▶가슴 아프다. 문인들과 동창들은 조문하고 돌아갔지만 나, 배 감독, 안성기, 김수철, 이명세 감독은 며칠 동안 장례식장을 지켰다.(이)

▶영화 관계보다 개인적인 친분이 더 깊어 충격이 컸다. 나와 '적도의 꽃'(1983년), '고래사냥'(1984년), '깊고 푸른밤'(1985년)을 함께했고 이 감독과는 '별들의 고향'(1974년)과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쓴 '그래 그래 오늘은 안녕 '(1976년)을 작업했다.(배)

-부산과도 인연이 깊다고 들었다.

▶1970년대 말 부산에 영화사가 만들어졌다. 현진영화사였는데 부산지사가 생겨 덕분에 부산지역 언론인과 많이 교류했다. 특히 최화수 기자가 기억에 남는다.(이)

▶이 감독이 조감독으로 첫 촬영을 했던 곳이 을숙도였다. 또 나의 감독 데뷔작인 '꼬방동네 사람들' 첫 촬영을 부산에서 해 부산은 잊을 수 없는 곳이다.(배)

-1970, 80년대는 두 감독의 시대였다.

▶극장 간판에 감독 얼굴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이 감독이 처음이다. 그리고 1980년대는 내 얼굴을 그려 스타 감독의 뒤를 이었다. 우리 둘을 혼동한 사람들이 '배장호', '이창호'라 부르기도 했다.(배)

▶임권택, 이두용 감독도 당시에 함께 활동했다. 그분들은 작품성에 치중해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고 배 감독과 나는 흥행과 작품성 모두 신경을 썼다.(이)

-두 분도 작가주의 감독인데 해외에 진출하지 못했나.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와 이 감독의 '어둠의 자식들'이 같은 시기(1981년)에 만들어졌다. 그런데 당시 군사정권의 문화 정책이 '어둠의 자식들'처럼 소외계층 이야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멜로 드라마로 탈바꿈했고 엉뚱하게도 '해외 반출 금지' 품목으로 묶였다. 나의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 역시 해외반출 금지 품목으로 지정됐다가 민주화가 된 1987년에 풀렸다. 그런 면에서 지금 감독들은 좋은 환경에서 일한다. 우리는 코미디나 멜로 등의 옷을 입혀서 소외계층의 이야기를 겨우 다룰 수 있었다.(배)

▶내 작품 중 3개가 해외 반출 금지됐는데 사회를 풍자한 '바보선언'은 엉뚱하게 해외 우수 홍보 영화가 됐다. 그 당시 문화정책의 수준이 그랬다.(이)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작품이 뜸하다.

▶제작 시스템이 대기업화하면서 감독 중심에서 젊은 기획자들이 주도하게 됐다. 그래서 나이 든 사람들은 배제되고 세대교체가 이뤄졌다.(이)

▶영화계 흐름은 10년 주기로 변한다. 1990년대 대규모 자본이 유입되면서 영화 환경이 바꿨다. 개인적으로 '젊은 남자'(1994년)를 만들면서 기획자와 투자자 위주로 환경이 달라진 것을 느꼈다. 자본과 타협하기 싫어 독립영화로 방향을 전환했으며 꾸준히 영화를 만들고 있다.(배)

-앞으로 영화 계획과 젊은 영화인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뒤늦게 신앙의 의미를 발견했다. 앞으로 영혼에 대한 영화를 만들 것이다. 젊은 친구들에게는 지금의 영광보다는 자기만의 표현을 계속하라고 권하고 싶다. 언젠가는 빛을 볼 것이다.(이)

▶영화보다 자신의 인생을 살라고 충고하고 싶다. 영화는 홈비디오로도 자기의 목소리를 만들 수 있다. 주류 영화계에 뛰어들고 싶으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해야 하는지 사전에 충분히 알아야 한다.(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