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총무원장에 현직인 자승 스님이 여러 논란 속에서도 재선된 것은 개혁과 변화보다는 안정을 바라는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보선 스님과의 초박빙 승부가 될 거라는 게 당초 예상은 빗나갔다.

자승 스님이 선거인단 311명 가운데 179표를 얻어 129표에 그친 보선 스님을 비교적 큰 표차로 이긴 것은 풍부한 행정경험을 인정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보선 스님은 도덕성을 표어로 내걸고 자승 스님에게 강력한 도전장을 던졌지만 철저히 현실적인 표심에 부딪히고 말았다.

자승 스님은 지난해 백양사 도박 사태에 대한 책임과 불출마 약속 파기 논란을 뚫고 1994년 조계종 개혁 이후 처음으로 연임에 성공한 총무원장으로 남게 됐다.

선거는 끝났지만 후유증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승리를 거둔 자승 스님이 두 번째 임기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 또한 간단치 않다.

이번 선거도 이전투구 양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구태가 되풀이됨으로써 후보들과 조계종뿐 아니라 종교계 전반에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특히 1위 자리를 놓고 각축을 벌인 자승 스님과 보선 스님은 선거 막바지로 치달을수록 서로에 대한 공격과 비방이 심해졌다.

자승 스님은 보선 스님의 환속 의혹을 물고 늘어졌고, 보선 스님은 자승 스님의불출마 약속 파기와 승적 의혹 등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자승 스님이 협박전화를 하고 현직 총무원장의 자리를 이용해 불공정 선거를 치르고 있으며, 보선 스님은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고 술수를 쓴다는 주장도 나왔다.

선거 과정에서는 도박과 술집 출입, 대처(은처), 금권선거, 보직 밀약 등 불교계의 고질적 병폐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실 이런 문제는 불교계 안팎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조계종 종단쇄신위원회가 지난 6월 마련한 윤리규정 '승가청규'에는 이런 현실에 대한 불교계의 고민이 배어 있다.

승가청규에는 △아파트·단독주택 소유 또는 거주 △주식·펀드 등 투자나 투기△성지순례나 학습 목적 이외의 해외여행 △도박 및 호화 스포츠 △호화 숙박시설 투숙 등의 금지나 자제를 요청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법계에 따라 탈 수 있는 자동차 분류 기준표도 포함됐다. 본사주지급인 승랍25년 이상 스님은 배기량 3천㏄ 이하의 차를 사용하라고 권고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도 최근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관련 기사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면서 '협잡·사기(Monkey Business)'란 표현까지 썼다.

자승 스님이 넘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약속을 뒤집는 종교 지도자를 바라보는 신자와 국민을 설득해내야 한다.

또 자신이 공언한 것처럼 '대다수 여론이 아니라 소수의 의견만 반영되는' 간선제를 어떻게 개선할지도 관심사다. 공정하고 중립적인 선거관리도 개선 대상이다.

이번 선거 과정이 불교에서 강조하는 '비움'과 '내려놓음', '약속'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의 연속이었다는 비판을 누그러뜨려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주요 후보들이 주장해 온 '청정승가' 구현을 말이 아닌 실천으로 옮기는 동시에 선거를 둘러싸고 되풀이되는 분란을 조정하고 화합을 이끌어내는 것 또한 무거운 짐이라는 게 조계종 안팎의 시선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