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BIFF)가 탄생한 지 어언 18년. 매년 가을이 무르익어갈 즈음이면 70세를 훌쩍 넘긴 지금도 설렘과 기대가 가득하다. 50대 시절부터 함께했던 BIFF의 즐겁고 흥분된 시간 때문이다.

부산에서 열리는 BIFF를 통해 아시아, 유럽, 미국, 중남미, 아프리카 등 현지에 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다양한 장르의 보석 같은 영화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부산 시민으로서 참으로 행운이고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영화제가 시작된 1996년 9월, 설레는 마음으로 남포동 피프(당시는 PIFF였다)광장을 찾았을 때 깜짝 놀랐다. 피프광장은 영화 관객들로 인산인해였고, 흥분과 축제의 도가니였다. 영화에 대한 기대도 컸지만, 운집한 관객들의 물결 속에 같이 떠밀려 다니며 움직이는 자체가 흥분되고 가슴 설레는 즐거움이었다. 영화뿐만 아니라 이곳저곳 설치된 영화 홍보 부스를 기웃거리며 안내 책자, 자료, 기념품을 찾아다니는 즐거움도 넘쳐났다.

그뿐이랴. 개막작과 폐막작이 상영되던 수영만 시네마테크 야외상영장은 아마도 영원한 추억과 그리움으로 남을 것 같다. 바다를 등지고 하늘을 천장 삼아 달빛과 별빛이 흐르는 가운데 대형 스크린 앞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환상적인 광경을 상상해 보라. 미처 개·폐막작이나 화제작 티켓을 구하지 못한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마니아들은 현장분을 사기 위해 매표소 앞에 돗자리를 깔고 김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오들오들 떨면서 밤을 새우기도 했는데, 그 열광적인 모습에 감탄하며 나 또한 분위기에 휩쓸려 축제 기분을 만끽했다.

2011년 영화의 전당이 완공되고 BIFF의 중심이 완전히 해운대로 옮긴 뒤부터는 남포동 피프광장을 중심으로 응집되어 분출되던 관객의 열기가 분산되고 옅어진 것 같아 씁쓸함마저 느껴진다. 남포동은 BIFF의 시발점이고 이정표가 아니겠는가.

그래도 웅장한 영화제 전용관이 생겨 뿌듯하고, 넓은 공간과 광장이 있어 넉넉하고 여유로운 느낌이 들어서 좋다. 특히 남포동 시절, 비프광장을 가득 메운 젊은이들의 기세에 눌려 소외되었던 중장년층과 노년층이 하나둘 모여드는 모습이 반갑다. 영화의전당의 넉넉한 품에서 영화 예술을 향유하려는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다만 이런 아쉬움이 있다. 최근 영화제 측이 실버나 장애우를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며 따로 배려하겠다고 하는 데 가끔 불편할 때가 있다. 그들이 영화를 편하게 볼 기회를 기회와 장소를 마련한다는 취지는 고마운 일이지만, 굳이 노인과 장애우를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남녀노소, 장애우와 비장애우 등 전 세대와 계층이 어울리며 소통할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그래도 부산에 살아서 좋고, BIFF가 있어서 좋다. 가을 정취를 즐기며 BIFF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은 나만의 낭만이고, 나만의 특권이다.

이종옥 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