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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문학기행 <32> 재일교포 시인 및 일본 시인과의 교류

교포 시인이든 일본 시인이든 시인의 모국은 오로지 '언어'이기에

  • 국제신문
  •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  |  입력 : 2013-10-01 20:15:47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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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기행에 참가한 한국 시인들과 재일한국인 문인들이 지난달 10일 오사카 시내 킷챠미술관에서 시낭송회를 겸한 문학교류 행사를 가진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승렬 기자
- 오사카에서 만난 재일한국인 문인들은
- 부모의 고향에서 온 시인들을 뜨겁게 맞았다

- 핏줄이 하나로 통하는 동포 문인은 물론
- 일본인 문인들도
- 낭송되는 시 몇편에 울고 웃으며
- 서로를 깊이 이해했다

한국의 현대문학 가운데 현대시의 발전은 일정 부분 일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흐름 속에서 빚어진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한국 현대시는 형식적 측면에서의 일본 현대시 영향에서 머무르지 않고 한, 체념, 희망, 열정, 박애, 참여, 비판 등 우리 고유의 정서와 의지를 접목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미 일본 시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 최근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한일 시인 간의 문학교류는 지금 이 시점의 양국 시의 완성도를 간접적으로나마 비교하고, 정치와 이념을 떠나 세계 공통의 언어예술인 문학을 매개로 문학인들끼리 순수하게 이해의 시간을 가졌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오사카에서 열린 재일한국인 문인들과의 문학교류 행사의 경우, 살아가는 땅은 다르지만 '우리는 한 핏줄'이라는 일체감을 문학을 통해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하늘 푸르른 가을 날 문학기행 통산 130회를 기념해 일본 땅에서 펼쳐진 문학교류 행사에 참여한 한국 문인은 서울의 문정희 박주택 한성례 정혜선 시인과 부산의 한창옥 전명숙 김성배 시인, 경남의 송미선 김이듬 시인 등이다.

■시의 향연으로 충만했던 나고야의 밤

   
재일한국인 문학 1세대의 주역인 정인 시인이 시를 낭송하고 있다.
나고야는 일본 정중앙에 있는 고도다. 일본 3대 장군으로 불리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모두 이 지역 출신이다. 그만큼 주민의 역사적 자부심도 강하다. 사통팔달의 교통 중심지로서 외부인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상업 중심지였기에 나고야는 부산과 마찬가지로 개방성이 크다. 나고야의 교통 중심지인 나고야역 인근에 있는 츠치야호텔은 일본 중부지역의 많은 문인들이 수시로 문학행사를 벌이는 오래된 명소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지난달 8일 오후 6시 한국 시인 10여 명의 시인과 일본의 시인 30여 명이 한일대역시집 '바다꽃이 피었습니다'(해성) 출간을 기념하는 시 낭송 교류회를 열었다. 일본 시인들은 한일대역시집 출간에 많은 힘을 쓴 나고야 지역 중심의 '우추시진(宇宙詩人)' 소속 회원들과 도쿄 오사카 요코하마 하코다테 등 타 지역에서 온 시인들이었다. 이날 행사에서는 쥬니치 신문, 아사히 신문 등 일본 언론에서도 열띤 취재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우선 이번 한국 시인단의 단장이자 일본에도 잘 알려진 문정희(동국대 겸임교수) 시인이 인사말을 하기에 앞서 "이번 행사를 준비하던 중 며칠 전 갑자기 운명하신 우추시인회 회장 스즈키 코 시인의 명복을 빈다"고 운을 떼 분위기를 숙연케 했다. 이어진 인사말에서 문 시인은 "시인의 모국은 지역이 아니라 언어다. 시인은 슬픔 나라 고통 나라의 백성이다. 시인은 가장 슬프고 아픈 사람의 상처를 대신 울어주는 존재"이라며 "지진과 쓰나미라는 자연 재해 앞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며 '당신이 아프면 온 우주가 아프다'고 함께 울었듯이 전쟁이라는 인간의 재앙 앞에 끌려가 상처받고 무너진 젊은 여성들의 비극적인 삶을 함께 울어주는 것이 시인"이라고 말했다. 문 시인은 아울러 "최근 출간된 한일대역시집을 읽으면서 이제 두 나라 시인들은 아시아를 벗어나 함께 세계로 나아가 큰 날개를 펼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답사에 나선 전 일본현대시인회장 겸 일본펜클럽 명예회원인 하세가와 류세이 시인은 "한국 나이로 86세이고 심근경색을 앓고 있으면서도 도쿄에서 이곳까지 기꺼이 왔다. 한일 양국 시인들이 뚜렷한 연대감과 끈끈한 정, 뜨거운 우정으로 행복 가득한 미래를 함께 만들어나가기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문양'이라는 시를 낭송한 박주택(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시인은 "젊은 시절 1920, 30년대의 일본 근대시인들의 시를 탐독했었다. 한동안 못 읽다가 얼마 전 1990년대 일본 시를 다시 읽으면서 모더니티가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며 "나고야는 꽃과 칼이 함께 흐르는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곳에서의 뜻깊은 만남을 통해 양국 시인들의 우정이 더 깊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록밴드에서 보컬로도 활동 중이라는 일본 측의 나카가와 히로시 시인은 "한국 영화 '마더'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서울 이태원에서 한 달간 살기도 했다"며 한국에 대한 기억을 회상했고, 시즈오카에서 영어교사로 재직 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우루시바타 유이네 시인은 "한국의 현대시를 자주 읽는다. 한국의 겨울 날씨만큼이나 한국의 시는 '서늘하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말해 관심을 끌었다.

1부를 마치고 2부 식사 자리에까지 이어진 시 낭송회에서 분위기가 무르익자 도쿄 출생으로 올해 나카하라추야상을 받은 호소다 덴소 시인이 "내 부모님은 한반도 남부, 즉 전라남도 강진군 출신이다. 부모님의 고향집을 찾아보려고 강진을 몇 차례나 방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며 격앙된 감정을 억누르며 자신의 이력을 고백하기도 했다. 분위기가 반전되자 첫 인사말을 했던 86세의 하세가와 류세이 시인이 마이크를 잡고 "나의 3대 할아버지도 한국인이다"고 폭탄발언을 해 양국 시인들을 놀라게 했다. 문 정희 시인은 "참 아름다운 밤이다. 시인의 죽음은 시의 죽음이 아니다. 시가 책 속에만 갇혀 빛을 보지 못할 때, 바로 그때 시는 죽고 시인도 죽는다"는 말을 남겼다.
이날 행사의 일본 측 진행을 맡은 일본 우추시인회 부회장인 무라사키 케이코 시인은 "3년전 부산 요산문하관에서 열렸던 한일 시인들의 교류회 기억이 생생하다. 앞으로도 더 자주 교류의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를 통해 양국 시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동질감이 무르익을수록 이날 나고야의 밤은 시향(詩香)에 휩싸인채 깊어만 갔다.

■문학으로 재확인한 우리는 '한민족'

오사카는 일본에서도 재일한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도시다. 이곳에서의 재일한국인 문인들의 활동도 활발할 수밖에 없다. 처음으로 이곳에서 한국의 시인들과 재일한국인 문인들이 문학을 통해 민족적 동질감을 확인하는 시 낭송회 겸 교류행사가 열렸다. 지난달 10일 오후 5시 오사카 구도심의 '킷챠(喫茶)미술관'에서 그 자리가 마련됐다. '차를 마시는 갤러리'라는 의미를 지닌 장소여서인지 많은 그림과 조각품이 실내 곳곳을 환하게 밝혀주는 가운데 재일한국인 시인과 소설가 수필가 등 20여 명이 한국 시인들을 화사한 미소로 맞았다. 오사카에서 재일한국인 가수로 활동하는 강석자, 최대현 씨가 '진달래꽃' '보리밭' 등의 가곡을 부르며 축하공연을 했다.

킷챠미술관의 주인이기도 한 정장 시인은 "재일한국문학은 한국문학과 일본문학의 중간지대에서 어정쩡하게 자리한 것 같다. 마치 귀화는 하지 않았지만, 남한도 북한도 선택하지 않고 무국적자로 남아 남한과 북한을 갈 수도 없는 나를 비롯한 많은 문인들의 처지와 비슷하다. 하지만 오늘은 문학으로 하나되는 한민족의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고 말했다. 제주도 출신의 소설가 김길호 씨는 "일본에서 한글로 소설을 쓰고, 시도 가끔 쓴다. 오사카의 한국인 밀집지역인 이쿠노의 시장골목을 걷다 쓴 시를 읽겠다"며 '조선시장'이라는 자작시를 낭송했다.

수필가 박재영 씨는 "나는 시인은 아니지만 평소에 좋아하는 시를 읽으려 한다. 전쟁으로 인생이 파괴되고 희생되는 젊은이가 다시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며 김시권 시인의 시 '창을 열어다오'를 낭송하기도 했다. 이날 짤막한 느낌과 곁들여 시를 읽어 나가는 재일한국인 문인들의 순서가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자 한국 측 시인 가운데 일부는 그들의 감정에 동화된듯 조용히 눈시울을 적시는 이도 적지 않았다. 박주택 시인은 "비자발적 디아스포라의 삶이 재일한국인 문인들의 작품 속에 녹아 흐르는 듯해 숙연한 느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는 1953년 김시종 시인 등과 함께 문예지 '진달래'를 발행하면서 전후 재일한국인 문학계를 이끌어온 장본인인 정인 시인이 참석해 "나의 문학 인생에서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시 낭송을 하겠다"며 시를 읊어 내려감으로써 한국 시인들뿐 아니라 그를 잘 아는 후배 재일한국인 문인들까지 놀라게 했다. 정 시인은 "개인적으로 정말 싫었지만, 나는 일본어로도 작품을 썼다. 한글 쓰기만을 고집했다면 한글을 잘 모르는 우리의 재일한국인 2, 3세대들에게 더 깊은 조국애와 한국문학의 정신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해 주변을 숙연하게 했다.

▶주최=롯데백화점·부산문화연구회

▶특별후원=국제신문

▶참가문의=http://문학기행.kr (051)441-0485

나고야·오사카=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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