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리 클럽공장'

1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영화'다. 전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진 보석 같은 영화들을 발굴, 초청하기 위해 BIFF 프로그래머들은 한 해 동안 발에 땀이 나도록 뛰고 또 뛰었다. 그렇게 골라낸 작품은 모두 301편. 프로그래머들이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한 끝에 고른 작품인 만큼 모든 영화에 애착이 가겠지만, 그중에서도 시네필과 시민들이 놓치지 말았으면 하는 작품들을 추천받았다. 올해 BIFF의 영화를 가장 잘 아는 프로그래머들의 추천작인 만큼, 어떤 영화를 볼지 고를 때 리스트 맨 위에 올려놓아도 좋을 작품들이다.


# 김지석: 실사와 인형극 결합한 이색작품 '당신을 위한 선물'

김지석(위), '당신을 위한 선물'

올해 BIFF에서 선보이는 아시아 영화들은 모두 놓치기 아까울 만큼 개성과 주제의식이 분명한 작품들이다. 그중에서 이제껏 만날 수 없었던 독특한 스타일의 영화를 추천한다. 일본 요시히코 감독의 '당신을 위한 선물'은 실사와 인형극을 결합한 방식의 영화이다. 이케다 아키라 감독의 '야마모리 클럽공장'은 일본판 우렁각시이지만 절대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야기다. 필리핀 아돌포 알릭스 주니어 감독의 '죽음의 행군'은 1942년 바탄전투를 극영화로 옮긴 작품으로, 일본군이 필리핀과 미국 장병 수천 명을 땡볕에서 행군하도록 강요하면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카자흐스탄 알렉세이 고를로프 감독의 '늙은 여인의 이야기'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가족에게 버림받은 늙은 여인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원테이크로 촬영했다. 또 다른 원테이크 영화로 이란 샤흐람 모크리 감독의 '생선과 고양이'를 들 수 있는데 카스피 연안에서 벌어진 연날리기 행사를 다뤘다. 일본 사부 감독의 '미스 좀비'는 좀비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한 저예산 독립영화다. 필리핀 라브 디아즈 감독의 '노르테, 역사가 끝나는 곳'은 엉뚱하게 살인자로 몰려 감옥에 수감된 남자의 이야기를 다뤘다.


# 남동철: 인턴사원 정규직 입사 둘러싼 직장생활 묘사 '10분'

남동철(위), '10분'

뉴커런츠 부문에 상영되는 이용승 감독의 '10분'은 웹툰 '미생'에 비견될 만큼 직장 묘사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작품이다. 준공무원 조직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하는 한 청년이 자신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싶다는 부장의 제안에 마음이 흔들리다가 막상 정규직으로 엉뚱한 사람이 들어오면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최진성 감독의 '소녀'도 눈여겨볼 만하다. 몇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던 감독의 극영화 데뷔작으로, 시골학교로 전학을 온 소년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비밀스러운 소녀에게 이끌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안선경 감독의 '파스카'는 세상에 고립된 연인들의 처절한 멜로 드라마이다. 19세 남성과 동거하는 40대 시나리오 작가가 가족에게 외면받으면서 고립되는 과정을 담았다.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초청된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는 여고생 한공주가 새 학교에 전학 가 아카펠라 동호회에서 활동하며 벌어지는 소동을 기본 줄거리로 하고 있다. 경남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재한 감독의 주목할 만한 데뷔작 '안녕, 투이'는 베트남 여성 투이가 남편이 죽게 되자 그의 죽음을 파헤치는 과정을 담고 있다.


# 박도신: 부부간 사랑·친구들 우정 따뜻하게 그린 '굿 나잇'

박도신(위), '굿 나잇'

캐나다 엠마누엘 쉬리니안 감독의 '찰리의 진실'은 예술성과 흥행성을 모두 지닌 작품으로 뛰어난 스토리 구성과 연출력이 돋보인다. 미국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캐나다 영화란 점도 주목할 만하다. 교통사고의 아픈 과거를 가지고 외롭게 살던 40대 남성 애브너에게 미스터리한 여성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감독만의 특이한 이야기 구성과 놀라운 반전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미국 션 H. A. 갤라거 감독의 '굿 나잇'은 부부간의 사랑과 친구들과의 우정을 슬프면서도 따뜻하게 그린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올해 사우스웨스트페스티벌(SXSW)에서 상영된 작품 중 최고라고 자부한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리가 29번째 생일을 맞아 친구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뒤 자신이 불치병으로 얼마 살지 못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표하면서 벌어지는 스토리를 그리고 있다. 독일·프랑스 합작 드니 데르쿠르 감독의 '약속'은 다소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 상황을 매끄러운 심리 스릴러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10대 시절 폴은 자신의 친구인 기요르그의 여자친구 애나를 넘겨받는 대신 친구가 원할 때 돌려준다고 약속한다. 세월이 흘러 부부가 된 폴과 애나 앞에 기요르그가 나타나면서 셋의 관계가 삐걱거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