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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 프로팅의 본문 삽화. |
- 영국인 작가 1차 세계대전 참전
- 군마·군견 죽어가는 모습 보고
- 이야기 만들어 자녀에게 전해
- 전쟁 후 책 발간… 12권까지 늘려
- 재미·독특한 캐릭터로 명작 평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은 다른 많은 분야와 함께 아동문학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700만 명의 전사자 중에는 유능한 아동문학가들도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10년 동안 영국을 중심으로 한 아동문학계는 심한 침체기를 맞는다. 휴 프로팅의 '돌리틀 선생'은 프랑드로 전쟁에 뿌리를 둔 판타지이다. 플랑드르(벨기에어 블렌데렌, 영어 플랜더스, 프랑스어 플랑드르)는 북해에 연한 북유럽과 지중해, 영국과 라인 지방을 잇는 교통의 요지로 전략 요충지였다. 현재는 벨기에 영토로 위더의 '플랜더스의 개'의 무대로 유명하지만, 1차 세계대전 당시는 독일군 점령하의 유럽 최대 격전지로 헤아릴 수 없는 젊은이들이 뼈를 묻은 곳이었다.
휴 프로팅은 1886년 런던 근교의 메이든헤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1905년 19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졸업은 런던 공과대학에서 했다. 졸업 후 그는 토목기사가 되어 여러 해 동안 캐나다, 아프리카, 서인도 제도 등의 철도 건설에 종사했다. 1912년 미국에서 캐서린 해로우와 결혼하였으며, 이후 그는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군에 자원하여 프랑스 전선에 출정, 플랑드르 전투에 참가했다. 치열한 전투 속에서도 그는 전쟁에서 군마와 군견들이 부상을 당하고도 인간처럼 치료 한 번 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무척 마음 아파했다. 그는 전쟁 중 부상을 당하고 야전병원으로 이송되자 미국에 있는 두 자녀인 엘리자베스와 콜린에게 편지로 전장에서 상처 입은 동물들이 그들의 말을 알아듣는 의사로부터 치료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만들어 보내기 시작했다. 편지에는 직접 그림도 그려 넣었다.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부인의 권유로 아이들에게 보낸 수십 통의 편지를 바탕으로 동물들의 말을 알아듣는 의사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의인화한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동물들과 대화하는 캐릭터는 '돌리틀 선생(1920)'이 처음이었다. 독자 반응이 뜨겁자 그는 '돌리틀 선생'에다 여행에서 얻은 모험담을 넣어 1920년부터 1952년까지 무려 12권을 시리즈로 출판했다.
영국의 작은 마을 파돌비에는 동물을 좋아하는 존 돌리틀이라는 의학박사가 있었다. 동물들을 끔찍이 사랑한 나머지 동물들과 말을 주고받게 된 돌리틀 선생은 어느 날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제비들로부터 전염병에 걸린 원숭이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들을 치료해주려 아프리카로 떠난다. 천신만고 끝에 원숭이 나라에 도착한 돌리틀 선생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원숭이들의 병을 고친다. 돌리틀 선생의 집에는 서커스단에서 탈출한 악어 엘리게이트, 원숭이 치치, 앵무새 폴리네시아, 집오리 대브대브, 새끼돼지 거브거브, 이 밖에도 개, 쥐, 소, 말, 당나귀들이 한 식구가 되어 살아간다.
두 번째 이야기 '돌리틀 선생의 항해기(1922)'는 1923년 제1회 '뉴베리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돌비 마을에 사는 아홉 살 먹은 소년 토미는 귀여워하던 다람쥐가 다쳐 돌리틀 선생님을 찾아간 것이 계기가 되어 선생의 조수가 되어 함께 산다. 그때 선생은 반은 물고기고 반은 조개인 동물의 말을 연구하고 있었다. 어느 날 섬에 사는 위대한 박물학자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수인 토미와 검둥이 왕자 범포, 함께 지내는 동물들을 데리고 섬으로 가서 박물학자를 구해낸다. 1920년부터 매년 한 권씩을 출판하면서 드디어 싫증을 느낀 나머지 1928년 열 번째 이야기 '달에 간 돌리틀 선생'에서 주인공을 달에 보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한다. 그러나 독자들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1933년 '돌리틀 선생의 귀환'으로 복귀시키지만, 재미는 예전만 못했다. 휴 프로팅은 1947년 61세로 캘리포니아의 산타모니카에서 사망했다. 그는 세 번의 결혼으로 슬하에 4명의 자녀를 두었다. 마지막 두 권은 재혼한 부인과 그녀의 동생이 편집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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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팅은 평소 "아동문학은 첫째로 재미있어야 한다. 어린이의 읽을거리에는 어떤 경우에도 재미가 빠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돌리틀 이야기에는 모험에 가득 찬 재미있는 줄거리, 동물의 말을 할 줄 아는 의사 선생이라는 독특한 캐릭터, 엉뚱하지만 신기한 재능을 지닌 동물 친구들, 이런 것들이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돌리틀 선생과 동물들이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은 어린이 시각에서는 설득력이 있었다. 현실의 부조리를 동물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보여주는 우화적 판타지도 큰 매력이었으며, 공학도인 저자가 직접 그린 소박한 삽화도 분위기 조성에 한몫했다. 이런 이유로 돌리틀 선생 이야기 시리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후 가장 완성도 높은 아동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프로팅은 사후에 백인우월주의자라는 비난을 듣는데, 작품 중에서 검둥이 왕자 범포가 돌리틀 선생에게 얼굴을 희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문제가 되었다. 당시 영국 사회의 유색인에 대한 편견을 고려하더라도 프로팅으로서는 사려 깊지 않은 실수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