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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경제학회에서 연설하는 슘페터. 슘페터는 1932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시기적으로 비슷하기는 하지만 나치의 집권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슘페터는 정치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때는 나치의 협력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기도 하였다. 물론 전혀 근거 없는 의혹으로 밝혀지기는 하였다. |
인류의 역사는 여러 단계를 거쳐 오늘날의 자본주의까지 발전해 왔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다음에는 어떤 사회가 올까? 마르크스와 그 지지자들은 자본주의가 그 자신의 모순 때문에 붕괴되고 사회주의가 그 뒤를 이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다. 물론 사회주의자들이라고 해서 자본주의가 이룩한 긍정적인 유산들까지 배제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떤 의미에서건 사회주의는 자본주의가 쓰러진 그 자리에서만 세워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자들과는 전혀 다른 이유와 논리에서 자본주의의 미래는 사회주의라고 주장한 경제학자가 있다. 바로 조지프 알로이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 1883~1950)가 그 사람이다. 슘페터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 1942)'에서 자본주의의 미래는 사회주의라고 주장하였다. 슘페터는 평생 단 한 순간도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적이 없다. 그런 슘페터가 자본주의의 미래는 사회주의라고 주장했으니 묘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이론에서 참으로 심오한 점은, 자본주의가 실패했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성공했기 때문에 사회주의로 발전하리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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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프 알로이 슘페터 Joseph Alois Schumpeter 1883~1950 |
경제학자로서 슘페터의 이력은 매우 흥미롭다. 슘페터의 경제학 연구는 경제발전의 문제에서 시작하여, 경기변동, 경제학설사를 거쳐 경제체제의 문제로 나아간다. 일반적으로 이 주제들은 모두 서로 독립적인 경제학의 세부 분야로 간주된다. 그런데 슘페터는 이 주제들을 서로 연결하여 하나의 거대한 이론체계를 수립하였다. 즉 경제발전의 효과가 확산되고 진전됨에 따라 경기변동이 일어나고, 이러한 발전과 변동이 점점 축적되어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경제발전을 주도하는 것은 기업가의 혁신(innovation)이다. 혁신이란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다. 슘페터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부단히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며, 끊임없이 내부에서 경제구조를 혁명화하는 이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야말로 자본주의의 핵심"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혁신을 수행하는 사람이 기업가이며, 기업가의 혁신을 추구하는 정신이 기업가정신이다. 슘페터는 기업가와 사업가를 구분했는데, 기업가는 혁신을 선도하는 사람이며 사업가는 혁신을 모방하는 사람이다. 기업가의 혁신을 사업가들이 모방함에 따라 혁신의 효과는 확산되고 경기는 호황이 된다. 그러나 모든 사업가들이 혁신을 모방하면 혁신의 효과는 사라지고 경기는 후퇴하여 균형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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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1년 일본 히토츠바시대학을 방문한 슘페터. 슘페터가 사망하자 부인은 그의 장서를 모두 히토츠바시대학에 기증하였다. |
그런데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기업의 규모가 확대될수록 혁신을 선도하는 창의적 개인, 즉 기업가정신에 충만한 기업가들을 대신해 전문화되고 분산된 기술자들이 기업활동을 담당하게 된다. 개인적 창의력의 산물이었던 혁신은 기업 연구개발부서의 일상업무가 된다. 누구도 기업을 독점적으로 경영할 수 없다. 이제 기업은 모든 관계자들이 조직적으로 관리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소유의 문제로 파악했지만 슘페터는 관리의 문제로 파악하였다. 가령 마르크스가 보기에 기업의 형태가 주식회사로 바뀌더라도 생산수단이 여전히 소수에게 독점적으로 소유되고 있다면 그것은 자본주의이다. 그러나 슘페터는 누가 주식을 가지고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가 기업을 경영하고 관리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할수록 기업은 사회적으로 관리된다. 드디어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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슘페터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초판 표지. |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부터도 지지에 의해 더욱 빠르고 순조롭게 진행된다. 자본주의 사회에는 자본가와 노동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 농민, 상인, 자영업자 등과 같은 중간계급들이 함께 존재한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발달하여 기업이 거대화되고 기업의 활동영역이 확대될수록, 중간계급들의 지위는 하락해 가고 그들의 역할도 축소된다. 따라서 이런 중간계급들은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것을 지지한다. 자본가는 무산계급의 혁명에 의해 타도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요구에 따라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동의하게 된다. 자본주의는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눈부신 성공 때문에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것이다.
물론 슘페터가 이야기한 사회주의는 마르크스가 말한 것과는 다른 사회이다. 과연 자본주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시장경제로 전환하면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소련의 사회주의가 실패했다고 해서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미래가 오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 마르크스가 아니더라도 슘페터가 이야기한 그런 사회주의가 올 수도 있고, 이도 저도 아닌, 우리가 아직 모르는 모습의 사회가 나타날 수도 있다. 로마 시민이나 중세 농민들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알지 못했듯이, 우리도 아직 알지 못할 뿐 미래는 지금도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 슘페터의 '경제발전의 이론'
- 자본주의 발전을 이끄는 기업가의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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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슘페터의 '경제발전의 이론' 초판 표지. |
슘페터는 케인스와 같은 해인 1883년에 태어났다. 이 해는 마르크스가 세상을 뜬 해이기도 하다. 케인스와 슘페터는 모두 20세기 경제학에 큰 발자취를 남긴 거인들이면서도 많은 점에서 대조적이다. 케인스가 언제나 치열한 논쟁과 현실의 경제문제들 속에 있었던 반면, 슘페터는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슘페터를 '마지막 르네상스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슘페터가 연구실에만 파묻혀 있는 그런 경제학자였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에 그는 오스트리아의 중앙은행 총재와 재무장관을 지내기도 하였다. 많은 주류 경제학자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케인스주의가 유행했던 이유는 현실에서 그가 주장한 정책들이 효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스태그플레이션과 같은 새로운 경제문제들이 나타나고, 국제경제질서가 변동환율제로 변화하면서 케인스주의적 정책들도 더 이상 과거처럼 효과적이지 못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게 되는 배경이다. 그러면서 케인스주의적 복지국가(welfare state)에 대응해 나타나는 것이 슘페터주의적 근로국가(work state)이다. 복지에 지나친 비용을 쓰지 말고 더 많은 투자와 더 많은 생산을 유인하자는 것이다.
슘페터의 책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경제발전의 이론(1912)'이다. 기업가정신이 혁신을 한다는 슘페터의 가장 중요한 이론도 이 책에서 처음 나온다. 슘페터는 혁신을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정의하였다. 첫째, 새로운 상품의 발명. 둘째, 새로운 생산방식의 발명. 셋째, 새로운 원료의 개발. 넷째, 새로운 시장의 개발, 그리고 다섯째, 새로운 시장구조로의 전환. 경제가 어려울수록 기업이 투자를 많이 하도록 더 많은 유인을 제공하고 기업에 유리한 경제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기업가정신이 없는 사업가들은 결코 혁신을 할 수 없다. 기업가들을 단지 모방할 뿐이다. 하지만 모방하고자 해도 모방할 기업가정신이 없다는 것이 지금 우리 경제가 처한 막다른 길은 아닐까?
조준현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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