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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자본주의 <20> 언젠가는 우리 모두 죽는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일반이론'②

실직한 가장에게 '경제는 언젠가 회복된다'는 법칙이 무슨 소용있나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9-11 20:30:47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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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급식소에서 배급해 주는 빵과 수프를 먹고 있는 실직자들.
- 케인스는 현실주의자답게
- 가장 쉬운 답을 찾았다

- "가계의 수요능력이 부족하다면
- 정부가 그만큼의 수요를 만들면 된다
- 그 언젠가가 아니라 바로 지금 당장에"


"이렇게 추운데 우리 집은 왜 난로를 켜지 않나요?"

"아빠가 실업자가 되어서 석탄을 살 수 없단다."

"아빠는 왜 실업자가 되었나요?"

"그건 석탄이 너무 많이 생산되어서란다."

   
케인스와 그의 아내 리디아 로포코바(1892~1981). 케인스는 평생 소련의 스파이라는 의혹과 동성애자라는 의혹을 받았다. 케인스는 러시아 출신의 발레리나인 리디아와 결혼했는데, 어떤 이들은 이를 그가 러시아의 스파이라는 증거로 생각했고, 또 어떤 이들은 이를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속임수라고 생각했다.
케인스를 비꼬는 이야기 가운데에는 이런 것도 있다. "만약 어떤 문제에 대해 경제학자 여섯 사람에게 질문하면 일곱 개의 답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 가운데 두 개는 케인스 씨의 것입니다." 케인스는 자기가 했던 말과 전혀 반대되는 주장을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거꾸로 보면 이런 면모야말로 케인스 경제학의 현실성을 잘 보여 준다. 상황이 다르면 대답도 달라져야 하는데, 주류 경제학자들은 똑같은 대답만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관념이 현실보다 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케인스에게는 언제나 현실이 관념 위에 있다. 현실에서 빈곤과 실업으로 수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면, 경제학은 과연 무엇을 해야 옳은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케인스에게 경제학을 가르쳐 준 사람은 바로 앨프레드 마셜(Alfred Marshall, 1842~1924)이다. 마셜은 멩거와 왈라 등에 의해 출발한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완성한 경제학자로 불린다. 그가 쓴 '경제학원론(Principles of Economics, 1890)'은 지금도 모든 경제학 교과서의 모범으로 평가된다. 마셜은 케임브리지 대학에 처음으로 독립된 경제학과를 설립하여 수많은 경제학자들을 배출하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케인스는 마셜의 수제자를 넘어 영혼의 친구(soul mate)라고 불러야 좋을 만큼 서로를 잘 이해하고 서로 경애하는 관계였다. 마셜의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은 사람도 케인스이다. 마셜은 "경제학을 하기 위해서는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 필요하다"는 말을 남겼다. 케인스의 실용주의는 마셜의 유산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과연 오늘날의 주류 경제학에도 뜨거운 가슴이 있는가는 모르겠다.

   
케인스의 스승인 앨프레드 마셜.
케인스가 특히 고민한 현실은 바로 실업의 문제였다. 대공황 이전에는 실업을 개인의 나태와 도덕적 결함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대공황이 터지자 그때까지 성실하게 일하고 건전한 생활을 영위해 온 가장들이, 그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미처 돌아볼 사이도 없이 실업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평범했던 노동자 가정의 가족들은 이제 가장의 실직과 함께 저녁거리를 구하지 못해 굶주려야 한다. 케인스가 자기 책의 제목을 '일반이론'이라고 붙인 이유는 그때까지의 경제학이 완전고용이라는 특수한 조건에서만 타당한 '특수이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케인스의 경제학이 '불황의 경제학'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같다. 물론 호황기에도 이런저런 경제문제는 언제든지 있다. 그러나 호황기에는 그럭저럭 그런 문제들을 견딜 수 있지만, 불황은 다르다. 불황은 노동자들, 실업자들, 최하층의 빈민들과 그 가족들에게 직접적인 고통이기 때문이다. 실업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이다.

대공황이 한창 진행되던 중에 루스벨트 대통령이 측근에게 공황을 극복할 방법이 없느냐고 물자, 아마 케인스주의자였음직한 보좌관은 정부가 더 많은 돈을 쓰면 된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대통령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건 너무 간단하잖아?" 진리는 항상 먼 곳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법이고, 가장 좋은 방책일수록 가장 쉽고 단순한 법이다. 케인스가 제안한 위기의 대응책도 그렇다. 케인스는 공황의 원인을 결국 공급보다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파악했다. 수요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어도 지불할 능력이, 즉 유효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주류 경제학자들이라고 해서 그러한 현실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수요가 부족하면 당연히 가격이 하락할 것이고, 가격이 하락하면 수요가 늘어나서 경제는 다시 균형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믿었을 뿐이다. 이런 주류 경제학자들의 신념에 대고 케인스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 언젠가는! 하지만 그 언젠가가 오기 전에 우리는 모두 죽는단 말이오." 케인스가 볼 때 해결책은 매우 단순하다. 현실주의자들은 언제나 가장 쉬운 답을 찾기 마련이다. 가계에 수요 능력이 부족하다면 정부가 그만큼의 수요를 만들어 주면 된다. 그러면 실업자는 일자리를 얻고, 기업은 재고 상품들을 팔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언젠가가 아니라 바로 지금 당장에 말이다. 그런데도 왜 그때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청년실업자 수가 100만 명을 넘기니 마느니 하는 나라의 이야기다.


# 케인스의 '평화의 경제적 귀결'

- "독일에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하지 말라"

   
담소하고 있는 케인스와 화이트. 화이트는 소련의 스파이라는 혐의를 받고 미국 중앙정보부의 조사를 받기도 하였다. 화이트 스스로는 단지 두 진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노력했을 뿐이라고 말하였다.
케인스에게는 재미있는 일화가 많다.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케인스는 외교관 시험을 쳤는데, 2등으로 합격하였다.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받았는데 하필 경제학 과목의 성적이 나빴기 때문이다. 훗날 케인스는 "그 당시에 이미 나는 그 문제를 출제한 사람보다 경제학을 더 잘 알고 있었다"고 술회하였다.

아무튼 외교관이 된 케인스는 일차대전의 전후 처리 문제를 다룬 파리평화회의에 영국 대표로 참가하게 된다. 전승국들은 독일에 막대한 보상금과 심지어는 영토의 일부를 요구하였다. 그런데 케인스만은 독일에 너무 가혹한 배상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케인스의 논리는 아주 단순하고 명료하다. 일차대전이 일어난 이유가 식민지를 재분배하자는 것이었는데, 만약 독일에 막대한 보상금을 요구하면 그 돈을 갚기 위해 독일은 더 많은 생산과 수출을 해야 하고, 따라서 다시 식민지가 필요해지니 결국은 다시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케인스는 대표직을 사퇴하고 자신의 생각을 책으로 출판하였다. 바로 '평화의 경제적 귀결(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 1919)'이 그것이다. 케인스의 예언이 옳았음이 증명되기까지는 불과 20년밖에 걸리지 않는다. 파리 회의로부터 꼭 20년 후인 1939년에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이차대전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이차대전 이후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을 만들어 국제경제질서를 재편하는 데 합의한 것도 바로 그런 교훈 때문이다.

   
1944년 미국의 브레튼우즈에서 열린 이 회의에 케인스는 영국측 수석대표로 참가하였다. 미국측 수석대표는 화이트(Harry Dexter White, 1892~1948)였다. 그런데 케인스와 화이트, 전후 세계 자본주의의 기본질서를 만든 두 사람이 모두 소련의 스파이라는 의혹을 받았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른바 냉전 시대였기에 있을 수 있었던 희극이다. 하기야 아직도 냉전시대에 살고 있는 나라도 있는데 누굴 탓하랴.

조준현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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