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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의 공간-부산 근현대의 장소성 탐구 <11> 해운대

사람냄새 나는 집도, 포구였던 과거도 없는 그저 '그들만의 도시'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9-10 19:38:23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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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해수욕장의 1960년대와 2000년대 모습. 한적한 해변이 40여 년 만에 초고층 건물이 들어선 관광지로 변했다. 국제신문 DB
- 마천루 펼쳐지지만
- 인간적 품격 느껴지는 주거공간은 없어

- 마린시티 끝자락 '운촌'이란 마을 아는가
- 승당마을 재개발 때 고공투쟁 기억하는가

- 다수의 고급 아파트는 투기 대상으로 전락
- 인간 실존 불안감 조성

- 고급아파트촌·신도시, 구시가지 제각각 분리
- 서로 '리듬' 어우러질 때 매력적인 공간이 될 것

■해운대에는 '집'이 없다

수영강을 경계로 해운대구가 시작된다. 수영강을 건너자마자 입구에서부터 기네스 월드레코드(GWR)로부터 공식 인증받았다는 세계 최대 백화점인 신세계 백화점이 눈에 띈다. 말 그대로 새로운 세계가 지금부터 눈앞에 펼쳐질 테니 단단히 준비하라는 표지판 같다. 서서히 센텀시티, 영화의전당, 벡스코, 마린시티, 요트 경기장, 달맞이 고개와 해운대 해수욕장이 나타난다. 센텀시티와 마린시티를 지나다 보면 여기가 현실인가 싶다. 저 높은 곳에 사람이 살아도 괜찮을까? 저렇게 한꺼번에 지어진 많은 아파트가 나중에 어떻게 될까?

프랑스의 과학철학자이자 문학비평가인 가스통 바슐라르는 이미 오래전에 "파리에는 집이 없다. 대도시 거주자들은 포개진 상자에서 살고 있다"고 단언했다. 그는 집을 꿈꾸는 몽상가는 마천루에 지하실이 없다는 사실을 상상하지 못한다며, 이런 집에는 뿌리가 없고 우주와의 깊은 연대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의 눈에 마천루, 빌딩 등은 생명이 없는 상자일 뿐 집이 아니다. 사람이 사는 집은 기하학적 공간을 초월하는 것으로, 감성적인 특성, 인간적인 품격이 있다. 집은 인간의 일상이 뿌리내리는 중심으로, 인간은 이렇게 집에 뿌리를 내리고 지속함으로써 삶의 지속성과 견고함, 소속감과 내부에서 보호받고 있다는 감정을 갖게 한다. 그런데 지금 해운대에는 인간적인 품격이 있는 '집'이 있는가? 도시적 삶을 이야기 할 때 우리는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단적이고 공동체적인 삶이 거주 공간에 표현되어 만들어 내는 특정한 분위기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도시 공간의 재생 혹은 재개발에 관한 논의와 실천의 방향도 역시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해운대에는 '과거'가 없다

   
'동부 올림픽타운'이라는 이름은 참 아이러니하다. 1996년 해운대에서 '인간방해물'을 쓸어내고 그 곳을 차지한 아파트 이름이 '올림픽타운'인 것이다. 올림픽은 도시의 어둠과 과거를 대청소하는 도시미화 행사인가?
1990년대 말 지금 해운대구 우동 아파트 단지와 센텀시티가 들어선 자리에는 '승당 마을'과 '수영비행장'이, 그리고 마린시티의 한쪽 끝자락에는 '운촌'이라는 마을이 있었다는 것을 몇 사람이나 기억할까? 지금은 해운대가 관광휴양지를 곧바로 연상시키지만, 예전에는 포구였고 여기에는 어업이 성행하기도 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될까? 지금 '동부 올림픽타운'이 들어선 곳은 1990년대 중반까지 승당 마을이 있던 곳이다. 1990년대 초 재개발 조합이 결성되었지만, 일부 세입자들의 반대로 계속 미뤄지다가 1996년 말부터 건물 철거와 강제이주 등 행정대집행이 시행되었다. 당시 23명의 세입자가 800여 명의 철거반원에 맞서 '골리앗 고공투쟁'을 시도했는데, 이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들은 결국은 집도 잃고 실형까지 선고받았다. 당시 선고공판에서 재판장은 이 사태에 대해 "5공 시절 목동 사태가 1990년대에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에서 가슴 아픈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독일에는 상대방을 농담조로 '알테스 하우스(altes Haus)'라고 부르는 관습이 아직 남아 있다. 글자 그대로는 '오래된 집'이라는 뜻의 이 말은 주로 나이 든 사람들이 자신의 오랜 친구를 친근하게 부를 때 사용한다. 이것은 인간이 집과 얼마나 강하게 결속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집이 곧 자신의 친구라면, 자기 집에서 추방당한 자들은 단순히 집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자기 친구, 심지어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추방당한 것이 될 것이다. 마치 오래된 볼품없는 외투를 새 옷으로 바꾸기를 꺼리는 것처럼, 이들은 자기 공간을 떠나기를 필사적으로 거부한다.

과거 해운대를 고향으로 삼고 살았던 이들은 해운대를 '푸른 달빛을/명주 이불로 덮고/면사포 같은 파도를/자장가처럼/베고 자던 유년의 고향바다'(배교윤, '바다, 그대에게 북두칠성 환하게 빛나는')로 기억하겠지만, 지금 이런 해운대를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해운대에는 멋진 '강남스타일' 오빠들이 '눈이 부셔 쳐다볼 수 없는 부산여자'를 만나서 놀다 가는 핫 플레이스일 뿐이다.

그리고 최근 부산 해운대 부동산투자 시장이 일본, 중국 등 외국인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데, 비즈니스나 의료 관광 등을 위해 부산을 찾는 외국인이 호텔을 이용하는 것보다 주택을 이용하는 것이 경제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산시가 투자이민세를 도입하면서 부산 일부 지정 지역에 일정 액수를 투자할 경우 영주권도 얻을 수 있게 되어 이 변화는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매매의 주체가 외국인이건 내국인이건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다만 해운대의 다수 고급 아파트는 집이 아니라 투기 대상으로서의 상품, 잠시 머무는 호텔이나 세컨드 하우스일 뿐이라는 점이 앞으로 인간의 실존에 미칠 불안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인간의 기준점의 역할을 담당했던 집이 점차 가치 증식의 대상으로 변화되면서 기준점 자체가 유동적이게 되고, 따라서 인간은 자기 준거와 공동체 정신을 상실하게 될 수 있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불안은 근본적으로 공간에 관련된 것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해운대에는 '리듬'이 없다

우동 마린시티, 센텀시티, 중동, 좌동 신시가지, 재송동과 반송 등은 해운대구라는 행정구역 명칭으로만 묶이는, 실은 각기 자기 내부를 향하고 있는 섬처럼 분리되어 있다. 이런 '도시 안의 도시'는 슬럼은 슬럼대로, 고급 아파트촌은 아파트촌대로, 구시가지는 구시가지대로, 신도시는 신도시대로 서로 연속성을 갖지 못하고 분리되어, 한 쪽의 삶은 다른 한 쪽의 삶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외부에 배타적인 이 공간은 출입이 통제되는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로, 여기에서는 도시라는 의미의 공중 생활은 사라지고 각기 다른 사적인 생활의 연장만 있을 뿐이다.

유서 깊은 도심 공동체를 뿌리 뽑는 부산 해운대 재개발이 만들어 낸 '도시 안의 도시(○○시티, △△타운)'는 개발 담론이 공간화한 결과로, 주거 및 일상생활과 관련된 가치, 욕망, 정신구조 등을 획일화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것은 모든 추한 것들, 예컨대 저개발의 흔적과 빈곤, 이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 등을 모두 쓸어내고 아름다운 '그들만의 명품 도시'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질적인 것들은 모두 불도저로 밀어낸 후 소단지를 차례로 이식하는 방식으로 형성된 이곳에는 도시의 다양성이 제거되어 있다.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오래된 건물은 철거되고,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신도시에는 새 건물의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 가게와 고급 아파트만 들어서게 된다.

해수욕장과 섬, 낮은 언덕, 오래된 구역과 최첨단 구역이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리듬과 도시적 삶의 스타일, 도시의 침묵과 수다, 시간에 따라 새롭게 표현되는 건축물의 볼륨과 양상, 이 다양성이 해운대를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든다. 그렇지만 해운대의 성공은 자칫 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 해운대가 누리는 성공은 이 공간을 둘러싼 열띤 경쟁을 촉발시켰고, 이 경쟁의 끝에 해운대를 차지하게 될 것은 경제적인 힘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해운대에는 최신식 고급 아파트와 고급 백화점, 프랜차이즈 상점만 남을 것이다. 고급에 걸맞지 않은 우리는 여기에서 영원한 이방인이 될 것이다. 해운대에는 밤도 없고, 과거도 없고, 공동체도 없이, 영원히 화려한 한여름 낮의 리듬만 계속될 것이다. 해운대의 리듬은 가속도를 띠고 있지만, 그것은 쉬이 사람을 권태롭게 만드는 단조로운 리듬이 될 것이다. 지금 "울던 물새도 어데로 가고/조각달도 흐르고/바다마저도 잠이 들었나/밤이 깊은 해운대"('해운대 엘레지')를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신지은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조교수·사회학 박사


※공동기획 :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의인문학연구단, 국제신문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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