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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의 공간-부산 근현대의 장소성 탐구 <9> 유엔기념공원

역사의 상흔 간직한 치외법권 지역… 거룩한 공간이자 욕망의 공간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8-27 20:12:29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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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24일 제67회 유엔의 날을 맞아 시민들이 유엔기념공원을 찾아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국제신문DB
- 6·25전쟁 시기
- 부산은 임시수도로서 생존자들의 피난처
- 망자들의 집결지

- 묘지 조성했을 땐 4만 명 묻혔으나
- 현재 11개국 2300명, 영원히 잠들어

- 한국 정부, 유엔에 토지소유권 무상 기증
- 행정력 미치지 못하는 불가침 영역으로

- 국제관계 상징하는 '지성소 공간'이자
- 개발욕구 투영되는 이중성 존재

부산문화회관 앞에 서면 번화한 도심에 둘러싸인 거대한 묘지가 내려다보인다. 부산 남구 대연 4동 779번지에 있는 유엔기념공원이라고 불리는 이 기념묘지는 민족분열과 국제적 이념대립이라는 전 지구적 충돌의 결과 발생한 한국전쟁이 부산에 만들어낸 다국적 추모공간이며 상흔이다. 이 공간은 6·25전쟁 시기에 부산이 1000일이 넘도록 임시수도로서 국내 정치의 중심지이며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KURK)과 유엔한국재건위원단(UNKRA) 등 유엔기구의 근거지이자 미국대사관과 미군사령부 등이 주재하는 외부와의 소통로였던 사실과 직결된 산물이다.

■초기 매장 병사는 4만 명

   
6·25전쟁 당시 경기도 가평 일대에서 방어작전을 펼쳤던 영연방 4개국(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의 참전용사들이 지난 4월26일 유엔기념공원을 방문, 전몰장병묘역을 참배하고 있는 모습.
부산은 전쟁 수행에 필요한 원조물자와 '유엔군'이 외부에서 반입되고 전선으로 투입되는 중개지로서 전쟁에 생명을 불어넣는 심장의 역할을 했다. 그 심장에는 수많은 피란민뿐 아니라 대학과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이 피란처 삼아 생명을 유지했다. 그러나 부산은 생존자들만의 피란처가 아니었다. 낯선 땅에서 숨진 참전 16개국 전사자들의 시신도 함께 도착했다. 6·25전쟁은 초반에 매우 급속한 진격과 후퇴가 반복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전사자 수송과 매장 처리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중공군 개입 후 유엔군은 후퇴하면서 미군 사상자는 배편으로 일본으로 이송하고, 다른 연합군 전사자는 단일한 군사묘지에 집결시켜 매장하도록 결정했다. 그 결과 1951년 1월 18일 철로가 연결된 우암동 부두와 가깝고 비교적 평탄한 농지였던 지금의 남구 대연동인 당곡마을이 묘지부지로 선정되었고 50여 명의 지주에게 토지보상금을 1956년에야 재무부에서 지급했다.

그 결과 4만5000평에 이르는 흔히 유엔묘지라고 부르는 대규모 '공동묘지'(necropolis)가 조성되었다. 이 묘지는 처음에는 4만 명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11개국 2300명이 잠들어 있다.

■치외법권적 외국 영토

이 묘지의 가장 큰 특징은 '치외법권적 외국 영토'라는 사실이다. 1959년 11월 6일 한국 정부와 유엔 간에 체결된 '재한 국제연합기념묘지의 설치 및 유지에 관한 대한민국과 국제연합 간의 협정'에 따라 토지소유권이 '영원히 무상'으로 유엔에 기증되었고 관리는 언커크가 맡았다. 이후 1974년 2월 16일부터 현재까지 '재한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 위원회'(CUNMCK)가 관리주체이며 소유권을 갖고 있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당시 유엔군이라고 알려진 참전군이 절차상이나 구성면에서 현재의 유엔이 세계 각국의 분쟁 지역이나 재난지역에 파견하는 평화유지군(Peace Keeping Forces)과는 달리 일본에 소재하는 맥아더 장군의 미국 극동군 사령부가 전권을 행사하는 다국적군에 가까웠던 데서 비롯한다. 협정에 따르면 유엔기념공원이 소재하는 영역은 한국 정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불가침의 영역이며 국제관리위원회는 추모분위기를 해치는 활동을 견제할 수 있다.

1960년대에 남구 용호동에 동국제강을 설립할 당시 기념묘지 관리처는 추모 분위기 저해를 이유로 저지에 나섰던바, 대통령까지 개입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국제관리위원회는 조직상 유엔과 무관한 기구이며 다만 유엔기념공원에 전사자가 안장된 국가의 대표로 구성된다. 국제관리위원회는 유엔기념공원의 운영과 관리를 사실상 총괄하는 대사급의 한국인 관리처장을 임명하고 매년 한 차례 유엔의 날(10월 24일)을 전후해 총회를 개최한다. 관리 비용은 언커크 관리 시기에는 대부분 미국과 유엔이 부담했지만, 국제관리위원회 체제로 이관되고 나서는 한국정부의 부담금이 계속 증가하다가 2001년부터는 대부분을 부담한다. 2005년에는 2006년 부산에서 개최되는 APEC 정상회담을 앞두고 특별예산 36억 원을 지원해 대대적으로 개보수하고 전몰장병 추모명비와 각국의 기념비를 비롯한 신규시설을 대거 설치했으며 녹지를 재정비하는 등 면모를 일신했다.

■'지성소 공간'이자 '욕망의 공간'

유엔기념공원의 위상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 2001년 국문 명칭을 유엔기념공원으로 변경하고 도심 한가운데 녹지가 가진 환경친화적 측면을 강조해 2007년 근대문화재로 등록하였으며 2010년에는 유엔평화문화특구로 지정했다. 그럼에도 1955년 국회와 유엔의 결의로 재한유엔기념묘지(United Nations Memorial Cemetry in Korea)로 표기한 영문 명칭은 그대로 사용된다.

유엔기념묘지에는 안장자가 가장 많았던 1951년과 1954년 사이에 약 1만1000기의 묘가 있었으나 벨기에, 룩셈부르크,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그리스, 필리핀, 태국, 전사자가 가장 많은 미국(3만6492명)은 시신을 모두 본국으로 이송하였다. 다만 미국은 1961년~74년에 사망한 퇴역군인과 군무원 36구를 안장하여 현재 11개국 전사자가 묻혀있다. 안장률은 프랑스(안장자 44/전사자 270: 안장률 16%), 남아공(11/37:30%), 노르웨이(1/3:33%), 터키(462/1005:45%)는 낮고 네덜란드가 가장 높다.(117/124:95%) 영연방국가 오스트레일리아(281/346:81%), 캐나다(378/516:81%), 뉴질랜드(34/41:82%), 영국(885/1177:75%)의 안장률이 높은 것은, 대영제국의 제국정책과 연관 있다.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은 분쟁지역 개입 시 식민지 출신 용병부대를 핵심적으로 운용하였으므로 미귀환 안장자 가운데는 그들의 비율이 높을 것으로 본다.

유엔기념공원으로 불리는 이 '망자 도시'는 부산시민에게 이중적인 심리적 기제를 제공한다. 하나는 유엔이라는 전 지구적 국제기구와 한국과의 밀접한 연관 관계를 상징하는, 너무나 존엄하여 가깝고도 먼 '지성소 공간'으로서 자리 잡았다.

한편으로는 최근 대연동 일대의 공간지형의 변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시민들의 개발욕구가 은연중에 투사되는 '욕망의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해안매립과 시가지 개발로 고층빌딩과 아파트, 공업지대, 위락시설 특히 대학교를 비롯한 각급 학교와 박물관 및 문화회관 같은 다중 이용 공간이 증가하면서 유엔기념공원 측에서는 정숙한 추모 분위기 손상을 우려하고 있다. 반면 지역주민은 주거지역에 있는 묘지에 정서적 거부감과 주변건축물 고도제한 규제의 불편함, 광대한 부지가 지역의 개발을 막고 있다는 경제적 이익계산이 상호작용하며 이전에 관한 여론도 제기되고 있다.


# 유엔평화특구 지정 의미

- 평화의 좁은 틀 벗어나 용병출신 젊은이들 희생
- 이념전쟁의 폭력 재사유

최근 유엔기념공원은 도시경쟁력 강화를 위해 역사상의 부정적 문화유산에도 관심을 두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일환으로 문화재로 발굴되었다. 유엔기념공원의 공원화 사업은 묘지 주변까지도 공원화하는 사업을 촉진했다. 유엔조각공원, 부산시수목전시원, 유엔평화공원이 인접한 부지에 조성되었고, 2010년에는 이 지역 일대를 '유엔평화특구'로 지정하며 '평화산업'에 동원하고 있다.

이처럼 '묘지의 공원화'를 넘어서 특구화한 배경에는 6·25전쟁에 대한 국제사회와 지역사회의 급속한 인식 변화와 연관이 있다. 그러나 특구 지정이 표방하는 평화가 여전히 낡은 이념적 틀에 매몰돼 유엔군이 참전하여 '승리한' 전쟁이 가져온 평화라고 한정한다면 유엔기념공원의 미래는 남북문제의 진전과 아시아 평화에 기여하는 바가 극히 축소될 것이다.

유엔기념공원의 가치는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이념으로 한정하지 않고 부산이라는 도시공간에서 정치, 사회 및 문화적 전망의 생성과 연동되어 결정될 것이므로 그것이 차지하는 위상학적 지위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다수는 용병출신으로 추정되는, 이곳에 묻힌 젊은이들이 타국에서 벌어진 현대 이념전쟁이 자행한 부조리한 폭력의 희생자라고 판단한다.

   
그러므로 이 공간의 의미를 확장하여 인간의 보편적 가치와 연결하고 현대 한국사회가 이념, 국가 및 산업화의 이름으로 희생시킨 이들을 애도하는 장소와 연결해 인간의 권리와 존엄을 재사유하는 민주주의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장세용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부교수·문학박사 서양근현대사 전공

※공동기획 :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의인문학연구단, 국제신문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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