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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역설의 공간-부산 근현대의 장소성 탐구 <8> 사상공단 국제상사

지금은 유통 물류단지지만 1970~80년대 부산 먹여 살린 신발산업의 메카 자리잡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8-20 19:48:14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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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경남 김해시로 이전하기 직전의 국제상사 사상공장 전경. 사상공단은 1980년대 후반부터 몰아친 신발산업 사양화 여파에 따라 국제상사가 이전하면서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된다. 국제신문DB
- 해방 이후 부산 동천 변
- 고무신공장 잇달아 들어서
- 저임금 노동 기반으로 대표 수출산업 성장

- 1972년엔 국제상사
- 단일공장 세계 최대인 사상공장 완공

- 농촌서 올라온 여공들
- 열악한 작업장서, 비좁은 셋방서
- 희망과 추억 만들어가

- 신발산업 합리화 이후 공장들 줄도산 사양길
- 국제상사도 어려움 겪다 김해로 공장 옮겨

르네시떼, 홈플러스, 이마트, 하이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즐비하고 주변엔 아파트 단지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사상구 괘법동 일대. 이곳은 이전에 한국 신발산업의 메카로 불리던 국제상사가 있던 공단지역이다. 수질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삼락천이나 주변의 작은 공장들이 이곳이 1970~80년대 부산 경제를 이끌던 사상공단이었음을 암시할 뿐, 명품 가로공원을 갖춘 잘나가는 유통 물류단지로 완전히 탈바꿈한 모습이다.

옛 국제상사가 있던 사상공단은 도심지에 흩어진 공장을 한데 모으기 위해 1968년 착공되어 1975년 준공된 곳으로, 주로 신발·봉제와 주물·조립금속 등의 노동집약적 산업이 자리 잡았다. 당시 도시 외곽 지역이던 낙동강 동안의 저습지에 공단이 조성된 데다 계획적인 단지 개발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변두리의 일반주거지와 뒤섞이면서 공단이 형성되었기에 하수·폐수 시설이나 도로정비 등의 기반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았다. 공단에는 당시 한국경제의 주력산업이던 신발, 섬유, 화학공장 등이 즐비했다. 공단은 산업화와 함께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밀려온 사람들에게 일터를 제공했고, 그들은 이곳을 삶 터로 삼으면서 갖가지 애환과 추억을 일구었다. 청춘을 공단에서 일하며 보낸 이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고, 나이가 지긋한 일반 시민 대부분에게 사상공단은 부산 경제의 토대를 마련한 산업화시대의 아리고도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당시의 사상공단을 상징하던 국제상사 사상공장을 중심으로 산업화시기 부산의 모습과 추억을 회고해 보자.

■국제상사 단일규모 세계최대 공장 완공

   
1989년 당시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온 산업연수생들이 사상공단 소재 국제상사에서 신발 제조 공정을 배우고 있는 모습.
국제상사를 이야기하자면 부산의 신발산업을 빼놓을 수 없다. 해방 이후 부산에는 일본의 생산기지를 넘겨받기에 유리한 입지 등을 발판으로 삼아 신발·고무공장이 생겨났다. 말표 태화고무(1945년), 왕자표 국제고무(1949년), 범표 삼화고무(1952년), 기차표 동양고무(1953년) 등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유명 브랜드의 고무신공장들이 모두 부산에서 탄생했다. 초기에 이들 고무신공장이 들어선 곳은 범일동, 범천동 등 동구 동천 변이었다. 동천의 산업용수와 접근성 그리고 인근에 몰려든 피란민들의 풍부한 노동력이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1950년대 중반으로 넘어서면서 삼화고무나 국제고무 등은 종업원 1만 명이 넘는 거대한 규모로 성장했다. 1960년대 이후에는 신발산업이 국가의 유력 수출산업으로 장려되면서 저임금 노동을 기반으로 한 대표적인 수출산업으로 입지를 굳혔다.

신발공장이 사상공단으로 본격 진출하게 되는 것은 국제화학(1973년 국제상사로 사명변경)이 1972년에 단일공장으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사상공장을 완공하면서부터이다. 이후 국제상사 사상공장은 신발산업의 전성기인 1970, 80년대를 대표하는 공장으로 우뚝 섰다.

1992년 정부의 신발산업 합리화 조치와 함께 사양길로 접어들기 이전까지 부산은 신발이 먹여 살렸다고 할 정도다. 당시 부산의 제조업 종사자 40%가량을 신발산업이 차지했다. 수출의 선봉, 신발산업의 메카, 세계 최대의 단일공장 등 당시 국제상사 사상공장을 표상하던 용어들은 어느새 부산의 자부심이 되었다. 지금은 쇼핑센터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는 국제상사 사상공장의 옛터를 돌아보면서 과거 잘나가던 시기의 영광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러한 외부적 표상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임금 노동자·날날이집 애환도 물씬

그러한 외부적 표상의 이면에는 신발공장에 묻혀 산업화의 힘든 시기를 지나온 노동자들의 애환이 자리하고 있다. 신발공장은 저임금 노동에 기반한 노동집약산업인 데다 악취와 먼지, 그리고 건강을 위협하는 화학약품에 상시 노출되는 열악한 작업장이었다.

공장 폐수 등으로 삼락천의 고인 물은 화학약품 저장고를 방불케 했다. 주변의 주택가에서는 아침에 흰 빨래를 널어놓으면 저녁에 걷을 때 검은 빛으로 변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했다. 일자리를 찾아 많은 사람이 모여 들다보니 공장 주변의 주거환경 또한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당시 공장 주변에는 이른바 '날날이 집'이라는 주거공간이 즐비했다. 당시 집주인들은 더 많은 셋방을 놓기 위해 조금이라도 여유 공간이 있으면 방 한 칸에 부엌을 달아 날날이 집을 추가했다. 한 집에 대여섯 개의 셋방이 딸려 있기 일쑤였다. 좁고 부실한 공간에 많은 가구가 모여 살다보니 힘든 것은 당연하지만, 거기서도 사람 사는 냄새는 진하게 묻어났다.

국제상사의 노동자들 가운데는 호남지역 등에서 돈 벌러온 외지인과 여공이라 불린 여성노동자들이 특히 많았다. 지금은 중년의 '부산 아지매'가 되어 있을 당시의 여공들은 고혈을 짜내는 강도 높은 노동환경 속에서도 나름의 희망과 추억을 엮어 갔다. 두고 온 가족의 생계나 동생들의 학비를 대기 위해 어린 나이에 산업전선에 뛰어든 감동적 사연은 당시로써는 흔한 레퍼토리였다. 육교로 연결된 통로로 공장과 기숙사를 매일 오가며, 또 시간을 쪼개 인근의 구포여상에서 공부를 하는, 그야말로 주경야독의 치열한 청춘을 살아간 여공들의 서사는 비단 국제상사뿐 아니라 1970, 80년대 우리 시대상을 대변한다. 지금은 아파트단지로 변한 국제상사 기숙사 건물 터에는 이들 어린 여공의 고통과 희망 그리고 부대끼던 청춘의 치열한 삶이 그대로 배여 있다.

■1980년대 중반 정점 찍고 내리막길

신발산업은 저임금에 기반을 둔 전형적인 노동집약산업으로 강도 높은 노동력 관리에 의해서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잔업, 생산량 증대를 위한 공장 새마을운동 등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안간힘에도 한국의 신발산업은 중국이나 동남아 후발 국가들보다 더 나은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점차 힘들어진다. 오히려 생산량을 짜내기 위한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강력한 노동운동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신발산업이 최고의 생산실적을 기록한 것은 1980년대 중반으로 당시 국제상사에만 1만5000명이 넘는 종업원을 둘 정도였다.

1980년대 후반의 노동쟁의와 주요 바이어들의 이탈로 1990년대 초반 특히 1992년 정부의 신발산업 합리화 조치 이후, 삼화, 진양, 태화, 동양 등 부산의 대규모 신발공장들은 줄도산을 면치 못하게 된다. 1986년 모그룹의 해체로 한일그룹에 인수되었던 국제상사 사상공장 역시 생산라인을 대폭 줄이게 되었다. 국제상사 사상공장은 1992년 김해시로 이전하면서 사상공단 시대를 마감하게 된다.


# 부산경제의 한 축인 신발산업… 이젠 신성장동력 잰걸음

- 국제상사 재계순위 6위서 그룹 해체
- 흥망성쇠 속에서도 독자 브랜드 유지

국제상사 사상공장의 흥망성쇠는 부산의 신발산업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신발산업이 절정에 달하였던 1980년대 중반 국제상사의 모기업인 국제그룹은 재계 순위 6위를 기록할 정도로 부산을 대표하는 향토기업으로서의 입지를 자랑했다. 5공화국 정권의 재벌 길들이기 시범케이스로 국제그룹이 공중분해가 되면서 국제상사는 한일그룹으로 넘어갔고, 그 후 사상공장의 김해이전, 모 그룹의 부도와 법정관리, 매각 등을 거쳤지만 여전히 독자적인 브랜드를 가진 대표적 신발기업으로 자리하고 있다.

   
부산의 신발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게 된 것은 값싼 노동력 중심에서 기술력과 디자인에 기반을 둔 경쟁력으로의 전환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전만은 못하지만, 신발산업은 여전히 부산의 핵심 산업이다. 2011년 기준으로 부산의 신발제조업체 수와 종사자 수는 230여 곳에 5700여 명으로 전국 대비 45% 안팎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자체 브랜드나 OEM으로 수백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도 있지만, 전체 80%가량은 종업원 20인 미만의 영세성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들어 기능성 신발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면서 신발산업은 노동집약산업이 아닌 첨단 R&D(연구개발) 및 디자인 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추어 부산시와 신발업계는 사상구에 신발산업 명품화를 위한 '첨단신발융합 허브센터'를 건립하는 등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모쪼록 신발산업 메카로서의 명성을 이어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되었으면 한다.

이상봉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부교수·정치학박사·지역정치 전공


※공동기획 :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의인문학연구단, 국제신문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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