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다시 읽는 자본주의 <15> 왜 나는 일하고 당신은 노는가―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②

누군가는 굶어죽고 누군가는 낭비한다

소수의 독점자가 인류 공동의 자원을 무참하게 내버린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8-07 20:15:21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 기아로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있다. 지구 한 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가격하락을 막으려 가축을 도살해 매장한다. 그 가축은 인간의 필요가 아닌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만 사육되기 때문이다.
베블런이 과시적 소비라고 이름 붙인 소비행태는 자본주의에서 처음 나타난 것은 아니다. 어디서나 부와 경제적 권력을 가진 자들은 반드시 자신의 금력을 과시하고자 한다. 봉건영주들이나 고대의 왕족들은 물론, 심지어는 미국의 원주민이나 태평양의 해양부족들 사이에서도 과시적 소비와 금력 과시 경쟁을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로마의 귀족들은 목욕탕에서 파티를 즐겼는데, 파티장 옆에는 구토하는 방이 따로 있었다. 배가 불러 더 이상 음식을 먹지 못하면 속을 비우고 와서 다시 파티를 계속하기 위해서이다. 귀족들은 경쟁적으로 호화로운 목욕탕을 지었고, 그리스로부터 수입한 대리석과 동방의 값비싼 보석들로 장식하였다. 그래서 심지어는 로마는 목욕탕 때문에 망하였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멜라네시아의 어떤 부족들은 다른 부족에게 선물을 받으면 반드시 그보다 더 많은 선물로 보답한다. 만약 어느 부족장이 더 많은 선물로 상대방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그는 부족민들의 존경과 권력을 잃고 만다. 경쟁적으로 파티를 여는 현대의 부자들과 다를 바 없다. 어쩌면 과시욕이야말로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라고 해도 좋을는지도 모르겠다. '제도의 진화에 대한 경제적 연구'라는 부제가 잘 보여 주듯이, 베블런은 인간의 과시 욕구가 시대와 사회에 따라 어떻게 진화하여 현대사회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보여 준다. 물론 먼 과거로 거슬러 갈수록 유한계급과 노동계급의 분화는 현대 사회에서만큼 명확하지 않다. 미개상태에서는 경쟁하기 위한 부의 규모가 아직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한계급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중세의 봉건영주들에서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대사회는 그것이 가진 거대한 생산력만큼이나 그러한 과시적 소비가 대규모적으로 일어나는 사회이다.

   
1920년대 상류층의 파티 모습
부자가 너무 바빠 유한계급으로서의 본연의 역할, 즉 놀고먹는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면 그 역할은 아내와 가족들에게 주어진다. 부자들이 젊은 아내에게 값비싼 보석과 명품을 사 주고 유명한 휴양지에서 요트 여행을 즐기게 하는 이유는 그녀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대리해 소비하고 여가를 보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베블런의 표현을 빌리면 '대리적 소비', '대리적 여가'이다. 부자들이 자신의 금력을 과시하는 대상은 노동자와 중산층만이 아니다. 부자들은 자기들끼리도 누가 더 많은 부를 가졌는지 과시하기 위해 경쟁한다. 베블런은 이런 낭비적이고 무모한 경쟁을 '금력과시 경쟁'이라고 불렀다. 한 부자가 호화로운 파티를 열면, 다음 부자는 더 호화로운 파티를 연다. 한 부자가 값비싼 요트를 사면, 다른 부자는 비행기를 산다. 한 부자가 자신의 딸을 백작과 결혼시키면 다음 부자는 자신의 딸을 공작과 결혼시킨다. 귀족의 가치가 떨어진 요즘은 스포츠 스타나 인기 연예인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개천에서 나온 용은 부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자칫하면 함께 개천으로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백 수십년 전의 미국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대한민국의 이야기이다.

이런 과시적 소비의 문제는 결국 인류가 보다 더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할 유한한 자원을 소수의 금력자들이 독점하여 낭비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유한계급론'에서 베블런은 소비의 영역에서 자본주의의 낭비적 본질을 적나라하게 폭로하였다. 그런데 또 다른 저작인 '영리기업론(1904)'에서 베블런은 생산의 측면에서 자본주의의 낭비적 본질을 고발한다. 유한계급들이 과시하는 저 거대한 부와 경제적 권력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베블런은 그것이 산업과 기업의 분리에서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산업'은 '기술'을 추구하고, '기업'은 '영리'를 추구한다. 기술은 생산의 효율성을 의미한다.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면 사회는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그러나 기업은 기술이 아니라 영리, 즉 자신들의 이윤에만 관심을 가진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기업과 기술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점차 산업과 기업이 분리되면서, 소수의 기업이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누려야 할 기술의 혜택을 독점함으로써 거대한 이윤을 축적하게 된다. 유한계급의 부는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베블런의 '영리기업론' 속표지.
이윤을 위한 생산은 자원의 낭비를 초래한다. 그렇다면 이런 낭비의 끝은 어디일까? 베블런은 산업혁명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가장 심각한 위기로 불리는 대공황이 일어나기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났다. 베블런은 자본주의의 낭비적 측면을 비판하기는 했으나 자본주의 그 자체를 부정하는 마르크스주의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는 자본주의가 그 자신의 모순에 의해 붕괴하리라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을 비판하였다. 하지만 그런 베블런도 자본주의, 특히 20세기 미국경제가 빠져 버린 낭비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리고 그의 예언이 실현되기까지는 불과 두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 갤브레이스의 '풍요로운 사회'

- 기업은 이윤을 위해 인위적 욕망을 창출한다
- 명품에 대한 나의 욕구는 광고에 지배당한 욕망이다

   
존 케니스 갤브레이스.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케네디 행정부에서 대통령의 경제고문과 인도 대사 등을 지내기도 하였다. 대중적인 글쓰기로도 유명하다.
베블런의 독창적이고 비판적인 경제학은 동시대와 후대의 많은 경제학자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베블런의 가장 충실한 계승자로 불리는 존 케니스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 1908~2006)는 베블런 이후의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제도의 진화를 분석한 경제학자로 유명하다. 그의 주요한 저작 가운데 하나인 '풍요로운 사회(1958)'가 '유한계급론'의 속편이라면, 다른 저작 '새로운 산업사회(1967)'는 '영리기업론'의 속편이라고 할 만하다. 물론 그 자신은 오히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의 속편을 쓴다는 야심찬 의도를 가지고 있었음직도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풍요로운 사회'에서 갤브레이스는 인간의 욕구를 생활의 필요에 따른 절대적인 욕구와 그 이외의 상대적 욕구로 구분하였다.

우리가 경제활동을 하는 본래의 목적은 절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기업은 이윤을 더 많이 얻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욕구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기업들은 광고를 통해 더 많은 욕구와 더 많은 소비를 부추긴다. 겉으로만 보면 내가 그 상품을 원해서 소비하는 것 같지만 실은 나의 욕구조차도 기업들의 광고에 종속되고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갤브레이스는 이를 '의존효과'라고 불렀다. 얼핏 보면 이런 대중소비사회는 과거 어느 사회보다 더 풍요로워 보인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이제 노동계급은 생산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소비와 생활과정 속에서조차 기업의 통제와 조종을 받으면서 그들의 이윤을 위해 복종하고 봉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낭비적이고 퇴폐적인 자본주의의 끝은 어디일지 참으로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조준현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 동래구에 붙은 선거벽보
  2. 2‘진격의 개미’ 주식계좌 한 달새 86만 개 늘었다
  3. 3[서상균 그림창] 바쁘고…기쁘고…나쁜
  4. 4민주당 ‘수영강 벨트’ 집안싸움에 원팀 흔들
  5. 5미국 확진자 20만명 넘어서…13일 만에 20배 급증
  6. 6화상통화로 면접시험 치뤄요
  7. 7김해갑 TV토론…후보별 ‘신공항’ 찬반 난타전
  8. 8144년 전통 윔블던 대회도 취소
  9. 9[도청도설] 슬기로운 ‘집콕’ 생활
  10. 10낙동강 하구를 국가도시공원으로 <8> 앞으로의 20년
  1. 14·13 총선 D-13, 여·야 공식 선거운동 시작
  2. 2코로나19 우려에도 한 표 행사하는 재외국민들…"무섭지만 투표는 꼭 해야"
  3. 3네이버, 오늘(2일)부터 급상승 검색어 중단…댓글 작성 시 실명 인증
  4. 4부산·경남 국회의원인데 … 40%가 강남에 아파트 보유
  5. 5부산 선거 벽보 3639곳 부착 시작…훼손하면 처벌
  6. 6코로나19 사태로 울산 기업경기전망지수(BIS) 세계금융위기 수준 하락
  7. 7재외투표 첫날 …해외 유권자들 소중한 ‘한 표’ 행사
  8. 8선관위, 전국 8만 6000여 곳에 후보자 선거벽보 게시
  9. 9 ‘결혼정보 무료제공, 2천만 원 결혼장려금 지원 등 공약에 대해 물었습니다
  10. 10문 대통령 "후반기 국가균형발전 정책 등 더 열심히 해달라"
  1. 1‘진격의 개미’ 주식계좌 한 달새 86만 개 늘었다
  2. 2한국은행, 양적완화 돌입…RP 5조2500억 첫 매입
  3. 3삼성전자 해외공장 25% ‘셧다운’…항공사 대량실직 현실화
  4. 4종부세 납부 대상자 긴급재난지원금 못 받을 듯
  5. 55대 은행 원화 대출 지난달 20조 원 증가
  6. 6주가지수- 2020년 4월 2일
  7. 7석 달간 물가 1%대 상승…코로나19로 식재료 가격↑
  8. 8금융·증시 동향
  9. 9부산항 입항 요청 크루즈 2척 중 1척 조건부 허용
  10. 10
  1. 1부산시, 인도네시아서 온 119번째 확진자 동선 공개
  2. 2정부 “사회적 거리두기 향후 방향,주말 이전 밝힐것” (종합)
  3. 3경남 김해, 영국서 귀국한 20대 코로나19 신규 확진
  4. 4마스크 공급량 안정권 들어서나…사라져가는 '마스크 줄'
  5. 5창원시, 코로나19 실직 청년 희망지원금 신청 접수
  6. 6이탈리아 신규 확진자 4000명대 유지…전문가 "확산세 정점 도달"
  7. 7부산경찰, 아동성착취물 및 불법촬영물 텔레그램 판매자 검거
  8. 8부산 지역사회 감염 10일째 '0'…자가격리자는 1247명
  9. 9국내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9976명…89명 늘어
  10. 10거제시, 정부 지원 제외된 소득상위 30% 에 최고 50만 원 지원
  1. 1코로나19 여파로 윔블던 취소…2차대전 이후 처음
  2. 2방구석 1열서, 함성 대신 댓글…랜선 스포츠 시대
  3. 3추신수, 마이너리거에 1000불씩 ‘특급 선행’
  4. 4144년 전통 윔블던 대회도 취소
  5. 5‘병역 특례’ 손흥민 해병대서 기초군사훈련
  6. 6
  7. 7
  8. 8
  9. 9
  10. 10
이경식의 '철학 기행'
토지, 공존과 상생의 토대
성백의 아츠버스(ArtsBus)…유라시아를 달리다
한달여를 달려 유럽의 국경에 서다
김석화의 내가 읽은 책 [전체보기]
청각장애인의 ‘목소리’ 수어 엿보기
목격자 되기
동네책방 통신 [전체보기]
프로파일러와 영화 보며 ‘진짜’ 범죄 이야기 들어요
오웰 흔적 찾아 떠난 여행담…그의 삶과 작품 얘기해요
박선미의 내가 읽은 책 [전체보기]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사람다움에 대해
그 많은 학원 다녀도 못 푸는 문제…참된 삶이란 무엇일까
부산 웹툰 작가들의 방구석 STORY [전체보기]
동생의 진로. 수국
웹툰 작가의 연애. 빵야
새 책 [전체보기]
우리가 사랑했던 그리운 그 작가(조성일 지음) 外
오웰의 코(존 서덜랜드 지음·차은정 옮김) 外
신간 돋보기 [전체보기]
골프계가 말하는 트럼프의 민낯
편견과 차별에 맞선 과학자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부산 마리나’ - 박경태 作
‘기억의 경계12’ - 김인옥 作
어린이책동산 [전체보기]
잉어 할아버지가 매일 바쁜 이유 外
콩과 함께 흥미진진한 등굣길 外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무릉리 돌담 /김정
구포역 /문운동
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전체보기]
‘킹덤2’ 김은희 작가
영화 ‘이장’ 정승오 감독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이승환·신승훈 목소리와 함께한 ‘30년’
다시 뜨거워지는 ‘월화드라마’ 시장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봉준호 영화와 ‘사건’의 철학
‘페인 앤 글로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조준형의 내가 읽은 책 [전체보기]
북코칭 전문가의 책 잘 읽는 이야기
숱한 차별을 버텨온 당신에게 박수를
최예송의 내가 읽은 책 [전체보기]
봄의 시작점에서
함께 살아가고 부딪치는 사람, 그리고 공동체를 향해
BIFF 리뷰 [전체보기]
폐막작 ‘윤희에게’
‘마르게와 엄마’
BIFF 현장 [전체보기]
위장이혼 하자마자 복권에 당첨된 남자
“장애인 돌봄 활동하며 느낀 점 영화에 담아”
묘수풀이 - [전체보기]
묘수풀이 - 2020년 4월 2일
묘수풀이 - 2020년 4월 1일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0년 4월 2일(음 3월 10일)
오늘의 운세- 2020년 4월 1일(음 3월 9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주말의 BIFF - 10월 11일·12일
오늘의 BIFF - 10월 10일
이기섭 8단의 바둑칼럼 [전체보기]
제6회 대주배 남녀 프로시니어 최강자전
제6회 대주배 남녀 프로시니어 최강자전
정천구의 도덕경…민주주의의 길 [전체보기]
後浪催前浪
寵愛若驚
  • 낙동강수필공모전
  • 2020하프마라톤대회
  • 2020 어린이 극지해양 아카데미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