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은 벼의 이삭을 떨어낸 줄기와 잎을 말한다. 한국에 벼가 재배된 것은 대략 BC 2·3세기 무렵으로 추정된다. 이때부터 농가에서는 토속신앙에 근거하여 여러 생활도구의 재료로 볏짚을 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짚의 부피 단위는 짚내끼(한 포기는 15∼30개 중에서의 하나), 짚단, 한뭇, 한장, 한동, 짚가리로 나눌 수 있다. 짚의 구조는 뿌리와 줄기, 잎, 이삭이 있다. 낫으로 벤 쪽을 밑둥이라 하고 이삭 쪽을 수냉 이라고 한다. 이런 짚은 버릴 것이 전혀 없다.
짚의 용도는 비료, 가축사료, 생활용구, 신앙생활 등 다양했다. 외양간에 깔아 주는 깃으로 이용되는 짚은 화학비료가 없던 시절의 퇴비 형태로 논과 밭 토양의 유기물을 증진하는 거름으로 재생된다. 수확한 후 짚은 여물로 썰어 쇠죽을 끓여 소에게 먹였고 가축의 겨울철 건초 사료로도 활용됐다. 또 새끼, 가마니, 거적, 멍석, 삼태기, 씨오쟁이, 짚신, 삼태기, 이영, 망태기, 용마름, 도롱이, 매판, 똬리, 계란 꾸러미, 메주 끈, 볏섬, 시래기두름, 닭둥우리, 지게 멜빵·등태, 그넷줄, 낫꽂이, 종다래끼, 둥구미, 누에섶, 멍석, 줄다리기 줄, 등의 각종 생활용품의 원료로 농가의 빠질 수 없는 생필품이 되었다. 집을 지을 때 지붕을 이는데 초가지붕뿐만 아니라 벽에 바르는 황토에 짚을 넣어 흙을 버무려 벽의 견고함을 더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짚은 의례, 위험, 토속 신앙생활에도 이용되었다. 제웅, 아기 탄생의 홍보와 경계에 사용되는 금줄, 아기를 점지하는 삼신짚, 집안의 액운을 걷어가고 복을 갖다 준다는 장독의 터주가리, 풍년 기원의 볏가릿개, 정월 대보름의 만월을 바라보며 풍농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점풍(占豊)의 의미를 지녔던 달집태우기 등 농촌의 신앙행사에 볏짚이 널리 쓰였다는 것이 사실이다. 아기 예수도 마구간의 정갈한 짚 속에서 탄생하였을 것이고 우리 조상은 정성이 담긴 짚에서 부정을 불식시키는 성물(聖物)인 삼신짚 위에 갓난아이 받으셨고 초가집에 지푸라기 인생으로 살다가 좋은 해(年)를 찾아 초분(草墳)에 영생하였다. 그런 짚은 우리 조상의 생활에 시대의 문화를 담아내기 위한 넉넉한 소재이고 문화예술의 발원이었다.
조선 시대의 교육(기관) 구조는 필자의 어릴 적 부친이 운영하였던 마을의 서당,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하거나 석학이나 충절 인을 제사하던 곳의 서원, 현(縣) 단위에 설치된 향교, 최고의 유학 교육 기관인 한양의 성균관이 있었다. 교육의 장이 있는 곳에는 주변 환경이 엄숙하고 사람에게 좋지 못한 시설이 들어서지 못하였다. 학교가 등장한 지금도 학교 주변에는 유해시설은 들어서지 못한다. 그런데 부산에는 두 곳에 향교가 지금도 남아 있다. 동래향교와 기장향교를 말한다.
여기서 부산 기장군을 주목한다. 임진왜란 때 현감이 싸우지도 않고 도주하였다는 문책으로 선조 32년(1599년)에 기장현은 폐현이 되는 등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당당한 부산의 자치단체로 우뚝 섰다. 기장에는 멸치축제, 미역·다시마축제, 붕장어축제, 한우(짚이 주 사료)축제 등이 있다. 기장에는 '기장 도예촌'이 조성되고 있고 한국야구위원회(KBO)의 '한국 야구박물관 및 명예의 전당'이 들어설 예정이다. 또 기장 일광에는 종합영화촬영소(77만6863㎡에 1906억 원 투입)가 들어서고, 2016년 2단계로 3300억 원의 민자를 끌어들여 '아시아 영화촌'(가칭) 건설 계획도 있다고 한다.
부산에서 '짚을 생산하는' 벼농사와 전통의 향교가 함께 존재하는 곳은 기장군이 유일하다. 부산에서 기장 지역은 민속·전통적 요소가 고루 남아 있다는 뜻일 게다. 그래서 한국민속촌보다 더 크고 나은 '동남민속촌'(가칭)이 기장에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른 지역에 없는 바다를 끼고 등선을 달리하면서도 연결된 다른 한쪽에는 '민속어촌'도 붙어 있으면 좋겠다.
권민수 한국민속문화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