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된 국어사전의 저자는 "어두운 일제강점기에 당당히 '한글이 목숨이다'라고 외친 외솔 선생의 한글 사랑 정신을 되새기며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고 말했다. 그랬다. 우리말에 있는 일본 말 찌꺼기를 다룬 '사쿠라 훈민정음'을 펴내고, 한편으로는 시인으로 등당해 친일 문학인의 풍자 시집 '사쿠라 불나방' 등을 엮은 저자의 절절한 한글 사랑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말 속에 꼭꼭 숨어 마치 예전부터 있던 것처럼 행세하며 사용되는 일본 말들을 골라 그것의 정체와 역사성을 들춘' 이 책을 쓰면서 저자는 '표준국어대사전을 불태워라'라는 파격적인 이름으로 출간할 생각을 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우리 말, 글을 사랑한답시고 국어사전을 찾고 문헌을 뒤지면서 우리 사전이 너무나 부실하고 안이하다는 생각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왜 일본어가 한국어로, 한국어는 일본어로 바뀌었는가. 그 '스캔들'의 현장을 이 책은 낱낱이 고발한다. 그래서 그런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우리의 표준국어대사전이 아직도 일본 말에서 '독립'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섬뜩하기 때문일 터.
국어사전도 밝히지 못한 일본 말 찌꺼기의 역사와 유래를 추적해 2010년 내놓은 '사쿠라 훈민정음'에 이어 생활 속에 더욱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일본 말 오용 사례를 밝히고, 이 문제에 관해 부실하고 안일하게 대응하는 국립국어원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일단 '국민의례'라는 말을 따져 보자.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삼일절이나 광복절은 물론 학교 입학식이나 졸업식, 국가 주요 행사 날에는 이 국민의례가 빠지지 않는가. 그런데 말이다. 이 국민의례라는 것이 사실 일본 기독교단에서 제국주의에 충성하고자 만든 의식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다정하고 사이좋은 부부를 가리켜 흔히 잉코부부라고 한다. 하지만 '잉꼬'는 앵무새의 일본 말이다. 말하자면 차인표, 신애라 부부는 '앵무새 부부'인 셈이다. 잉꼬를 앵무새로 바꿔 놓으면 이미지가 싹 바뀐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우리의 머릿속에서 앵무새는 남의 말만 흉내 내는 새라는 별로 좋지 않은 이미지가 있지만 잉꼬라고 부를 때는 왠지 '잉꼬부부' 같은 말을 떠올려 좋은 이미지로 둔갑한다."(본문 75쪽)
광복을 맞이하고 세대가 바뀌었지만, 아직도 우리 삶 깊숙한 곳에는 그 뜻을 알면 도저히 쓸 수 없는 일본 말들이 넘쳐난다고 저자는 강변한다. 그리고 오래전 한자 문명을 전파했던 우리가 지금은 오히려 일본식 한자를 쓰고 있다는 점을 밝히면서 문화·예술 측면에서 앞서 갔던 민족의 자존심까지 구겨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이처럼 잘못 쓰인 찌꺼기를 거르고 올바른 국어사전을 만들어가야 할 국립국어원의 무대응을 질타하는 이 책은 예전에 쓰던 한자를 버리고 일본 한자로 바꿔 써 일본 말로 정의 내리는 '표준국어대사전'의 무원칙을 고발한다.
그런데 책장을 덮으면서 가슴이 미어진다. 사회 전반에 광범히 하게 퍼진 이들 일본 말 찌꺼기를 하루아침에 들어낼 수 없는 현실을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언어 습관이 굳으면 생명력은 질겨 바로 잡기가 그만큼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