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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의 공간-부산 근현대의 장소성 탐구 <5> 극장전(劇場傳)

영화도시 있게 한 '왕년의' 영화 1번지… 추억의 필름 다시 꺼내 본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7-23 19:51:37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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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2층짜리 1168석 규모로 개관했다가 2011년 5월 23일 문을 닫은 삼성극장 모습.
- 범일동 주택가에 재개봉관 몰려
- 주요 관람객은 공장 노동자들

- 삼일극장, 1944년 재상영관 출발
- 영화 '아리랑' 찍으며 유명세
- 영화 '친구' 배경, 인기 관광지로

- 삼성극장, 1959년 문 열어
- 2011년 부산 단관 마지막 사라져

- 보림극장, 1968년 개봉관 개관
- 인기가수 쇼무대로 탈바꿈

- 배고픈 시기 문화욕구 채우고
- 고단했던 하루 푸는 해방구로

1. 늙은 영사기사의 낯선 꿈

   
해방 1년 전인 1944년 조일영화극장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한 후 2006년 11월 16일 문을 닫은 삼일극장의 철거 직전 모습. 이곳에서 촬영된 영화 '친구'를 기념하는 '친구의 거리' 입간판이 유난히 눈에 띈다. 국제신문 DB
준석, 동수, 상택, 중호. 네 명의 친구들이 달리고 달린다. 달리기의 종착역은 삼일극장. 이 극장은 1970, 80년대 추억을 팔면서 일약 스타가 되었다. 친구들이 달렸던 길인 '친구의 길'이 관광지가 되면서 삼일극장은 영화 '친구'의 오마주가 되어 버렸다.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보다 영화관을 보러 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유명세는 탔지만, 2006년 11월 16일 부산 동구 범일동 중앙대로 117번지 삼일극장은 간판을 내렸다. 당시 삼일극장은 전국 남은 몇 안 되는 단관이었다.

이미 재개봉관의 흔적조차 더는 무색할 정도로 비 내리는 화면에 철 지난 성인영화만 돌리고 있었던 삼일극장은, 어쩌면 간판 내리기 오래전부터 2층 낡은 영사실에서 필름을 돌리고 있는 지방 변두리 '알프레도'(영화 '시네마 천국'에 등장하는 영상기사)의 오랜 '낯선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현재 8차로 도로에 묻혔거나, 한참 거리가 먼 전자제품 가게가 호객행위를 하는 이곳에서 늙은 영사기사의 꿈을 꺼내 보는 것은 정녕 백일몽일까?


2. 극장의 탄생

부산시는 세계적인 축제가 된 부산국제영화제에 힘입어 유네스코 '영화 창의도시'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영화도시 부산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중구 남포동에서 그 기원을 삼고 해운대로 확장해나가고 있다. 그런데 이 길이 모름지기 직선이 아니라, 모퉁이 삼각지를 한 번 찍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 모퉁이 삼각지가 동구 범일동 삼일극장, 삼성극장, 보림극장의 재개봉관 트라이앵글. 물론 이들 세 극장이 전부는 아니다. 범일동의 금성극장(1956), 태평극장(1957)이 1980년대 초반까지 있었고, 이보다 일제강점기부터 문을 연 초량좌(1914), 유락관(1921), 대생좌(1930), 대화관(1942)을 비롯해 해방 이후 수정극장(수정동 1957), 대도극장(초량동 1958), 초량극장(초량동 1958), 천보극장(초량동 1960) 등이 생겨났다. 이를 보면 부산영화의 대표명사 중구 못지않게 동구에도 많은 영화의 흔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번화한 상업공간도 아닌 주택지들이 밀집한 공간에 극장들이 몰려든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6·25전쟁 이후 이곳에 비슷비슷하게 문을 연 재개봉관들은 당시 증가하는 관람객을 대변한다. 이들 극장으로 몰려든 주요 관람객은 인근의 조선방직, 국제고무, 삼화고무, 대선양조 등 부산의 경공업을 도맡았던 인근 공장의 수많은 노동자였다. 이들 극장의 환영과 함께 맡아지는 음습한 냄새들은 그래서, 쉽게 떨칠 수 없다. 이들은 공장들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대개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에 문을 닫았지만, 삼일, 삼성, 보림극장은 2000년대 이후까지 우리 곁에 있었다. 또 다른 영화 1번지로.


3. 삼일, 삼성, 보림의 트라이앵글

   
영화 '친구'의 곽경택 감독이 2010년 3월 부산 동구 범일동 '친구의 거리'를 둘러보던 모습.
삼일극장은 1944년 조일영화극장이라는 간판을 걸고 재상영관으로 출발했다가 해방 이후 삼일극장으로 개명했다. 다시 제일극장(1949)으로 바뀌었다가 1950년대 삼일극장으로 변경되는 과정을 겪었다. 이 극장은 서울의 단성사와 흡사한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하여, 1966년 나운규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 '아리랑'을 찍으면서 이 극장을 단성사로 꾸미고 나운규의 장례식 장면을 촬영했다. 단성사, 나운규, 삼일극장으로 연결되는 이야기들은 얼핏 보아도 삼일극장이 만만한 극장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삼성극장은 이보다 훨씬 지난 1959년 삼일극장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재개봉관으로 문을 열었다. 단층이었던 삼일극장에 비해 2층 건물 1168석을 갖추어 제법 규모가 있었다. 이 극장이 2011년 5월 23일 문을 닫음으로써 부산의 단관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에 반해 보림극장의 등장은 화려했다. 이들 중 외형이 가장 큰 보림극장은 1968년 현재의 자리에 개관되었다. 사실, 보림극장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앞선다. 1955년 남포동에 건립된 보림백화점 내 2층에 자리 잡았던 보림극장이 당시 범일동 조양직물공장 부지를 매입해 5층 건물, 1473석으로 확장하여 개봉관으로 등록했다. "항도부산 유일의 초현대식 최고의 시설/ 문화의 전당 寶林극장"(부산일보 1968. 9. 27) 이라는 광고는 개관 당시의 위풍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위풍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개봉관이었지만, 당시 영화배급이 남포동 극장가 중심으로 우선 배급이 되었고, 현실적으로 보림극장의 영화 배급이 원활하지 못해서 개봉관의 체면을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보림극장은 쇼 무대 중심 극장으로 탈바꿈하면서 새로운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70년대 톱스타 하춘화, 남진, 나훈아의 공연에는 부산 전역에서 관람객이 모여들어 장사진을 이루었다. 1980년 조용필 쇼를 끝으로 쇼 무대를 마감하고 2편 동시체제로 전환되면서 점차 쇠락해 갔다. 남포동이나 서면의 개봉관과 격차를 더욱 벌리면서 90년대 이후 아예 성인물을 위주로 한 성인관으로 명맥을 이어갔다. 마주하고 있는 삼일, 삼성극장도 마찬가지였다.


4. "쇼를 보았네"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를 따라 동래에서 보림극장까지 택시를 타고 '여로' 공연을 보러 왔다. 이것은 우리 집의 큰 문화행사였을 뿐만 아니라, 이웃집 '눈치 TV'를 저녁마다 보러 다녔던 내가 이웃집 아이를 이길 수 있었던 역전의 기회였다. TV에 나왔던, 우리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으리라 믿었던 그 '대단한' 사람들을 실제, 진짜로 보았던 것이다. 당시 극장들은 소위 '리싸이틀'과 영화 상영을 번갈아 했다. 74년 보림극장 하춘화 리싸이틀은 하루 5회 공연에 9000명의 관객을 동원(매일경제 1974. 7.12)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 나도 한몫했으니…. 어떻게 보면,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절박하게 목을 겨누었던 그때 극장으로부터 날아오는 하춘화나 엘비스 프레슬리나 경아(영화 '별들의 고향' 여주인공)에 몰렸던 것은, 그래도 이것이 이 도시에 살기 위한 필요조건으로서의 문화였거나, 현실의 누추함을 견디어 나가는 환상의 방법론으로 다가온 선물이었을 것이다.

특히 인근의 시장과 국제고무공장, 삼화고무공장 등 주변의 상공업이 활발하던 때, 비록 한 물 빠진 영화라 하더라도 새 영화 간판이 걸리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암표상이 극성을 부렸, 가마니에 돈을 담았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니까 이 극장들은 당시 시내 개봉관으로 가지 못하는 인근의 노동자나 서민이 예술을 수입하고, 새로운 유행을 만나던 문화공간이었고 온종일 고된 노동에 막혔던 울혈을 토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의 장소였으리라. 그뿐이던가. 80년대를 지나면서,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부박했던 내 인생의 그 시절, 퀴퀴하고 삐걱거리는 의자에 온종일 죽치고 앉아 본전 뽑은 이본 동시 영화는, 아니 이 삼류극장은 '찌질한' 해방구가 되기도 했던가.


5. 영화도시의 스토리텔링

영화 '삼거리 극장'(전계수 감독 2006)은 이 음습한 삼일극장에서 극장을 맴도는 혼령들의 유쾌한 춤과 노래를 판타스틱한 코믹으로 불러내었다. 이 장소에서 기대하는 지속적인 울림은 무엇일까. 단순히 여기에 극장이 있었네. 60년 전 극장이 있었다는 표지판을 세워 이곳이 극장 자리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보다 더 간절함은 이 극장이 불러 모은 사람들과 그들의 시간을 마주하는 일이다.

   
'영화 들어왔다', '하춘화가 내려왔다' 극장 앞으로 모여든 상기된 얼굴들을. 화려한 개봉관이 아니어도 너무도 유쾌했던 인근 여공들의 '고급한' 문화생활, 혹은 고단했던 하루와 비가 줄줄 내리는 스크린을 맞바꾸며 도시의 교양을 익혀나갔던 산 위의 이주민들, 금기의 구역에서 위반의 황홀감으로 희희낙락하며 질풍노도의 호기심을 채워나갔던 사춘기 학생들….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필름이 한판 신 나게 돌고 돈다. 그렇게 늙은 영사기사의 꿈은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그랬던 것처럼, 동네 노천극장에서 다시 빛을 볼 수 있을까? 영화도시 부산은 스펙타클한 '영화의 전당'에서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거리에 흩뿌려져 있는 영화 같은 이야기들에서 만들어지는 일인 것을.

문재원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 교수(한국현대문학, 로컬리티 연구)

※공동기획 :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의인문학연구단, 국제신문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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