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부산은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일본과의 관계에서 두 가지로 나누어 최전선 역할을 했다. 그 하나는 평화적인 외교관계에 대한 임무를 수행하던 곳으로 동래부에서 관장하던 왜관(倭館)이었고, 또 하나는 혹시 있을지 모를 변란에 대비하여 일본에는 숨겨 놓고 무력억제 역할을 했던 경상좌수영이었다. 경상좌수영이 지금의 수영이다. 현재 수영구라는 행정구역 명칭은 옛 조선 시대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慶常左道水軍節度使營)에서 이어졌던 것이다. 부산의 여러 곳에는 수군 진영이 있었고, 경상좌수영은 이런 진들을 통솔하는 지휘본부로서 임무를 띠고 있었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이순신이 활약했던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 그러니까 통영(統營) 등이 재조명되고 복원사업에다 관련 축제까지 벌어지는 등 민·관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데 반해 경상좌수영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찾을 수 없다.
경상좌수영이 임진왜란 때 활약상이 전무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 아닐까. 심지어 당시 경상좌수사였던 박홍이라는 장수는 싸우기도 전에 배를 버리고 도망쳤다. 이는 지역의 자랑거리로 당당히 앞세우기에는 어두운 과거이다. 그러나 곱씹어 볼 것은 조선 정부의 경상좌수영의 무게감이다. 조선 세종 때 군선(軍船)의 비교를 통하여 살펴보면, 경상 285선(34%), 경기 97선(12%), 충청 142선(17%), 황해 41선(5%), 강원 17선(2%), 평안 41선(5%), 함길 41선(5%), 전라 165선(20%)이고 수군(水軍)도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많아 경상에는 군선과 거의 비례하여 33%인 1만6602명이였다.
수영구는 부산에서도 다른 지역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광안리 해변은 오랜 기간 시민의 좋은 휴식처로 자리매김했으며, 광안대교가 준공된 이후에는 화려한 경관으로 다른 지역 사람과 외국인 관광객들도 자주 찾는다. 관광의 중심지가 된 해변은 언제나 활기차다. 봄에 열리는 어방축제, 10월에 열리는 불꽃축제에는 인산인해를 이룬다.
모든 지역에 활기가 도는 것은 아니다. 내륙 쪽으로 들어가면 상대적으로 낙후된 곳이 많다. 그 중심에는 수영사적공원이 있다. 수영사적공원은 좌수사가 근무하던 집무처 뒤에 있는 작은 당산(堂山)을 중심으로 복원되었는데 그 규모가 작을 뿐 아니라 중요 관아들이 복원되지 않아 현재의 모습으로는 옛 위상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사적공원 내부의 콘텐츠 또한 좌수영에 집중되어 있다기보다는 수영구의 민속, 전통놀이, 안용복 장군에 대한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실상을 말하자면 안용복 장군은 좌수영에서 노를 젓던 군인 출신이라는 점을 빼면 별다른 관련성을 찾기 어렵다. 안용복 장군의 위상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의 주와 객이 전도되었다는 점이 문제다. 정작 현재의 모습에서 경상좌수영을 제대로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수영구에서는 2016년까지 관련 부지를 매입하고 이듬해부터 남문과 서문, 그 사이의 성벽과 누각 등을 복원한다고 한다. 도시홍보 효과는 제쳐두고라도 지역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의지에 찬동한다.
복원이 잘 이루어진다면 누구나 수영구의 기원과 역사 속에서의 정체성을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고 외형상 그럴듯하게 복원한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사료에 기반한 철저한 고증이 필요하다. 그러면 문화재의 외양 복원뿐만 아니라 다른 수영(水營)에는 없는 경상좌수영만의 콘텐츠를 연구·기획하는 일도 가능하다.
영국의 버킹엄 궁이나 서울 덕수궁과 광화문에는 수문 교대식이 있다. 그렇다면 수영에서는 수군 교대식을 매일 진행하면 좋을 터. 부산에서 수영사적공원은 해운대권과 남포동권, 서면·동래권 등과 두루 연결되는 위치에 있다. 이는 한국의 전통·민속 문화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좋은 입지 조건이다. 과거를 조명하여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경상좌수영이 된다면 부산의 보물이자 한국의 보물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권민수 한국민속문화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