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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한일 신 실크로드 <8> 통신사 그리고 우정

조선 사행원·日 유학자, 단 한번의 만남으로 백년지기 글벗이 되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7-01 19:33:05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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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가현 타카츠키초립 칸논노사토 역사민속자료관에 있는 홍세태 초상화. 이원식 '조선통신사'(민음사).
- 1682년 파견 30세 홍세태
- 46세 히토미 가쿠잔 만나
- 첫눈에 서로의 학식 인정
- 국적·나이 초월 친구 맺어

- 귀국 후에도 추억 못잊어
- 29년 뒤 다음 사절단 통해
- 히토미에 편지 보냈지만
- 이미 15년 전에 세상 등져
- 아들이 감사 뜻 담긴 답장

- 때론 외교갈등 긴장감 속 개인간의 아름다운 우정
- 한일우호 또다른 버팀목

■외교적 마찰의 뒷면에 싹튼 마음의 교류

"승려는 온정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아 뽕나무 밑에 3일 이상 머무르지 않는다"는 옛날 말이 있다. 다르게 말하면 한곳에 오래 있다 보면 정이 붙어 떠나기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1719년 통신사 제술관인 신유한은 사행록 '해유록'에서 "인정이 든 것이 뽕나무 밑에 3일 지낸 것과 같다"고 해서 교류를 맺은 일본인들에 대한 석별의 마음을 기록했다.

1719년 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몇 가지 논쟁이 있었다. 대마도에서 열린 시문 응수 자리에 대마도주가 입장할 때 통신사 일행이 일어나서 맞이하는 것이 '관례'라고 주장한 대마도 측에 대해 신유한이 통신사와 대마도주의 외교적 위상을 근거로 예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양쪽은 논쟁 끝에 대마도주가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또 대마도 측은 교토 대불사(大佛寺)에서 열리는 잔치에 참석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사신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원당이기 때문에 어렵다고 거절했다. 이에 대해 대마도주는 "대불사는 도요토미 가문이 아니라 도쿠가와 가문의 원당"이라고 설득했고 결국 정사와 부사는 잔치에 참석했다. 하지만 종사관은 끝까지 병을 이유로 가지 않았다.

이 같은 문제에서 신유한의 논쟁 상대는 대마도의 주자학자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였다. 논쟁 과정에서 신유한은 때로는 아메노모리를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조선, 일본, 대마도)의 입장을 먼저 생각한 것이었기에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한편 신유한은 일본의 걸출한 인물로 아메노모리를 높이 평가했다. 임무를 마치고 대마도에서 아메노모리와 이별 인사를 나눈 신유한은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으로 이야기하고 서로 나눈 정이 그리워서 헤어지기 어려웠다"고 하며 작별의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일본 여정에 수반한 승려 교쿠호 코우린(玉峰光燐)과의 이별을 슬퍼한 김세렴(1636년 통신사 부사), 석별의 정으로 눈물을 흘리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기록한 홍우제(1682년 통신사 역관), 국서 서식과 응접의례 변경 문제로 큰 논쟁을 벌인 1711년 통신사 정사 조태억과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가 그 학식을 마음껏 발휘해서 서로의 실력을 인정한 모습을 기록한 '강관필담(江關筆談)' 등 개인 사이의 사람다운 교류가 있었다.

■홍세태와 히토미 가쿠잔의 우정

   
일본 동북대학 도서관 가노문고에 소장돼 있는 '가쿠잔필담'.
이처럼 다양한 교류 중 여기서는 홍세태(1653~1725)와 히토미 가쿠잔(人見鶴山)의 우정이 넘치는 관계를 소개하고자 한다. 홍세태는 중인 신분이었으나 어릴 때부터 문재(文才)가 뛰어나 김창협, 김창흡을 비롯한 많은 문인, 사대부와 교류해서 그 학식을 높이 평가받았다. 또한 위항문학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졌다. 1682년 통신사 때 부사 이언강의 자제군관으로 일본을 방문해서 그 문재로 많은 일본 문사들과 시문을 주고받으면서 교류했다.

히토미 가쿠잔도 젊었을 때부터 학문의 재능을 인정받았던 에도시대 전기의 유명한 유학자이며 일본의 역사서 '본조통감(本朝通鑑)' 편찬 작업에서 중심 역할을 하기도 했다. 히토미는 1655년 통신사 방문 때에도 사행원들과 시문 창화를 했는데, 종사관 남용익은 히토미의 문학적 재능과 함께 그의 청명함과 공손한 태도를 높이 평가했다.

홍세태와 히토미의 교류는 히토미가 남긴 '가쿠잔필담(鶴山筆談)', '한객수구록(韓客手口錄)'에서 엿볼 수 있다. 그 교류 모습에는 외교적인 긴장에서 벗어난, 자유롭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두 사람의 교류가 있었던 곳은 에도의 혼세이지(本誓寺)라는 절이었다. 홍세태는 30세, 히토미는 46세 때의 일이었다. 이 자리에는 홍세태 외에도 제술관 성완과 서기 이담령 등도 있었다. 그들은 시문 창화 외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히토미는 1655년 통신사 삼사였던 조형 유창 남용익 등의 소식을 물어보기도 하고, 성균관의 제사와 인원, 일행이 쓰는 관과 갓, 옛날부터 일본에서 전해지고 있는 고마가쿠(高麗樂) 등에 대해 질문했다.

또한 눈이 좋지 않다고 한 성완에게 히토미는 자신이 사용하는 안경을 건네주고 잘 보인다면 선물로 주겠다고 했다. 성완은 안경을 콧마루에 껴서 글씨를 보지만 "가물가물해서 잘 안 보이네 그려"라고 웃으면서 대답해 흐뭇한 대화 분위기를 보여준다.

신사 일행의 숙소에는 히토미의 아들도 와 있었다. 홍세태는 "아드님은 정말 훌륭하다. 선생의 품격 있는 태도를 많이 보이고 있다. 앞으로 반드시 선생 가문의 명성을 이어나갈 것이니 선생은 행복한 사람이다"고 말한다. 두 번의 통신사와 교류하고 1655년 통신사 독축관 이명빈의 글이 쓰인 부채까지 가져와서 홍세태와 만났던 히토미이었기에 사신들이 자기 아들을 칭찬해 준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기뻤을 것이다. 그리고 이별의 날, 히토미는 홍세태에게 "천 리의 이별로 다시 만나기 어렵겠지만, 만일 통신사로 파견된다면 선생이 정사가 되어 올 수도 있을 것이다"고 해서 애달픈 이별의 마음과 미래의 재회에 대한 작은 희망을 말했다. 홍세태 역시 이별의 슬픔으로 얼굴을 붉히면서도 "건강하고 충효를 다하도록 노력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서로 손을 잡고 헤어졌다.

그러고 나서 29년이 지나 1711년 통신사가 일본에 파견되었다. 이때 홍세태는 히토미에 보내는 편지를 통신사행에 맡겼다. 거기에는 "선생과 헤어진 지 30년이 지났는데 무사히 있는지… 나와 선생은 이국에서 태어나 서로 만 리 떨어지고 산과 바다를 사이에 둔다. 그러나 이것은 바람이나 말 혹은 소가 닿지 못할 뿐, 이 마음은 오고 간다"(홍세태 '유하집', 일본의 野鶴山에게 보내는 편지)고 쓰여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 히토미와의 교류의 추억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히토미는 15년 전인 1696년에 세상을 떠났다. 홍세태의 편지는 히토미의 아들에게 전달되고 그가 홍세태에게 답장을 썼다. 이 아들이 홍세태가 히토미와의 교류 자리에서 총명함을 칭찬한 히토미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 후기 통신사는 12번 파견되었는데, 그 간격은 짧으면 8년, 길면 47년이나 되었다. 다음 통신사가 언제 다시 파견되는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역관과 같은 특수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통신사에 참가하는 것은 인생에서 한 번밖에 없는 기회였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 마음의 교류였으니 이별의 아픔과 친구에 대한 그리움은 각별했을 것이다.
   
국익이 우선시되는 외교에서는 마찰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전통적인 화이관념(華夷觀念)으로 서로의 문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상호인식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과 조선에는 양국의 마찰을 노골적인 대립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타협점을 찾아내려는 외교적 노력이 있었고 그 위에 평화적인 문화교류가 이루어지고 개인 간의 정이 넘치는 만남이 생겼다. 홍세태와 히토미의 교류 역시 그러한 양국의 외교 노력 위에 싹튼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우정, 그리고 그것을 지탱한 당시의 통신사 외교는 다양한 외교현안을 안고 있으면서도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려는 오늘날의 한일관계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생과 헤어진 지 30년이 지났는데 무사히 있는지…

나와 선생은 이국에서 태어나 서로 만 리 떨어지고 산과 바다를

사이에 둔다. 그러나 이것은 바람이나 말 혹은 소가 닿지 못할 뿐,

이 마음은 오고 간다"

- 홍세태가 히토미 가쿠잔에게 보낸 편지 중


오바타 미치히로 평택대 일본학과 교수

※공동기획: 부산문화재단, 조선통신사학회, 국제신문

※협찬: 한국수력원자력(주)고리원자력본부, YK Steel(주)

※후원: 누네빛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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