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라고 부르지만, 건축가로서는 '집 짓는 사람들'(호모 아키텍투스·Homo Architectus)이라고 부를 만하다. 인류는 연장을 사용하면서부터 어둡고 습한 동굴에서 나와 그 연장을 동원해 살 집을 스스로 짓기 시작했으며 그것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인류의 집 짓는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비바람 추위 짐승으로부터 안전할 필요에 따라 짓게 된 집은 시간의 흐름과 인류 의식의 발달에 얹혀 다양하게 변모했다. 급기야 근대 서구를 중심으로 인간 존재에 대한 자각이 생기면서 집과 건축물도 스스로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우뚝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게 됐다. 오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자태로 공간을 차지하는 이른바 '존재의 집'들이 유행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과 결과에도 절대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집과 건축물은 인간을 포함한 외부 환경과의 관계를 단절한 채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관계를 거세당한 집들이 갖는 자기 완결의 욕망은 대부분 헛것이다.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공급되는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으며, 관계를 거부한 자폐적 공간으로서의 건축물(집)은 이미 그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다.

30대 중반의 젊은 건축가 최우용의 신간 다시, 관계의 집으로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홀로 떨어진 '존재로서의 집'이 아닌 숨 쉬고 소통하는 '관계로서의 집'. 그는 다섯 가지 시선으로 건축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몽상가의 눈, 관찰자의 눈, 여행자의 눈, 소설가의 눈, 그리고 건축가의 눈이다. 사실 이 다섯 가지 시선은 큰 틀에서 모두 같은 시선이라 할 수 있다. 세상 속에 놓여 있는 집들과 그 집들이 세상과 맺고 있는 관계를 바라본다는 점에서 그렇다.

저자의 시선이 닿은 건축물과 집들은 국내외에 산재돼 있다. 뭍과 섬의 농경이 만들어낸 초가집에서부터 깊은 산사의 범종루와 기둥, 푸른 눈의 외국인 신부가 지은 제주 중산간 지역 테쉬폰 주택, 경북 경산의 상엿집, 빈민촌의 허름한 공부방과 도시의 낡은 콘크리트 아파트, 스스로 부르짖고 있는 랜드마크들의 허구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고 방대하다.

이 많은 건축 이야기에는 하나의 일관성이 있다. 잉여와 과장으로 포장된 건축물과 집들의 거만함에 대한 거부감이다. 김중미의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이 된 인천 동구 만석동 판잣집에 대한 그의 시선에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적 정서가 들어 있다.

"만석동의 판잣집에는 잉여와 과장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모진 가난의 최접점에서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장 값싼 재료를 그러모아 자신이 가진 최선의 기술을 동원해 최소한의 공간을 만들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먹어야 살 수 있는 밥처럼 어쩔 수 없이 잠을 자야 하는 집일뿐이었다. 그래서 용적률과 투기 개발이라는 용어가 들어간 초호화판 집들은 이 판잣집 앞에서 오히려 초라해진다."(괭이부리말에 스며든 집, 기찻길 옆 공부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