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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거가거가(巨歌巨街)가 뜬다 <4> 거가거가의 현재

부산의 '문화 뿌리' 찾아나선 길…너무 변해버린 모습에 고개 떨궈

문화행동, 다시 그리는 부산 문화역사지도

  • 김희국 기자 kukie@kookje.co.kr
  •  |   입력 : 2013-06-26 19:15:05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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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연극인 이윤택 씨와 부두연극단 이성규 대표가 문을 열었던 가마골 소극장이 있던 자리. 전통찻집과 모텔 간판이 보이는 건물 1층이었다.
- 김동리의 소설에 등장하는
- '밀다원' 자리엔 빵집 들어서

- 모텔과 전통찻집 간판 달린
- 가마골 소극장 옛 기억 새록

- '은하수를 아시나요' 공연했던
- 신신예식장 흔적도 다시 찾아

- 화랑가 유명했던 동광동 거리
- 식당 변한 '목마화랑' 등 추억

- 옛 美 문화원 앞선 탄식 절로
- "낮은 천고·리모델링 낯설어"

"오랜만에 나왔는데 정말 많이 변했다. 이제는 옛날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지난 24일 문화행동 회원들이 거가거가 답사에 나섰다. 기억 속 옛날 흔적을 직접 찾아 나서는 작업이었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대부분 60대 이상인 회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거가거가 일대를 누볐다. 예전 추억을 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회원들은 "너무 많이 변해 현재의 젊은 세대들은 과거의 모습을 전혀 모를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과거를 기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답사에는 회원 중 김동규, 신태범, 김문홍, 이성규, 문석봉 등이 참가했다.

■밀다원, 무아 음악실은 어디에

답사는 중구 광복동 옛 미화당백화점에서 시작했다. 미화당백화점은 쇼핑몰로 변해 옛 모습은 없어졌고 안내판만 남아 그 자리가 미화당 자리였다는 것을 알려줬다.

회원들은 창선치안센터에서 창선동 쪽으로 향했다. 100여 m쯤 가다 갑자기 신태범 씨가 멈췄다. 그리고 파리바게뜨 가게를 지목하며 '밀다원' 자리라고 설명했다. 곁에 섰던 김동규 전 경성대 교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김동리의 소설 '밀다원 시대'에 등장하는 밀다원은 2층 건물의 2층에 있었고 1층은 '문총'(한국문화예술총연합회)의 임시 사무실로 쓰였다. 또한 1층은 동사무소로도 사용됐다. 현재 건물은 8층 규모였으며 2층 건물 위로 증축한 것처럼 보였다.

과연 맞을까. 그동안 밀다원의 정확한 위치를 놓고 여러 가지 설이 제기됐다. 신 씨는 밀다원의 위치를 확신했다. 그는 "밀다원에서 시인이 자살해 1951년에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실제 시인이 죽은 후 없어진 곳은 스타다방이다. 밀다원은 환도 후까지 계속 영업을 했고 이후에는 왕비다방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방향을 돌려 광복동 쪽으로 걸었다. 용두산공원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회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우선 눈에 띈 것은 옛 가마골 소극장이 있었던 건물이다. 지금은 모텔과 전통찻집 간판이 붙어 있지만, 1986년 연극인 이윤택 씨와 부두연극단 이성규 대표가 1층에 가마골 소극장을 함께 열었다. 바로 인근 건물 3층은 무아 음악실이었다. 지금은 스포츠의류 판매장이 들어서 있었다.

옛 무아 음악실 자리에서 도로 맞은 편에는 옛 '신신예식장'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1966년 '은하수를 아시나요?'를 공연했던 김 교수가 감회어린 눈길로 신신예식장 자리를 지켜봤다. 김 교수는 다방을 대여하기 어려워 예식장을 이용한 것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낯선 흔적… "세월은 무심했다"

   
옛 밀다원으로 추정되는 건물 앞에 선 문화행동 회원들. 왼쪽부터 김문홍, 신태범, 이성규, 문석봉, 김동규 씨.
문화행동 회원들은 소극장 69운동의 중심지였던 르네상스 음악실의 현재 위치를 둘러봤다. 김문홍 씨는 "부산에서 클래식 음반을 가장 많이 보유했던 곳이 르네상스 음악실이었다. 불이 나서 다시 건물을 지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답사 중 이성규 대표와 문석봉 부산시립극단 예술감독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예전 다방에서는 달걀 프라이 반숙과 완숙을 팔았고 모닝커피에는 달걀노른자를 얹어줬다고 알려줬다. 당시 다방의 최고 히트 상품은 일명 '위티'라고 불렀던 위스키와 홍차를 섞은 술이었다.

회원들은 광복로에서 거가거가로 연결되는 동광동 거리를 찾았다. 그곳에는 예전 부산시립도서관이 있었고 무엇보다 화랑가로 유명했다. 신 씨는 한 식당을 지목하며 "저곳이 목마화랑 자리다. 부산에서 처음 문을 연 개인 화랑이었다. 운영은 임명수 시인과 부인이 함께했다"고 소개했다. 부산 공간화랑 신옥진 대표에 따르면 1975년 전후로 남도화랑, 부산 현대화랑, 목마화랑, 부산 공간화랑이 문을 열어 한때 동광동은 화랑가로 명성이 높았다. 동광동 거리에는 '문화사랑방'으로 유명했던 술집 강나루, 계림, 양산박 등이 아직 남아 있었다. 회원들은 그 앞에서 옛 추억에 젖어 기념 촬영을 하고 부산 근대역사관으로 향했다.

연극인들과 인연이 많았던 근대역사관(옛 미국 문화원)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천장을 낮췄다" "리모델링을 해서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특히 미 문화원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김 교수가 낯설어했다. 1960년대 미 문화원에서 연극 연습을 하고 세미나를 열었으며 1971년에는 머레이 시스갈의 '타이피스트' 공연까지 했던 김 교수는 완전히 변한 모습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공연을 주로 했던 2층을 찾아 올라간 뒤 벽을 두드려보고 기둥을 만지던 김 교수는 당시 공연을 하면서 만들었던 동선을 더듬었지만 바뀐 모습에 고개를 떨구었다.


# '흩어진 소극장 집적화'… 지역 문화부흥 첫걸음

부산문화회관이 생길 무렵 필자는 목요학술회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 부산 문화를 위해서는 큰 극장이 아니라, 도심 지역에 시설이 괜찮은 소극장의 집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 뒤 같은 발언을 계속해왔지만, 대형 문화시설을 선호하는 사람이 이런 의견을 들어줄 리가 없었다. 벌써 사반세기가 흘렀다.

1984년부터 1986년 사이 부산에는 지역극단이 운영하는 8개의 소극장이 생겨났다가 거의 동시에 문을 닫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민간 소극장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소극장 경영 경험과 연대의식이 부족했던 지역 연극의 현실은 그랬다. 특히 소극장들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던 탓에 관객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86년 이윤택 씨를 만나 광복로에 가마골 소극장을 개관했다. 가마골 소극장은 부산기술학교 1층(건물 구조로는 지하였지만 용두산 공원 올라가는 계단 밑에 있었기 때문에 1층이라 볼 수 있다)에 자리 잡았다. 그곳은 1960, 70년대 연극활동을 했던 지역이다. 당시 부산 연극인은 물론, 지역의 문인, 기자, 대학교수, 평론가, 무용인들이 모여들었다.

지금도 부산에는 20여 개의 소극장이 곳곳에 있으며, 부산소극장협의회가 결성돼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의 대학로처럼 일정한 곳에 집적되지 않아 관객이 찾아가기에 어려움이 많다.

대청로 거리에다 소극장을 집적한다면 우선 지나가는 사람이 극장 간판과 현수막을 보고 관심을 두다가 세월이 조금 지나면 "아! 거가 거가? (그곳이 그곳이가?)"하고 입소문을 탈 것이다. 그곳에 가면 연극이나 무용 등 마음에 드는 공연을 골라볼 수 있고, 공연 후에는 삼삼오오 모여 용두산 공원 또는 근대역사관을 구경할 수 있다.

   
'거가거가'처럼 역사가 있고 교통이 편하며 위락시설이 가까운 곳에 소극장이 집적된다면 많은 예술인도 몰려들 것이다. 그곳에서 서로 정보를 나누고 교류하고 크로스-오버가 이루어진다면 새로운 문화 기운이 생겨날 터. 공동 기획, 공동 티켓 마케팅, 공동 기술지원으로 경비도 줄일 수 있다.

대청로 '거가거가'는 중앙동 원도심창작공간 '또따또가'와 인접해 있다. '또따또가'는 '거가거가'의 문화 인큐베이팅 역할을 할 수 있다. 그곳에서 교육과 연구, 연습과 제작이 이루어지면 공연과 창작의 삼투압 작용이 일어나 부산 문화의 용광로가 될 것이 뻔하다. 북항에 들어설 오페라 하우스를 생각해 보아도 '거가거가' 공연 거리의 사전조성은 아주 중요하다.

우리 지역에 시급하고도 변화되어야 할 문화적 인식이 뭐냐고 한다면 "작은 것의 소중함과 지역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거가거가'는 소극장 집적을 통해 그러한 활동과 가치를 일깨우고 확산시킬 수 있으며 그것이 부산 문화부흥을 위한 첩경이다.

이성규 부두연극단 대표 겸 연출가

※취재후원:동아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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