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욱 '전사' 갤러리예동 제공

- 정희욱, 36년간 두상만 파고들어
- 작가 이건희, 한지로 '불통' 표현

갤러리예동(부산 해운대구 재송동)에서 2인전을 여는 조각가 정희욱(52) 씨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뚝심'이란 단어가 강하게 와 닿았다. 16세에 돌을 만지기 시작해 부산대 미술학과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한 것은 여느 조각가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36년간 오직 인간의 두상만을 파고들며 역사 속 조상의 원류를 찾아 나섰다. 팔, 다리, 몸통 등 다른 인체는 군더더기일 뿐 두상만이 '인간과 우주의 비밀을 푸는 열쇠'라고 믿고 우리의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아버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무구한 역사와 우주를 분석해 작품에 담았다. 무표정하게 바닥에 드러누워 있거나 선 두상 등 관람자의 눈에는 무섭게 보이기까지 하는 표정을 위해 그는 지금도 한 길만 걷고 있다.

"내 피 속에 있는 조상을 찾아 올라가는 작업이다. 작품을 통해 과연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갈 것이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싶다. 이 시대의 생각과 사고를 담은 자화상으로 봐 주면 좋겠다."

조각으로 표현한 인물은 우리 조상일 수도, 지금의 나일 수도 있기에 딱히 여성, 남성을 구분 짓지도, 특정 표정도 짓지 않는다. 단지 눈코입이 뚫린 진공상태로, 서늘하면서도 그 속에 깊게 빠져들게 하는 3차원의 공간이 느껴진다. 즐겨 쓰는 돌은 충남 보령에서 캐온 파라오절편석과 오석 등이다.

작가는 "5개의 구멍으로 모든 이야기를 만들어내기에 얼굴 안쪽을 모두 파냈다. 바닥에 있거나 서 있어도 작품들은 지금 우리와 같은 공기를 마시고 호흡하고 있다. 영혼과의 교감을 가능케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조각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6~7년 전 대구 전시에서부터다. 상업성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공모전이나 미술관 야외 조각작품 설치 등에서 만날 수 있던 그의 작품도 최근 2~3년 전부터 마니아층이 생겨났다. "인류의 근원을 표정으로 담아야 하기에 1년에 두세 작품만 제작할 수 있다. 조형물 작업 등을 통한 상업 행위는 오직 이 작업을 위한 부수적 수단이다. 시대가 바뀐 덕분인지 작가의 사고·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관람자들이 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작가인 이건희 씨는 한지를 배경으로 '불통의 시대'를 표현하고 있다. 디지털 매체가 발달하면서 종이의 기능은 물론 문자 체계까지 바뀐 지금의 시대상을 그림으로 풀어헤치는 'REBUS(글자조합 수수께끼)'로 담아냈다. 오는 29일까지. (051)781-5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