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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거가거가(巨歌巨街)가 뜬다 <3> 부산연극의 메카- 美문화원과 부일 프레스홀

변변한 무대 하나 없던 시절 극예술 길러낸 인큐베이터

문화행동, 다시 그리는 부산 문화역사지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6-19 19:36:18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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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김동규 전 경성대 교수가 연출하고 김승일, 정해숙이 출연해 미 문화원 2층 강당에서 공연했던 '타이피스트'의 모습. 특별한 무대 없이 관객 바로 앞에서 공연한 모습이 특이하다.
부산 연극의 메카를 꼽으라면 첫손가락으로 옛 부산 미국 문화원, 두 번째로 부일 프레스홀을 들 수 있다. 젊은 세대에게 미 문화원과 부일 프레스홀은 낯선 이름이다. 그만큼 두 곳은 오늘날 잊혔지만, 부산 연극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 반드시 기억해 내야 하는 공간이다. 특히 미 문화원은 부산 연극인들이 결코 잊을 수 없는 곳이다. 지금은 근대역사관으로 탈바꿈한 미 문화원 건물을 볼 때마다 연극인들은 화려했던 옛 기억을 더듬으면서 거가거가의 부활을 꿈꾼다.


# 부산 미국문화원

- 1960, 70년대 연극지원 앞장
- 세계연극계 동향 전해 주고 희곡·연습실·공연장소 제공
- 가난한 지역 예술인들에게 새로운 시선, 꿈과 희망 전달

■부산연극 뿌리 내릴 자양분 제공

미 문화원 건물은 1929년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지어져 1949년부터 미국 해외공보처 문화원으로 문을 열었다. 6·25전쟁 시기에는 미국 대사관으로 이용됐고 1960년대 미 공보원으로 불렸다가 1970년대부터 미 문화원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1999년 우리나라 정부에 반환돼 2003년부터 근대역사관으로 변신했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면 6·25전쟁 이후 폐허에서 다시 시작하게 됐을 때 부산 문화는 미 문화원에서 작은 불길을 지피기 시작했다. 예술가를 꿈꾸던 젊은 대학생들이 책을 통해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은 미 문화원 도서관이 유일한 장소였다. 또 미 문화원은 1970년대 문화활동, 특히 연극 분야에 적극 지원했다. 그래서 연극은 미 문화원, 영화는 한발 늦게 출발한 프랑스 문화원이 강세였다.

이처럼 미 문화원은 부산 연극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엄청난 영양분을 공급했다. 희곡 작품을 제공하고 연습장과 공연장으로 속살을 내줬다. 하지만 1982년 발생한 방화 사건으로 문화 활동이 어렵게 된 점은 지금 생각해도 아쉽다.

우선 미 문화원에서는 희곡작품 2편을 부산 연극에 제공했다. 하나는 1971년 필자가 공동 번역에 참여해 저작권법에 따라 회수당 공연료까지 원작자에게 지불한 '타이피스트'(머레이 시스갈 작, 김동규 연출)이고 또 하나는 1976년 극단 전위무대가 한국에서 첫선을 보인 '알고 난 뒤의 충격'(R. 앤더슨 작, 전성환 연출)이다.

이는 당시 미 문화원 부원장이었던 정연수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타이피스트'를 번역할 때 필자를 불러 회사원들이 쓰는 때 묻은 용어로 작품을 다듬자고 제안했던 번역자였고 이 작품을 대구, 제주로 순회공연시킨 기획자였다.

미 문화원은 부산 연극인과 대학생들에게 연습실을 제공했고 천장이 높은 2층 강당을 공연 장소로 선뜻 내주었다.

1966년 필자가 부산에서 처음으로 연출한 '은하수를 아시나요'(K. 비트링거 작)는 중구 광복동 신신예식장에서 3일간 공연했는데 그에 앞서 3개월 이상 미 문화원 연습실에서 작품을 다듬었다. 또 1971년 작품 '타이피스트' 역시 미 문화원에서 연습하고 문화원 2층 강당에서 공연했다. 그 밖에 필자가 속했던 원형극장 창립공연 '연인 안나'(1974년)도 연습실은 미 문화원이었다. 부산 연극인 상당수가 미 문화원 연습실이라는 보금자리에서 꿈을 키웠다.

■ 예술가 꿈을 키운 도서관

   
미 문화원 도서관에는 미술 음악 사진 디자인 연극 영화 관련 서적과 잡지 등이 소장돼 있었다. 필자는 연극전문 잡지 'TDR(The Drama Review)'을 통해 유명한 공연들을 접하면서 꿈을 키우고 강의에 도움을 받았다. 또 도서관은 16㎜ 필름이나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당시 세계 연극계에 불고 있던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신체극을 소개했다.

미 문화원은 1972년과 1976년 한국연극협회 부산지부와 함께 두 번의 세미나를 공동으로 개최했는데 부원장이 직접 참여했다. 첫 번째 세미나 주제는 '현대 미국 연극'이었고 두 번째 세미나에서는 필자가 '미국 연극에 기여한 미국 연출가'에 대해 발표했다.

예전 미 문화원을 중심으로 중구 대청동 중앙동 광복동 일대는 가난하고 서글픈 부산 예술인들에게 새로운 탐색을 향한 꿈과 희망을 심어준 보금자리였다. 1960,70년대의 애환을 잊거나 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시원한 천장을 인위적으로 막아 만든 근대역사관의 지금 모습은 못내 아쉽다. 한국은행 부산본부 건물도 소극장 몇 개는 족히 들어설 수 있는 훌륭한 극장 터다.

이제 동아대 부민캠퍼스와 임시수도기념관에서 부평시장, 국제시장, 책방골목, 근대역사관, 한국은행, 40계단 그리고 대청로와 북항의 부산오페라하우스까지 한 축으로 아우르고 연계하는 문화단지를 조성할 큰 그림을 그릴 때가 됐다. 지금은 전처럼 문화가 없다고 탓하기에 앞서 문화융성을 위한 텃밭을 어떻게 일굴까를 다 같이 궁리하고 고민할 때다.

김동규 전 경성대 교수


# 부일 프레스홀

- 1963년 개관 뒤 10년 동안
- 전성환 허영길 김영송 등 쟁쟁한 배우·연출가들이 부산 연극사 중요작품 공연
- 대학연극 중흥기 이끌기도

   
문화행동 회원들이 현재 근대역사관으로 바뀐 옛 미 문화원 건물의 내부를 둘러보고 있는 장면이다. 김동규 교수 제공
부산 중구 중앙동 광혜병원 옆 부산일보 옛 사옥 4층에 있었던 '부일 프레스홀'은 1963년 문을 열어 1973년 문을 닫을 때까지 10여 년 동안 부산연극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가마골 소극장이 중앙동 시절인 1988년부터 1997년까지 10여 년 동안 한국 연극 태풍의 눈으로 폭풍 성장을 한 것도 아마 이웃에 있었던 부일 프레스홀의 연극적 기운에 힘입은 바가 컸다.

극단 전위무대가 1963년 창단하고 1964년 7월 28일부터 30일까지 제1회 공연인 '불모지'(차범석 작, 채동근 연출)를 공연한 곳이 바로 부일 프레스홀이었다. 전위무대는 그 여세를 몰아 1965년에도 제2회와 제3회 공연인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와 '햇빛 속의 건포도'를 그곳에서 잇달아 공연했다.

현재 부산 연극계의 원로 배우 전성환은 2회 공연에 출연했고, 전성환과 고등학교 동창인 연출가 허영길은 3회 공연에서 출연하기도 했다. 부산연극협회의 합동공연인 '토끼와 포수'도 이곳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극단 전위무대의 단골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그때 두 사람의 나이는 푸릇푸릇한 20대 중반으로 가슴속에 연극적 열정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필자는 1965년 11월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생애 처음으로 그곳에서 소극장동인의 '달빛을 살해하라'(김동민 연출)와 '잘못 걸렸습니다'(장고웅 연출)를 관극했다.

   
1973년 시민회관 소극장이 개관하기 전까지 부일 프레스홀에서 부산 연극사에 기록될 만한 중요 작품들이 공연했다. 그곳은 예식장으로 임대하여 운영되기는 했지만, 여타 예식장보다 천장이 높았고 무대도 비교적 넓었다. 부산 연극사에서 획기적인 업적으로 기록되는 '소극장 69' 활동도 이곳과 연관있다. 김영송을 주축으로 한 '소극장 69'는 창단(1969년)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2년 동안 12개 작품을 공연할 만큼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 창단 공연이 '출발'이었는데 마지막 공연 역시 같은 작품이었다. 두 작품 모두 김영송이 연출했고, 마지막 작품은 부일 프레스홀에서 공연되었는데 전성환과 방성진이 출연하여 열연했다.

김동규는 그의 저서 '부산연극사'(1997)에서 1960년대 중반 무렵의 부일 프레스홀 시대부터 대학연극이 중흥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동아대와 수산대의 극예술연구회가 재건된 것도 이 무렵이었고, 이주홍의 '탈선춘향전'이 대학극의 단골 레퍼토리로 등장한 것도 '부일 프레스홀 시대'였다.

이제 대청로 일대와 부일 프레스홀, 가마골 소극장이 있었던 중앙동이 부산 연극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은 떠나고 없지만, 그 당시를 호흡하던 연극인들의 혼이 아직도 살아남아 연극적 열정을 데우고 있기 때문이다.

김문홍 극작가 겸 연극평론가

※취재후원:동아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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