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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거가거가(巨歌巨街)가 뜬다 <2> 과거여행- 대한민국 문화의 중심지

6·25 피란수도 부산의 다방, 문화예술을 녹여낸 용광로였다

문화행동, 다시 그리는 부산 문화역사지도

  • 김희국 기자 kukie@kookje.co.kr
  •  |   입력 : 2013-06-12 19:28:10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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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부산다방 내부. '부산, 1950's' 수록. 임응식 사진집
- 전문 전시·공연장 없던 시대
- 전란에 지친 예술인 사랑방
- 거리서 지인 만나면 인사가
- "요새는 어느 다방 나가시오"

- 차 한잔을 마시며 시를 쓰고
- 미술전시 음악·춤·연극공연
- 무대 좁아 때론 출연자 추락

- 예식장·음악감상실 등도
- 부산연극 발전 견인 큰 역할

"정부를 따라 모든 기관이 부산에 집중되어 있다. 이것을 노려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이 부산의 다방이다. 부산거리 어느 골목에 다방없는 골목이 없다.…한잔의 茶代만 지출할 수 있는 이면 모두 다 다방의 반가운 손님이 되려니와 어느 다방을 둘어보아도 각계각층 인사들이 오유월 뒷간에 구덕이처럼 법석대고 있다.…나같은 위인도 거리에서 간혹 지인을 만나면 으래히 "요새 어느 다방 나가시오?" 하는 것이다."(본지 1953년 5월 27일 자)

■그 시대 다방은 종합문화 공간

   
1952,3년 동광동 뷔엔나다방(오른쪽) 모습. '부산, 1950's' 수록. 김한근 제공.
1950년 6·25전쟁이 터지면서 부산은 피란민들로 들끓었다. 당시 20만 명 정도의 도시였던 부산으로 100만 명의 피란민이 몰려들었다. 그해 8월부터 임시수도가 된 부산은 당연히 한국의 정치·사회·교육·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각지의 문인, 음악가, 화가 등 예술인들도 부산으로 모였다. 그들이 삼삼오오 모이며 둥지를 튼 곳이 다방이었다. 이때부터 부산 광복동, 남포동 일대에는 20여 곳의 다방이 불을 밝히기 시작해 1970년대까지 쉽게 꺼지지 않고 이어졌다. 당시 문화예술인들이 즐겨 찾았던 다방은 밀다원과 스타, 금강, 춘추, 녹원, 청구, 루네쌍스, 망향, 비원 등이었다. 그 가운데 문인은 밀다원과 금강, 음악인은 스타, 비원, 미술가들은 망향 등 주로 모이는 장소가 달랐다. 이렇게 형성된 다방문화는 소설가 김동리가 1955년 발표한 단편소설 '밀다원시대'에 오롯이 담겨 있다. 비원다방은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아버지 손에 이끌려 청음훈련을 받으며 미래의 꿈을 키웠으며, 작곡가 윤용하가 가곡 '보리밭'을 만든 곳이기도 하다. 옛 창선파출소 옆 골목에 있었던 망향다방은 화가 이중섭이 돈이 없어 못으로 담뱃갑 은박지 그림을 그렸던 곳(금강다방이라는 설도 있음)으로 알려졌다.

다방이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은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요즘처럼 오디오 보급이 대중화되지 못했던 시절 클래식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시설을 갖춘 곳이 다방이었다. 또 지금처럼 전문 공연장이나 전시장이 전혀 없었던 시대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여러모로 활용이 가능한 다방을 이용해 시 낭송회, 시화전, 서화 전시회, 실내악 연주, 연극 공연 등이 이뤄졌다. 심지어 일부 다방은 일 년 내내 시화전이나 그림 전시회를 열었다. 한마디로 다방은 종합 문화 공간이었다.

■다방·예식장서 꿈을 일군 연극

부산 연극은 해방 후와 6·25전쟁 시기 전후에는 활동이 미미했다. 1960년대부터 부산 연극이 본격적인 기지개를 켜는데 원로 연극인 김동규 전 경성대 교수는 이 시기를 '탐색기'로 표현했다. 원로 연극인들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당시에는 요즘 같은 전문 공연장이 없었기 때문에 다방이나 음악감상실, 예식장 등에서 주로 공연했다. 그 대부분이 거가거가 주위에 포진해 있었다. 간혹 합동 공연 등 규모가 큰 공연은 부산극장 등에서 올렸지만, 예외적인 경우였다.

김 교수가 쓴 '부산연극사'를 보면 이 시기 연극이 열렸던 다방이나 음악감상실은 다촌다실과 신신예식장, 르네상스 음악실, 무아 음악실, 카페데아뜨르 등이 대표적이었다. 당시는 대부분 장소가 협소해 출연 배우가 적거나 아니면 일인다역을 소화하면서 공연을 해 '살롱 드라마'가 유행하기도 했다. 이중 르네상스 음악실은 1969년 시작한 '소극장69'의 중심지였고 무아 음악실에서는 1973년 이윤택 연출가가 작품을 공연한 적이 있다.

눈여겨볼 곳은 신신예식장이다. 1966년 김 교수는 그곳에서 '은하수를 아시나요?'를 공연했다. 예식장이라는 장소뿐만 아니라 2명이 16인 역을 한 공연으로 유명했는데 김 교수는 "다방을 구할 수 없어 예식장에서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예식장 역시 전문 공연장이 아니기 때문에 불편했지만, 그나마 공연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연극인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

부산 연극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장소가 있다. 바로 대청로에 있었던 미국 문화공보원이다.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와 오석근 부산영상위원장 등 부산 영화인들이 꿈을 키운 곳이 프랑스문화원이었다면, 미 공보원은 부산 연극 발전을 견인해온 산실이자 메카였다. 그리고 1973년 부산시민회관 개관으로 본격적인 전문 공연 전시장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징검다리 역할을 한 곳은 1963년 문을 연 부일 프레스홀이었다. 미 공보원과 부일 프레스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순서에서 자세하게 다룬다.

거가거가의 영화는 부산시민회관 개관과 함께 내리막 길을 걸었다. 시민회관으로 공연이 몰렸고 이후 1982년 가톨릭센터, 1984년 부두 소극장, 1986년 가마골 소극장 등이 문을 열면서 본격적인 소극장 시대가 시작됐으며 부산 전역으로 소극장이 퍼져 나갔다.


# 허기에 지친 이들을 위한 '거가거가'를 꿈꾸며

광복동과 남포동 거리를 나설 때면 나는 늘 쏟아지는 회상의 소나기에 몸이 흠뻑 젖곤 한다. 어느 다방에선가 새어나온 에디트 피아프의 애절한 목소리가 낙엽이 되어 보도 위로 도르르 구른다. 저만큼 낮술에 절어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낯익은 시인을, 혹은 화가를 마주칠 듯도 하다. 또 다른 음악실에서는 모차르트의 호른 협주곡이 감미롭게 흘러올 것만 같다. 한 사내가 맨손으로 지휘 흉내를 내며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때는 그랬다. 반세기 전 광복동 남포동 일대는 좌우로 한 집 건너 다방이었다. 음악실이었다. 다방과 음악실에서 음악을 듣고 시를 쓰고 낭송하였으며, 그림 서예 사진의 전시회를 했으며, 살롱드라마를 공연하고 실내악을 연주했다. 무용도 공연했다. 대한미전(국전)을 광복동의 여러 다방에 분산하여 열기도 했다. 전후의 혼란스럽고 곤비한 삶 속에서도 다방과 음악실은 그렇게 많은 사람의 정서적 갈증을 풀고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마음의 녹지대였다.

   
지금 같은 전문 공연 전시장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대형 공연과 연주회는 부산극장, 시공관. 문화극장 등 영화관을 이용했다. 때로는 초등학교 강당을 빌리기도 했다. 1962년인가, 어렵게 모국을 방문한 안익태 선생 지휘의 부산합동오케스트라 연주회가 화랑초등학교 강당에서 열렸다. 한꺼번에 몰려든 인파 사이를 용케도 헤치고 들어가 들었던, 그때 연주회의 감동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뛴다.

그리고 소형무대가 마련된 아폴로 음악실에서 처음 접했던 살롱드라마 머레이 시스갈의 '루브'와, 퍼포먼스에 가까웠던 김향촌의 발레공연도 기억에 생생하다. 무대가 너무 작아 출연자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코미디도 빚어지곤 했다.

정말 그랬었다. 광복동 남포동 대청동 일대는 부산 공연·전시예술의 심장부였다. 그곳은 발을 들여놓는 순간 공기부터가 다르게 느껴졌다. 음악과 시와 그림과 연극이 그 속에 녹아있는 것 같았다. 그곳은 내가 제대 후, 닥치는 대로 발품을 팔았던 막장의 삶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내일을 꿈꾼 위안처였다.

나와 비슷한 연대의 많은 사람은 그곳에서 찢긴 마음의 상처를 달래며, 시련과 고통의 갱도 속에서도 삶의 참된 가치를 채굴하려 애썼다고 믿는다. 내가 새삼 '거가거가' 조성을 주창하는 연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오늘의 풍요 속에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때의 나처럼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가. 그들에게 꿈을 심어주자! 신태범·소설가 겸 극작가

※취재후원:동아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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