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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문학기행 <29> '박재삼 문학제' 열린 삼천포

서러운 삼천포 소년이 해질녘 강에서 본 것은 타들어가는 울음

  •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  |   입력 : 2013-06-11 18:59:14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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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참가자들이 지난 9일 경남 사천시 창선·삼천포대교 앞 수변공원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승렬 기자
- 한국 현대시의 거목을 기리는
- 박재삼문학제

- 이 축제가 열릴 곳이
- 삼천포 말고 또 있을까

- 전국서 찾아든
- 수많은 문학인과
- 애호가들은
- 박 시인의 고향에서
- 마음껏 그를 그리워했다

1995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삼천포시와 사천군이 합쳐져 경남 사천시가 된 이후로 '삼천포'라는 지명은 사라졌다. 그래도 삼천포는 여전히 삼천포. 시인 박재삼(1933~1997)은 바로 이곳 삼천포가 낳은 한국 현대시의 '큰별'이다. 일제강점기 부모가 머물던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지만, 곧바로 '고향' 삼천포로 돌아와 사람 냄새, 갯내음을 맡으며 성장했다. 가난에 찌들린 생활 속에서 등록금이 없어 중학교 진학을 못하게 됐다는 것을 알고 집 뒤 노산 끝자락 바위에 걸터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던 소년이었다.

박재삼 시인. 그는 6·25전쟁 직후 모윤숙 서정주 유치환 등 당대 최고 반열의 시인들로부터 추천을 받아 화려하게 한국 시단에 등장했다. 20세기 중반 한국 사회가 치러낸 모진 갈등과 큰 변화의 내면세계를 독특한 문법과 언어로 그려냄으로써 서정미학의 새 길을 뚫어 삶과 문학을 소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는 시를 썼고, 말소리와 말뜻을 조화시킨 오묘한 운율을 만들어 서민의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한 시인으로 잘 알려졌다.

이런 시인을 기리며 사천시에서는 1998년부터 매년 그의 생가가 있던 삼천포 노산공원에서 박재삼 문학제를 열고 있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 두고' 영원히 하늘의 별이 된 6월 8일을 전후해 열리는 이 문학제에 문학기행 팀이 찾아갔다.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3일간 열린 박재삼 문학제는 올해로 16회 째다.

■누구도 미워하지 않았던 '착한 사람"

지난 8일 문학기행 참가자 30여 명이 삼천포 노산공원 아래에 도착했을 때 1961년 은방울자매가 노래한 '삼천포 아가씨'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비 내리는 삼천포에 부산 배는 떠나간다, 어린 나를 울려 놓고 떠나가는 내 님이여, 이제 가면 오실 날자, 일 년이요 이 년이요, 돌아와요 네~, 돌아와요 네~, 삼천포 내 고향으로"라는 가사를 흥얼거리며 야트막한 언덕 같은 노산 마루에 오르니 2008년 문을 연 박재삼 문학관 앞마당에 문학제가 한창이다.

박재삼 문학상 심사위원장인 김광규 시인이 "박재삼 시인이 살아 계셨다면 지금도 그 선한 웃음을 날리며 후배 동료와 바둑을 두거나 술잔을 기울이실 텐데…. 그 그리움이 사무친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를 티끌만큼도 흉보거나 욕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시인은 그의 시 세계만큼이나 순수했던 무골호인 무법호인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시인의 말처럼 박재삼 시인은 스스로 누구를 미워해 본 일이 없고, 다른 그 누구도 박 시인을 미워하지 않는 말 그대로 '착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대표 시 중 하나인 1959년 2월 '사상계' 발표작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읊조리는 마음이 더 애틋하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전문


시인은 이 시에서 노을이 붉게 타는 가을 강의 숨 막히는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그를 통해 삶과 서러움을 하나의 정화된 의미로서, 그리고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그의 소탈하면서도 착했던 삶과 시가 맞닿아 있음을 깨닫는다.

■삼천포 대표 문화 콘텐츠로 부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6년. 어느새 시인 박재삼은 고향 삼천포를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로 부활했다. 그의 삶과 문학 세계를 기리기 위한 문학제에 사천시는 물론이고, 특히 삼천포 주민이 너와 내가 따로 없다는 생각으로 한마음이 된다. 비록 연근해 수산업의 쇠퇴로 삼천포항의 경기는 예전만 못하지만, 시인의 기일에 맞춰 열리는 문학제 때마다 서울 경기 대구 강원 충청 제주 부산 등에서 수백 명의 시인과 문학인들이 삼천포를 찾기 때문에 이들을 대접하는 일에 주민이 부지런을 떤다. 시인의 생전 18번 곡은 '울려고 내가 왔던가'로 시작되는 '선창'이었다고 한다.

삼천포를 상징하는 산인 와룡산(801m) 끝자락 바닷가에 볼록 솟은 노산은 해발 100m도 되지 않는 낮은 언덕이지만, 이곳에서는 창선·삼천포대교와 바다 건너 남해섬, 삼천포항의 선창 등이 한 눈에 바라뵈는 천혜의 조망처다. 박 시인은 이 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시심을 단련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자주 머물던 자리에 조성된 시비에 역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천년의 바람'이 새겨져 있다.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 년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박재삼 시인의 탄생 80주년에다 시단 진출 60주년을 기념하며 열린 올해 박재삼 문학제를 지역 문인, 주민과 함께 준비한 김경 시인(박재삼문학선양회장)은 "선생은 시 속에 고향을 담아 노래함으로써 삼천포의 향기를 문학의 향기로 승화시킨 분"이라며 "시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시인의 문학과 삶, 애향심을 기리고 있다"고 말했다. 1박 2일로 진행된 이번 문학기행에서 참가자들은 염무웅 문학평론가의 문학강연 참가, 조명군총 및 선진리성 답사 등도 겸하며 삼천포의 역사와 문학의 향기를 음미했다.

이런 가운데 제2회 박재삼 문학상 시상식에서 지난해 펴낸 시집 '뿔을 적시며'로 수상자가 된 이상국(67) 시인은 부산에서 온 문학기행 참가자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이들이 건넨 시집에 일일이 서명도 해주면서 "꼭 속초로 문학기행을 와 달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이번 문학상 수상 시집 '뿔을 적시며'는 이 시인이 2005년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이후 7년 만에 낸 여섯 번째 시집이다.

이 시인은 "강원도 속초에서 백담사 만해마을까지 8년 동안 거의 매일 미시령 고개를 넘어다니면서 사회적 관심에서 점차 가까운 주변으로 관심이 옮겨진 결과인데, 오히려 독자에게는 더 정감있게 다가서지 않았나 싶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시인 박재삼은

   
▷1933년 4월10일 일본 도쿄에서 출생,

▷1953년 시 '강물에서'가 모윤숙에 의해 '문예'에 추천됨

▷1955년 서정주가 시 '정적'을, 유치환이 시조 '섭리'를 현대문학에 추천

▷1955~1964년 월간 현대문학 기자

▷1964년 월간 바둑 편집장

▷1965~1968년 대한일보 기자

▷1969~1972년 삼성출판사 편집부장

▷1994년 한국시인협회 기획위원장

▷1997년 6월 8일 사망

▷수상 경력=현대문학 신인상(1957), 한국시인협회상(1977), 노산문학상(1982), 한국문학작가상(1983), 중앙시조대상(1986), 제2회 평화문학상(1987)

▷시집=춘향이 마음(1965), 햇빛 속에서(1970), 천년의 바람(1975), 어린 것들 옆에서(1976), 추억에서(1983), 아득하면 되리라(1984), 내 사랑은(1985), 대관령 근처(1985), 찬란한 미지수(1986), 바다 위 별들이 하는 짓, 박재삼 시집, 사랑이여,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이상 1987), 다시 그리움으로(1996),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고(1997) 등 15권

▷수필집=울밑에 선 봉선화(1986), 아름다운 삶의 무늬(1987), 슬픔과 허무의 그 바다(1989) 등 10권


▶주최=롯데백화점·부산문화연구회

▶특별후원=국제신문

▶참가문의=http://문학기행.kr (051)441-0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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