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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필담 '양동필어'를 남긴 니와 테이키(丹羽貞機, 1691-1756)가 백과사전 '서물류찬(庶物類纂)'을 저술하는 데 큰 학문적 영향을 끼친 박물학자 가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 1630-1714)의 동상.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그의 묘소에 있다. |
- 의학·의술지식·임상치료 경험 등
- 한문으로 묻고 답하고 정보 교류
- '의원필담집'사행 후 곧바로 출간
- 때로는 양국 옷차림·풍속 비교 등
- 신변잡기 내용까지 꼼꼼하게 담아
- 당시 필담 집필·참여 일본 의원들
- 대부분 日 의학사에 큰 족적 남겨
- 통신사 의원필담 26종 40책 현존
■의원필담-동아시아 의학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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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신사들이 일본 본토에 상륙하기 전에 들렀던 중간 기착지 섬 아이노시마((相島)에 남아 있는 조선통신사 객관 터. 김형태 교수 제공 |
조선은 1607년(선조 40)부터 1811년(순조 11)까지 200여 년간 12회에 걸쳐 일본의 요청으로 통신사를 파견했다. 많은 사람이 흔히 일본인의 특성을 호기심과 호학(好學)으로 규정한다. 통신사에 관한 일본인의 관심과 기대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실제 당시 많은 일본인이 공식·비공식적으로 조선 측 인사들을 만나려 애썼고 기회를 잡아 교류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일본인에 의해 남겨진 필담창화집(筆談唱和集)이며, 이는 과거 통신사를 통한 조일 양국의 교류 테제였던 '성신교린(誠信交隣)'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역사적 기록물이다. 이 가운데 두 나라 의원들이 대화의 주체로 등장하는 텍스트들이 의원필담(醫員筆談)이다. 이들은 주로 문답(問答)의 방식을 가지고 소통했는데, 주로 일본 의원이 묻고 조선 측 인사가 답변을 진행했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시문(詩文)을 서로 주고받으며 각 나라의 문화적 역량을 가늠해보기도 했다. 즉, 자신의 의견을 짧은 시간에 한문으로 정리해 상호 의견을 교환했을 뿐만 아니라, 문사들의 만남에도 참여해 시문으로 의견을 교류한 흔적이 필담창화집 곳곳에 남아 있다.
의원필담의 내용은 당시 병증(病症)과 치험례(治驗例), 본초(本草)나 물명(物名) 관련 정체성 규명, 양국의 풍속, 각종 제도, 지리(地理) 등 다방면에 걸친 것이다. 그만큼 의원필담은 당대 동아시아 문화지형도(文化地形圖) 구성상 그 가치가 결코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의사의 소임은 '제생지도(濟生之道)'에 있다. 당시 일본에 파견했던 조선통신사 중 양의(良醫)와 의원들의 마음가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들을 만나 필담을 나누었던 일본 측 의원들도 역시 그러했다. 통신사 의원필담의 문화사적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의원필담을 통해 같은 직업을 가진 외부인의 객관적 시각으로 당시 조선 의원들 및 수행원들의 정체성과 사고방식을 비교적 소상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의원들의 꼼꼼한 기록 비교를 통해 당대 동아시아 의학의 경향을 확인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일본 최고 의원들이 조선 의원 상대
현존하는 통신사 의원필담은 대략 26종 40책이다. 이 중에는 의학 관련 내용이 적고, 수행원들과 나눈 창화(唱和)가 주를 이루는 텍스트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 경우에도 대부분 양국의 의원들이 필담의 주체로 등장해 서로 박물학적 지식을 교환하고 있기 때문에 의원필담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당시 일본에서 통신사에 관한 관심이 대단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필담집은 사행 직후에 필사나 간본의 형태로 대도시에서 즉시 출간되었다. 특히 1748년 무진(戊辰) 사행에는 해당 연도에만 12종의 의원필담집이 출간될 만큼 일본 내에서 통신사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출간 선후 관계는 현재 명확히 파악할 수 없으나, 간본과 필사본이 함께 존재하는 경우나 동일 제하(題下)의 필사본이 존재하는 경우도 이와 같은 인기를 입증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주목할 부분은 당시 파견된 최고의 조선 의료진에 맞선 일본 측의 대응이다. '선사필담'과 '한객필담' 등을 남긴 타치바나 겐쿤(橘元勳)은 당시 상약국(尙藥局)에 소속된 태의령(太醫令)으로서 궁중에서 의약의 일을 맡아 임금·왕비·왕녀·여관(女官) 등이 사용할 약을 조제해 치료하는 중책을 책임지고 있었다. 또한 '양동필어'를 남긴 니와 테이키(丹羽貞機, 1691-1756)는 1721년 요절(夭折)한 의사 하야시 료키(林良喜)의 뒤를 이어 의관(醫官) 고노 쇼앙(河野松庵)과 함께 30년간 조선의 약재(藥材) 조사를 했던 의관이자 에도(江湖)시대 중기 대표적 본초학자이다. 또한 그는 가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 1630-1714)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박물학적 전통을 이어받아 유서(類書)인 '서물류찬(庶物類纂)' 1054권을 1747년에 완성한 박물학자이기도 했다. 이들 사실을 통해 당시 일본 막부(幕府)가 최고에 최고로 맞대응함으로써 조선에 뒤처지지 않음은 물론, 통신사 초빙의 기회를 자료 조사 등에 적극 활용하려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1719년 '상한창화훈지집'의 저자 기타오 슌린(北尾春倫)은 1713년 '상한의담'의 저자 기타오 슌포(北尾春圃, 1658-1741)의 차남(次男)으로서 '상한의담'에는 서문(序文)을 남겼고, 두 번의 사행에 모두 참여함으로써 그 관심이 대를 이어 지속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그 외 필담에 참여했거나 의원필담집을 남긴 나머지 일본 의원들도 대부분 일본 의학사에 일정한 족적(足跡)을 남긴 인물들이다.
■순수 의학 필담과 박물학 관련 필담
의원필담은 그 내용에 따라 '순수 의학 관련 필담'과 '박물학 관련 필담'으로 대별할 수 있다. 순수 의학 관련 필담의 내용은 주로 의학 및 의술 지식 교환, 의론(醫論)과 치험례 관련 문답 등이다. 즉, 이는 양국 의원을 중심으로 진행된 의학적 담화 내용만을 본격적으로 정리한 필담집이기 때문에 양국 의원의 치험례 정리 및 확인으로부터 의론(醫論) 강화를 통한 각 시기 의학적 관심사의 변천 흐름을 잘 보여주는 자료이다.
박물학 관련 필담의 내용은 신변잡기적인 내용까지 빠짐없이 기록하여 현장감이라는 필담의 성격을 보다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약물과 병증 중심의 의학 관련 필담을 포함한 박물학적 내용 위주로 구성되어 있고, 시문은 의원들과 관련된 작품들만 수록함으로써 기록성은 물론 의원필담의 독자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이외에도 의원필담 내용 중에는 풍속과 관련해 양국의 물명 및 관(冠)을 비롯한 복식(服飾)이나 지리(地理) 문제, 양국 도량형(度量衡) 비교에 관한 관심이 주요 화제로 등장함은 시종일관 마찬가지이다.
# 통신사 '의원필담' 사료, 의학적 내용뿐만 아니라 사상적 교류 흔적도 풍부
- 의학·풍속사 연구 '보물'
조선은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년간 12차에 걸쳐 일본에 통신사(通信使)를 파견했고, 이를 매개로 일본과 폭넓은 교류를 했으며, 그 사행은 1682년 임술(壬戌)통신사부터 본격적인 문화사절단 역할도 수행했다.
일본 막부는 통신사가 올 때마다 수준 높은 조선 의원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두 나라가 내건 외교상의 기치(旗幟)는 '성신교린(誠信交隣)'이었는데, 그 사행(使行)에 문사(文士)는 물론, 당시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였던 의원(醫員)들도 포함되었다. 바로 그 교류의 흔적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편린(片鱗)이 18세기 의원필담(醫員筆談) 자료이다. 그들은 정해진 시간 안에 평소 궁금했던 많은 정보와 의견을 교환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의원필담에는 당시 가장 절박했던 의학적 문제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자료적 가치도 높다. 하지만 이 기록들은 일본인이 한문(漢文)으로 기록한 것이고, 전문적 의학 관련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간 세간(世間)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또한 그 내용에는 단순히 의학적 정보뿐만 아니라, 시문(詩文)을 통한 사상적 교류의 흔적도 담겨있기 때문에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당대(當代) 삶의 체취를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통신사 의원필담을 바탕으로 당시 조선과 일본의 폭넓은 생활상을 확인함으로써 동아시아 풍속사(風俗史)를 재구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문화콘텐츠에 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그 안에 탑재할 소프트웨어에 관한 연구는 매우 적은 듯하다. 동아시아의 풍부한 인문학적 고전에서 아이디어를 찾고, 이를 잘 활용해서 현대적으로 다듬는다면 둘도 없는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동아시아 전통사회를 관류하던 문화와 풍습에서 훌륭한 문화사적 소재를 찾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통신사 의원필담은 무궁한 가능성을 지닌 소재의 보고(寶庫)라 하겠다. 아울러 최근 학계에서 그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는 학제 간 융합이나 통섭과 관련해서도 진정한 융합의 영역을 개척하는 시금석(試金石)이 될 수 있다. 바로 통신사 의원필담은 학문적 통섭의 방법을 알고 있다.
김형태 경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공동기획: 부산문화재단, 조선통신사학회, 국제신문
※협찬: 한국수력원자력(주)고리원자력본부, YK Steel(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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