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품 제작 활동에서 희열을 느끼는 작품이 있다. 작품 과정에서 진중함 없는 것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외형이 코카콜라 병보다 절구통의 오목한 몸통보다 더 아름답다. 머리는 사람 머리처럼 뭉텅하지만, 그 아래로 타고 흐르는 몸체는 여성의 허리처럼 잘록하게 섬세한 곡선에서 오는 작업은 감탄이다. 두 가지를 뻗어 나오는 다리는 여성 다리 그 자체다. 이 부분의 작품 과정은 조심스럽고도 섬세해야 한다. 이는 디딜방아(그림)다.
우리나라 디딜방아는 두 번의 변천 과정이 있었다. 한 번은 손에서 발로, 또 한 번은 외다리에서 두 다리로 변천한 것이다. 디딜방아는 손으로 공이를 사용하던 절구가 재창조돼 발로 밟아서 곡식을 찧거나 빻는 농기구다. 디딜방아 부분 명칭이 방아 틀, 방앗공이, 방아다리, 볼씨, 쌀개, 방아 확, 방아를 쓰지 않을 때 방아 틀을 고이는 괴밑대, 방아를 당기거나 손을 잡는 방아 줄, 디딤 대가 있다.
디딜방아 찧기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 고구려 영양왕 때의 온달장군 고사 중에서 공주 말에 '한 말의 곡식도 찧어서 함께 먹을 수 있고 한 자의 베도 기워서 같이 입을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이후 기록은 고려사에도 나온다. 고려 시대 '방아노래'가 조선 초기의 악보인 '시용향악보'(들커덩 소리 나는 방아지만…)에 나오고 판소리 심청가(어유와 방아요~), 춘향가에는 춘향을 방아확에, 이몽룡을 방아 공이에 비교하여 성적 유희를 담는다. 우리나라 디딜방아에는 다른 나라보다 소중한 의미를 더 많이 가지고 있고 인간과 밀착되어 전해졌고, 사람처럼 인식하는 생명체로 대해 왔던 것이다.
디딜방아 관련 속담이 30개가 넘는다. 방아를 신체 구조에 견주어 방아머리, 방아허리, 방아다리, 방아가랑이라 하였고, 행위적 요소도 코방아, 입방아, 엉덩방아, 붓방아도 있다. 무덤의 그림에도 디딜방아가 나오는데 안악3호 무덤, 약수리 무덤, 마선구 1호 무덤, 요동성 무덤, 평양 역전무덤이 그것이고 우리의 풍속도도 세계 각 지역에 있는데 미국 클리블랜드 박물관(10폭 병풍이고 18세기 작품), 대영박물관, 영국 도서관, 프랑스 국립 기메동양박물관,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 빈 민속박물관 등에 있다.
디딜방아는 사람의 왕래가 빈번하거나 삼거리 등에 동방으로 놓는다. 디딜방아는 정월 보름에 여자의 피묻은 속곳을 입혀 거꾸로 세워두기도 했다. 주술성이 있기 때문이고 이러한 운반이나 세우는 과정 등이 놀이화와 오락성이 가미되곤 했다. 여러 사람의 먹거리를 제공하면서 정보와 문화양식이 녹아있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디딜방아가 찧어지는 양식은 우리나라의 디딜방아는 다리가 두 개라는 것이 가장 큰 특징과 관련이 있다. 혼자가 아니라 두 사람 이상 힘의 균형과 동작의 조화로 방아공이가 깊은 방아확에서 출발해 일상의 지평 끝을 벗어나 공간을 지나면서 우주로 가서는 중력의 힘으로 깊은 방아확으로 순식간에 내려치며 인간의 양식거리를 찧는다. 디딜방아 작업자는 대부분 여성이지만, 디딜방아 자체의 작업기구로는 남성의 역할 즉, 공이가 달린 디딜방아는 돌확을 행하여 남성의 힘센 역할을 해 댄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양다리 디딜방아는 외다리의 외국 디딜방아에서 법고창신 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최근 협성문화재단이 부산시민공원에 30억 원짜리 조형물을 기부하려 했지만, 부산시 조형물심의위원회가 작품성이 낮다는 판정을 내려 설치를 '거부'했다고 한다.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작품은 흉물이 될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함은 물론이다. 지금 세대는 물론 후세가 어울려서 오랜 세월 즐길 곳인 부산시민공원 상징 조형물은 일본이 그곳에 경마장을 만들기 전의 역사적·장소적 의미와 부산시의 미래지향적인 의미도 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조상의 지혜로운 생활습속 용구에서도 아이디어에 착안해 우리 땅에 우리 상징물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권민수 한국민속문화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