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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자본주의 <4> 바다로 간 사람들, 땅으로 간 사람들-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 ①

로빈슨 크루소는 '모험가' 아닌 '자본가의 원형'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5-22 20:49:16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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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디포. 지금은 작가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실은 18세기 전반 영국의 사회경제적 변화에 관한 여러 편의 보고서를 발표한, 애덤 스미스 이전의 초기 경제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 크루소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일렀다
- 모험은 관두고 중간층의 삶을 살라고

- 이 '중간층'이란
- 사치에 젖은 신흥대지주도
- 가난한 소작농도 아닌
- 자기 땅을 경작하는 자영농 '요맨'을 뜻했다
- 이들은 후에 자본가라 불리는
- 새로운 계급으로 진화한다

수많은 농민들이 대대로 삶의 터전이 되어 온 토지로부터 내쫓기던 '유토피아'의 시대는 동시에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 1469~1524)가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발견한 시대이기도 하다. 왜 그들은 목숨을 걸고 거칠고 먼 바다로 나갔을까? 명성(Glory)과 복음(Gospel)도 그런 이유들 가운데 하나일 수 있겠지만, 역시 황금(Gold)을 얻고자 하는 동기가 아니라면 다른 무슨 이유가 있었겠는가. 신대륙과 신항로의 발견 이후 금은보화와 동양의 진귀한 상품들을 찾아 항해에 나서는 사람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이들을 모험상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들의 항해가 말 그대로 목숨을 건 모험이었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 항해에 성공하면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운이 나쁘면 폭풍을 만나 난파하거나 재산은 물론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위험이 뒤따랐다. 그런데도 일확천금의 유혹은 수많은 모험상인들을 먼 바다로 나가게 만들었다. 요크에 살던 선원 로빈슨 크루소도 그렇게 성공의 꿈을 안고 항해를 떠난 모험상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대니얼 디포(Daniel Defoe, 1660~1731)는 매뉴팩처 시대 영국의 언론인이자 경제학자이다. 오늘날에는 어린이용 문학작품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의 작품 '요크의 선원 로빈슨 크루소의 생애와 이상하고 놀라운 모험(The Life and Strange Surprising Adventures of Robinson Crusoe of York, 1719)'은 자본주의로 발전하는 과정에 있던 영국 사회의 변화를 비유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디포가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과연 로빈슨 크루소의 항해와 놀라운 모험담이었을까? 실은 정반대로 디포는 그러한 모험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행위인가를 이야기한다. 로빈슨이 항해에 나서려 하자 그의 부친은 "배를 타는 모험을 감행하는 자들은 아주 가망 없는 팔자를 타고 났거나 아니면 월등하게 팔자가 넉넉한 사람들로서, 투기 심리로 모험을 통해 팔자를 고치거나 아니면 남들이 하지 못하는 비범한 일을 해서 유명해지려는 경우들"이라고 비판한다. 그 대신 부친은 로빈슨에게 중간층의 삶을 살라고 훈계한다. 여기서 중간층이란 지주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 사람들이다.

   
이상화된 요맨의 모습. 19세기 미국에서 널리 선전되던 포스터이다.
봉건사회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던 당시의 영국에서는 봉건사회의 기본계급인 영주와 예속농민 이외의 새로운 계급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하나는 젠트리(gentry)라 불리는 신흥지주계급으로, 작위를 가진 귀족은 아니지만 대규모로 토지를 소유함으로써 농촌사회의 실력자로 행세하던 사람들이다. 로빈슨의 부친은 이런 지주들을 오만, 사치, 야심, 시기심 따위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라고 비난한다. 두 번째 새로운 계급은 노동자들이다. 엔클로저 운동 때문에 토지로부터 추방된 농민들 가운데 일부는 그 당시 막 발전하고 있던 매뉴팩처에 취업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농업노동자로서 실업자와 임금노동자의 중간 정도의 처지에 놓여 있었다. 로빈슨의 부친은 이들을 궁핍함과 역경과 고된 노역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요컨대 상류계급과 하층민들의 삶은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부친이 로빈슨에게 권한 것은 중간계층 또는 평범한 서민층 가운데 상류계층이라고 할 만한 삶이다. 그 당시의 영국에서는 요맨(yeoman)이라고 불리던 독립자영농민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요맨은 자신의 땅에서 농사지어 그 생산물을 자신이 소유한다는 점에서 봉건적인 예속농민과 달랐다. 또 자신의 땅에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농사짓게 하지 않으니 영주나 지주와도 그 지위가 달랐다. 그래서 독립자영농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몇 번의 항해에서 난파와 표류, 심지어 포로로 잡혀 노예가 되는 등의 고생을 하고서도 다시 바다로 나갔다가 결국 구사일생으로 혼자 무인도에 상륙한 로빈슨이, 섬에 정착하기로 결심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주거할 집을 짓고 그 주위에 울타리를 친 일이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왜 울타리가 필요할까? 당시의 영국 농촌에서는 대규모의 농업경영을 위한 울타리치기, 즉 두 번째 엔클로저 운동이 막 일어나고 있을 때이다. 로빈슨을 통해 디포는 그러한 농촌의 모습을 비유하고자 했던 것이다. 로빈슨이 무인도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일도 자영농민인 요맨을 상징한다. 모험상인을 꿈꾸던 로빈슨 크루소는 드디어 일확천금의 꿈을 버리고 건실한 중간계층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토머스 게인즈버러(Thomas Gainsborough, 1727~1788)의 '앤드류씨 부부(Mr. & Mrs Andrews)'. 당시 영국 농촌사회의 실력자이던 젠트리 부부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우리가 자본가라고 부르는 새로운 계급은 상인이 아니라 요맨들 가운데서 출현하였다. 봉건영주나 지주들의 통제로부터 독립적으로 자기경영을 실천해 갔다는 점에서 보면 요맨은 최초의 근대적이고 합리적인 경영자들이라고 불릴 만하다. 무인도에 정착한 로빈슨에게 가장 소중한 자산은 화약이었다. 화약이 없으면 사냥도 할 수 없고 불도 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로빈슨은 이처럼 소중한 화약을 100여 개의 주머니에 나눠 담아 따로 보관한다. 현대의 경영 용어를 빌면 바로 위험분산의 원리를 실천한 것이다. 로빈슨은 자신의 인생을 부기장의 차변과 대변처럼 행운과 불행으로 나눠 적는다. 로빈슨이 회계의 원리를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로빈슨이 매일의 활동을 일기로 적는 것도 근대적 경영자의 모습 그대로이다. 이처럼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은 산업혁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던 당시의 영국 사회에서, 농민으로부터 경영자로 성장하는 요맨들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던 것이다.


# 로빈슨 크루소와 근대 경제학

- 경제학자들이 상정한 가장 이상적인 '경제인'

   
몇 해 전 남미의 칠레와 가까운 바다에서 로빈슨 크루소가 살았던 섬이 발견되어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던 일이 있다. 로빈슨 이야기는 지어낸 허구인데 어떻게? 하고 의아해 할 독자도 있겠지만,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은 실은 알렉산더 셀커크(Alexander Selkirk, 1676~1721)라는 선원의 실제 표류기를 바탕으로 쓰인 작품이다. 경제학은 흔히 '로빈슨 크루소의 학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경제학 교과서에는 로빈스 크루소가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물론 때로는 프라이데이도 함께. 경제학에서는 경제주체들을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고 부른다. 경제학이 가정하는 합리적 개인 즉 호모 에코노미쿠스에 가장 가까운 모델이 바로 로빈슨 크루소이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를 비롯한 경제학의 아버지들이 생각한 경제인도 이러한 유형의 인간형을 의미한다.

   
그런데 경제학자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로빈슨 크루소의 학문이라는 말은 흔히 경제학의 한계를 비난하는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마치 무인도에 떨어진 로빈슨이 문명사회로부터 고립된 채 혼자 살 듯이, 경제학이 묘사하는 세계가 현실과 지나치게 다르다는 뜻이다. 그러나 무인도에서 혼자 살기는 했지만 로빈슨이 반드시 문명사회와 전혀 단절된 생활을 했던 것은 아니다. 로빈슨은 문명사회에서 배우고 익힌 여러 가지 지식과 기술들을 이용하였다. 경제학 교과서 속에서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마치 혼자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이유는, 그 한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합리적이라고 가정한다. 그래서 한 사람의 행동만 설명하면 모든 사람의 행동이 똑같이 설명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조준현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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