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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와리 명소 그림'에 등장하는 필담 그림. 1764년 조선통신사 숙소에서 통신사 일행과 일본 유학자들이 시 교류를 하는 모습을 그렸다. 허경진 교수 제공 |
# 조선 측 공식 외교문서
- '통신사등록' '증정교린지' 등
- 출발~귀환 연·월·일순 기록
# 일본 측 공식 외교문서
- 대마종가문서의 '신사기록' 등
- 각 번서 접대한 내용 상세히 담아
# 조선 측 민간교류 기록
- 일본 다녀온 뒤 작성한 '사행록'
- 공식 보고서 아닌 사적 기행문
# 일본 측 민간교류 기록
- 조선학자와 나눈 '필담창화집'
- 동아시아 문화교류 볼 수 있어
사행 때마다 약 500명에 달하는 대규모의 사행인원이 국가 공식사절로 파견됨에 따라 다양한 기록이 남았다. 조선통신사는 국가 간 공적 교류를 담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직접 일본인과 접촉하는 가운데 민간교류적인 성격도 띠었다. 따라서 같은 시기에 조선과 일본이 각기 기록을 남겼다. 양국의 정부가 작성한 기록이 있는가 하면, 통신사 외교에 참가한 사람이 남긴 사행록이나 필담집도 있다. 이를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이렇게 분류된 기록들은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외국 도서관에도 상당수 흩어져 있다. 필담창화집을 예로 들면 미국 하버드대에 15종, 러시아 동방학연구소에 7종이 소장되었으며, 사행록들도 흩어져 있다. 대마종가문서의 '신사기록(信使記錄)' 또한 국내외에 흩어져 있으므로 얼마나 많은 기록이 어떻게 흩어져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등재 준비의 첫걸음이다.
■조선 측 공식 외교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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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쿠오카의 유학자 타케다 사다나오가
1711년 통신사 일행이 아이노시마에서 머무는 동안 기록한 창화집인 '아이노시마 창화필어' 표지(왼쪽)와 본문. |
조선 후기 정부의 외교문서로는 '통문관지(通文館志)'·'변례집요(邊例集要)'·'동문휘고(同文彙考)'·'증정교린지(增正交隣志)'·'통신사등록' 등이 있는데, 이들 모두 통신사와 관련된 자료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통신사등록'에 문위역관(問慰譯官)의 파견·통신사 요청·통신사절목(通信使節目) 마련·통신사 및 종사관 금단절목(禁斷節目)·증여할 예단물목·서계·통신사와 수행원들의 인적사항 등 통신사 파견 사유 발생부터 귀환 후 마무리까지의 여러 사항이 계미통신사(1643년)부터 신미통신사(1811년)까지 연·월·일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자료는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어 쉽게 이용할 수 있지만, 아직 번역되지는 않았다.
■일본 측 공식 외교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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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담집 '한객인상필어'에 실린 정사 조엄 초상. |
통신사 기록으로서의 대마종가문서(對馬宗家文書)는 대마도 행정문서 가운데 통신사 관련 기록인 '신사기록(信使記錄)'을 가리킨다. 현재 대마종가문서는 한국의 국사편찬위원회를 비롯하여 일본의 게이오대학 도서관, 도쿄국립박물관, 쓰시마시에 소재한 나가사키 현립 쓰시마역사민속자료관(對馬歷史民俗資料館), 일본 국회도서관, 도쿄대학 사료편찬소 등 여러 군데 분산되어 있다.
한국과 일본의 여러 기관에 분산 소장된 대마종가문서의 '신사기록'을 한데 모으는 작업이 시도되었다.(田代和生 감수, '對馬宗家文書 第Ⅰ期 朝鮮通信使記錄 別冊 上·中·下', 일본 도쿄 : ゆまに書房, 1998~2000). 그러나 이 필름에는 쓰시마 역사민속자료관의 자료는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종합적인 통신사 연구를 위해서는 이곳에 소장되어 있는 '신사기록'에 대한 추가 조사 수집이 반드시 필요하다. 358책, 매수로는 약 5만 매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통신사는 대마도의 호행(護行) 하에 에도까지 다녀왔다. 이때 통신사 기착지 및 숙박지에 속한 번(藩)이 2000여 명에 이르는 일행에게 숙식 및 여행 수단을 제공하였다. 각 번에서 통신사를 접대한 기록 가운데 필자가 파악한 것은 히로시마번의 '조선통신사내빙기(朝鮮通信使來聘記)', 후쿠오카번의 통신사 기록, '조선신사내조귀범관록(朝鮮信使來朝歸帆官錄)', '보력물어(寶曆物語)', 히토미 가쿠잔(人見鶴山)의 일기, 다케다 슌안(竹田春庵)의 일기, '진도일기(津島日記)' 등이다.
■조선 측 민간교류 기록 : 사행록과 필담창화집
통신사 기록 가운데 또 하나의 일차사료가 통신사행원들이 일본사행을 다녀온 뒤에 작성한 사행록이다. 일본사행록은 통신사의 공식적인 보고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동기에 의해 사적으로 쓴 기행문이다. 통신사행의 사행록류를 총칭하여 '해행총재(海行摠載)'라고 하는데 영조대 이래 몇 차례에 걸쳐 수집 간행되었으며,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28책으로 소장되어 있다. 그런데 '해행총재'에 수록되지 않은 사행록이 이원식과 하우봉, 정성일, 구지현 교수 등에 의해 추가로 발굴 소개되었다. 필자가 현재까지 국내외에서 '해행총재' 이외로 수집한 사행록은 1607년 종사군관 장희춘(蔣希春)이 기록한 '해동기(海東記)'부터 1811년 서기 김선신(金善臣)이 기록한 '청산도유록(淸山島遊錄)'까지 24종, 원문 110만 자이다.
■일본 측 민간교류 기록 : 필담창화집
통신사 일행이 쓰시마에 도착해 에도까지 왕복하는 동안 일본의 각 분야 전문지식인들이 숙소에 찾아와 전문지식에 관해 필담을 나누거나 한시를 창화하였다. 필담창화집을 보면 일본 학자들이 조선 학자들에게서 기대한 것이 무엇인지, 조선의 바깥세상이 어떻게 변화되어가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중국과 일본의 공식적인 외교가 단절된 17세기부터 19세기 전반까지, 200여 년간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실체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필자가 2008년 7월부터 2011년 6월까지 3년 동안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받아 정리한 필담창화집은 모두 178책인데, 200자 원고지로 원문 1만5000매, 번역 4만5000매에 이른다.
3년 동안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사찰이나 신사(神祠), 또는 개인들이 소장해 기존에 소개되지 않았던 필담창화집 80여 종을 파악하였다. 원문으로 1만5770면, 100만 자 이상의 필담창화집을 새로 발견했는데, 이 자료의 번역을 지원해줄 기관을 찾고 있다.
# 세계기록유산 등재 시기, 한일수교 50돌 2015년 적절
우리나라는 '훈민정음'(1997)부터 '일성록'(2011)까지 아홉 가지 세계기록유산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 못지않게 중요한 기록이 통신사 기록이어서, 필자는 10여 년 전부터 한국과 중국은 물론 미국이나 러시아까지 찾아다니며 수집, 정리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통신사 기록이 여러 면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확신하게 되어, 외교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도서관을 찾아다니며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 달라고 제안하였다.
무슨 일이건 다른 준비가 다 되었더라도 시기가 적절해야 이루어진다. 국내적으로는 우선순위에 있던 아홉 가지 기록이 모두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으므로, 이제는 통신사 기록이 등재될 순서가 되었다. 시기적으로는 2015년이 한일수교 50주년이 되는 해이므로, 올해 두 나라가 공동으로 신청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래서 지난해 8월 8일에 유종현 (전)대사와 함께 외교부를 방문하여 한일수교 50주년 기념사업으로 통신사 기록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을 주관해 달라고 부탁하였으며, 주무부서인 문화외교국도 긍정적으로 반응하였다. 그러나 이틀 뒤에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면서 한일 외교의 분위기가 냉각되어, 공동 신청의 분위기가 조성되기 어려웠다.
외교부에서는 올해도 공동 신청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공공외교정책과 주관으로 지난 4월 4일에 '조선통신사 세계기록유산 등재 검토를 위한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했는데 등재 필요성에 대해서는 참석자 대부분이 긍정적으로 발언했지만, 일부 참석자는 시기가 적절치 않다고 걱정했다. 그러자 부산지역에서 참석한 박화진 부경대 교수, 차재근 부산문화재단 문예진흥실장 등이 부산문화재단이 10여 년 동안 진행해 왔던 한일 민간교류의 성과를 예로 들면서, "이런 때일수록 오히려 세계기록유산 공동 신청을 통해서 성신(誠信) 교린(交隣)의 통신사 분위기를 회복해야 한다"고 설득하였다. 한일 외교가 냉각될수록, 통신사 기록의 공동 등재가 필요한 것이다.
허경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공동기획: 부산문화재단, 조선통신사학회, 국제신문
※협찬: 한국수력원자력(주)고리원자력본부, YK Steel(주)
※후원: 누네빛안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