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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자본주의 <3>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사치하라-좀바르트 '사랑과 사치의 자본주의'

십자군 전쟁은 어떻게 자본주의의 태동에 기여했나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5-15 19:50:11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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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춘부들을 데리고 나온 뚜쟁이'를 그린 18세기 영국의 풍속화(작가 미상). 이 시대 사회상을 그린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 삽화이다.
자본주의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 누구인가는 분명하지 않다. 아마 그 시대의 많은 학자들이 오랫동안 비슷한 용어들을 섞어 쓰다가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라는 용어로 정리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누가 그 말을 처음 썼는지는 모르지만, 그 용어가 지금처럼 보편적으로 사용된 데 가장 중요한 계기가 독일의 역사학파 경제학자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 1863~1941)가 쓴 10권의 대작 '근대 자본주의(Der Moderne Kapitalismus)'라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 거대한 자본은 어디에서 왔을까

   
베르너 좀바르트. 경제이론과 역사의 통합을 추구했으며, 근대 자본주의의 형성을 유형학적으로 탐구했다.
자본주의가 어디로부터 왔는가는 수많은 경제학자와 역사학자들의 오랜 토론거리였다. '유토피아'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어떤 이들은 토지로부터 추방된 농민들이 노동자계급이 되고 토지라는 생산수단을 자기 수중에 집중시킨 농업경영자들이 자본가계급이 됨으로써 자본주의가 탄생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이런 설명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였다.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이 거대한 부와 돈과 상품은 모두 어디서 왔는가가 그들을 궁금하게 했기 때문이다. 좀바르트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좀바르트는 자본주의가 농촌이 아니라 도시에서, 농업이 아니라 상업에서, 건전하고 성실한 생산활동이 아니라 사치와 향락에 찬 소비생활에서 왔다고 생각하였다. 자본주의라고 하면 대개의 사람들은 거대한 규모의 돈과 상품이 집적된 사회를 생각한다. 상품이 자본주의의 육체를 구성하는 세포라면, 돈은 그 육체를 순환하는 혈액이다. 그런데 이 거대한 부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난 것일까? 중세의 농민들은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거의 화폐를 사용할 일이 없었다. 영주들이라고 하더라도 시골에서는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돈과 상품을 찾기 위해서는 다른 공간을 찾아보아야 옳겠다. 바로 도시와 해외의 영토들이 그것이다.

16세기 이후 유럽에서는 인구가 수십만 명에 이르는 대도시들이 나타난다. 대도시의 인구가 수백만, 심지어는 1000만 명을 넘는 요즘의 기준으로는 조금 놀라운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16세기 이전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인 파리의 인구는 겨우 10만 명을 넘길 뿐이었다. 그러나 17세기에 오면 유럽에서 10만 명 이상의 도시는 13~14개로 늘어났고, 18세기 말에는 런던과 파리처럼 인구가 100만 명을 넘는 대도시가 나타났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도시가 생산활동의 중심지이다. 그러나 농업 중심의 중세 사회에서는 농촌이 생산활동의 중심지였고, 도시는 소비와 향락의 공간이었다. 대도시가 그만한 규모를 유지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거대한 소비자집단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왕실과 귀족, 고관들 그리고 성직자들이 바로 그 소비자들이었다.

우리가 아는 중세 사회는 절제와 검약을 미덕으로 하는 경건한 신앙심의 사회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처럼 거대한 사치와 향락이 만연하게 된 것일까? 좀바르트는 이러한 변화가 바로 십자군 전쟁(1096~1270)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십자군 전쟁은 교황 우르바누스 2세(Urbanus II, 1042~1099)가 유럽 여러 나라의 왕과 제후들에게 성지탈환을 위한 출병을 호소하면서 시작되었다. 원정은 모두 8차에 걸쳐서 일어났지만, 성지탈환이라는 원래의 목적에 비추어 본다면 제1차 원정에서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예루살렘 왕국을 수립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후의 원정은 모두 실패하였다. 제2차 원정에서부터 이미 종교적 열정은 사라지고, 상업상의 이익이 보다 중요한 동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좀바르트의 '사랑과 사치의 자본주의(Luxus und Kapitalismus, 1922)'는 십자군 전쟁이 유럽 사회에 미친 영향을 남녀관계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해석하고, 그것이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사회체제가 출현하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 세속적 사랑에는 돈이 필요했다

   
프랑수와 부세의 '쥬피터와 칼리스토'. 이 시대 화가들은 신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다. 신화는 그림의 외설스러운 내용을 포장하기에 적당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유럽은 이탈리아의 몇몇 도시들을 제외하면 외부세계와 거의 아무런 교류도 없는 폐쇄적인 사회였다. 그런 유럽인들에게 훨씬 높은 수준의 문화와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동방세계와의 만남은 거대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십자군 전쟁은 유럽인들이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윤리적 태도를 크게 변화시켰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사랑의 세속화'였다. 십자군 전쟁 이전에는 사랑이라고 하면 예의를 아는 기사와 고결한 숙녀 사이의 지고지순한 정신적 교류를 의미하였다. 육체를 드러내는 일, 정욕을 표현하는 일, 쾌락을 얻고자 유혹하는 일들은 모두 사랑이 아니라 도덕적 타락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유럽인들은 사랑을 정신이 아니라 육체의 문제로, 고결함이 아니라 쾌락의 추구로 세속화시켰다.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인간의 벌거벗은 육체를 그렸다. 인간 본연의 정신을 탐구하고자 했던 르네상스는 다른 한편 인간 본연의 육체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였다. 여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은 곧 여체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으로 번져갔다. 이른바 고귀한 신분의 신사들은 서로 여성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하여 경쟁하였다.

사랑의 경쟁에는 당연히 돈이 들었다. 신사들은 여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값비싼 보석과 외국에서 수입한 귀한 재화들을 바쳐야 했다. 부인을 둔 신사들과 남편을 둔 숙녀들은 경쟁적으로 혼외정사를 벌였다. 어느 신분 높은 신사와 역시 신분 높은 부인이 나눈 편지에는 사랑의 밀어 대신 간통의 대가로 얼마를 받을 것인가 하는 흥정이 오갔다. 사랑이 사치를 부르고, 사치는 돈과 상품의 풍요를 가져왔고, 그렇게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사회가 점점 무르익어 갔다.

이처럼 르네상스에서 산업혁명에 이르는 16~18세기는 사랑과 사치의 시대였으며 욕정과 타락의 시대였다. 그런데 이것이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유는 왜일까?


# 좀바르트의 '유대인과 경제생활'

- 현대 자본주의의 씨앗 뿌린 유대인의 경제활동과 관념

   
십자군 전쟁 이후 유럽의 여러 도시들은 지중해 무역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경쟁하였다. 그 가운데 가장 치열하게 경쟁을 벌인 도시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피렌체였다. 그런데 당시 베네치아의 상업과 금융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것은 바로 유대인들이었다. 오늘날 로스차일드 가문이 세계 금융을 지배하고 있듯이 말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이 유대인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좀바르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막스 베버(Max Wewber, 1864~1920)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20)'에서 프로테스탄티즘 특히 칼뱅주의가 자본주의 정신의 기원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좀바르트는 '유대인과 경제생활(1911)'이라는 책에서 기독교 이전에 또는 유대교의 윤리와 정신이 근대 자본주의를 형성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은 왜 그토록 미움과 경멸을 받았을까? 그 이유는 그의 인간성이 특별히 사악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중세에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죄인 취급을 받았다. 예수님을 배신하고 고발한 자들이라는 이유로 기독교 세계에서는 언제나 배척의 대상이었다. 유대인이 배척받은 또다른 이유는 교회가 금지한 고리대금업을 했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가 언급한 칼뱅교와 좀바르트의 유대교의 공통점은 이 두 종교가 당시 유럽 사회에서 드물게 이자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젊어서는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았던 좀바르트가 말년에는 민족사회주의에 기울어 나치즘에 동조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조준현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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