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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자본주의 <2> 땅으로부터 추방된 사람들-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②

500년 전 인문학자가 사유재산의 철폐를 외치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5-08 20:30:55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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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1년 일어난 대규모 농민 반란인 와트 타일러의 난. 이 난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존 볼은 "아담이 밭을 갈고 이브가 베를 짤 때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있었느냐?"는 말로 신분제도와 착취가 없는 이상 사회에 대한 영국 농민들의 염원을 표출하였다.
- 르네상스 인문학 양대산맥
- 토마스 모어와 에라스무스

- 모어, 노동에 천착한 혁명적 지성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를 통해 그리고자 했던 이상 사회는 과연 어떤 사회일까? 모어가 묘사한 유토피아는 신분의 차별과 경제적 착취 없이 모든 사람이 똑같이 노동하여 똑같이 분배받는 사회이다. 특히 모어는 현실에서 전개되는 모든 악행의 근원을 사유재산제도에서 찾았다. 사유재산제도가 있고 모든 것이 돈으로 평가받는 사회에서는 정의가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어는 "사유재산제도가 완전히 폐지되지 않는 한 재화의 공정한 분배는 있을 수 없으며, 인류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선량한 사람들이 빈곤을 피할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모어가 생각한 이상사회의 첫 번째 조건은 모든 생산수단이 공유되고, 분배가 평등한 사회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상사회는 모어 개인만이 아니라 그 시대의 인문주의자들이 공통적으로 동경했던 사회이기도 하다.

   
르네상스 시대 탁월한 인문학자 에라스무스의 초상화. 한스 홀바인의 그림.
모어가 살던 시대는 경제적으로는 농민들이 토지로부터 추방되던 시대였고, 정치적으로는 왕이 귀족을 억누르면서 권력을 집중해 가던 시대였다. 그렇다면 사상과 문화의 측면에서 그 시대는 과연 어떤 시대였을까? 흔히 '문예부흥'으로 번역되는 르네상스 운동이 절정에 이르렀던 시대이다. 르네상스란 14세기에서 16세기까지 초기 시민계급의 발흥과 함께 나타난 다양한 문예운동과 사상운동을 의미한다. 르네상스 운동은 크게 아트 르네상스와 휴머니즘 르네상스로 구분하는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문학과 미술 분야에서 활발하게 일어난 것이 아트 르네상스이다. 문학에서는 '데카메론'을 쓴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1375)가, 미술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등이 아트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다.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의 그림과 조각에서 나타나듯이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은 그때까지 사제복에 갇혀 있던 인간의 육체를 해방시켰다.

   
낙원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 중세 농민들의 삶을 낙원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토지에서 추방되는 그 심정은 아마 낙원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만큼 처참하였을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화가 마사치오의 작품.
아트 르네상스가 인간의 감정과 육체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다면, 휴머니즘 르네상스를 주도한 휴머니스트들은 인간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분석하고자 하였다. '인문학'이라는 용어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휴머니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의 사상가가 바로 토머스 모어와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6~1536)이다. 르네상스 운동의 의의는 흔히 '인간(개인)과 세계의 발견'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중세적 세계관은 우리를 둘러싼 자연과 인간의 질서는 오직 신의 섭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며, 개인은 교회와 사제를 통하지 않고서는 신의 섭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세계관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그 자신의 질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교회를 통하지 않고서도 개인이 그 질서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자들은 인간의본성을 탐구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이 진정으로 탐구하고자 한 것은 인간적인 삶을 위한 조건들은 무엇이며 그것들은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유토피아'에 묘사된 시민참여의 민주정치와 공정한 사법체계의 실현, 귀족계급의 탐욕과 착취 및 그로 인한 부의 불평등의 지양, 모든 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한 불가결한 수단으로서 노동의 미덕에 대한 찬양,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성에 대한 보편적 긍정 등이 바로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했던 가치들이다.

토머스 모어가 묘사한 유토피아 사회의 모습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6시간 노동제이다. 영국의 노동자들이 10시간 노동제를 요구한 것이 무려 300년 이후의 일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누구나 똑같이 하루에 6시간만 일하면 충분히 필요한 재화를 얻을 수 있다는 모어의 주장은 혁명적이다 못해 비현실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모어의 주장은 당시의 영국 사회에서는 인구의 절반을 넘는 사람들이 노동하지 않으므로, 누구나 똑같이 노동한다면 6시간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그 자신이 기득권층에 속했던 모어의 한계도 드러난다. 모어가 이야기한 인구의 절반이란 주로 여성들이다. 만약 모어가 귀족이 아니라 농민이었다면 여성들은 일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 참상을 비판하면서 걸인들은 게으르고 비도덕적이어서 노동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도 모순된다. 그것이 비단 모어 개인의 한계라기보다 빈곤 문제에 대한 그 시대의 보편적인 인식이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노동에 대한 모어의 통찰은 그 시대보다 오히려 지금 우리 사회에 더 올바른 것 같다. 거의 인구의 절반에 이르는 여성들과 청년들이 일하고자 하여도 일하지 못하거나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 똑같이 하루에 6시간만 노동하고도 누구나 원하는 만큼의 재화를 얻을 수 있는 사회, 그것은 과연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에 불과한 것인가.


# '바보예찬'을 쓴 에라스무스, 혁신적 사상과 실천의 괴리

   
'유토피아'는 안트베르펜 시청의 호적 담당 서기인 피터 힐러스(Pieter Gilles, 1486~1533)와 우연히 만나는 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힐러스는 모어의 절친한 친구이자 당대 가장 저명한 인문학자인 에라스무스의 제자이다. 탁월한 언어학자, 문법학자, 수사학자였던 에라스무스는 특히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하였고, 이런 어학 능력을 바탕으로 고대 문헌의 연구에 정진했다. 휴머니즘 르네상스 운동의 목표가 고전 정신의 부흥이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에라스무스가 이 운동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존경받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에라스무스는 영국을 방문해 토머스 모어를 만난 이후로 평생 동안 교유하였다. 에라스무스의 대표작인 '바보 여신의 바보 예찬(Moria Encomium id est Stltutuae Laus, 1511·사진)'도 모어의 집에 머무는 동안 그의 권유로 쓴 책이다.

   
이 책에서 에라스무스는 '바보 신'을 등장시켜 교회와 권력의 위선을 신랄하게 풍자하면서 중세사회의 사상적, 제도적 모순을 비판하였다. 교회는 이 책을 금서로 정하였지만, 불길처럼 번져 가는 인문주의의 확산을 막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 에라스무스의 학문 활동은 고대 문헌에 대한 연구에만 한정되었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는 철학이나 역사에 대해서는 그다지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했으며, 정치와 경제 등의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그러했다. 무엇보다 그는 교회와 전제군주제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정작 현실의 개혁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이러한 이론과 실천의 대립은 종교개혁에 대해 그가 보인 모호하고 우유부단한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이는 에라스무스의 은둔적인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속적인 지위와 명예를 가지지 못한 데서 나온 현실문제에 대한 의도적인 무관심 때문이기도 하였다.

조준현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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