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화가 한스 홀바인이 그린 토머스 모어의 초상화. |
우리는 자본주의에 살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본주의란 무엇이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어렵다. 어떤 이는 누구나 말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 수세기 동안 많은 철학자들과 역사가들도 우리와 같은 고민들을 하였다. 자본주의를 올바로 이해하는 데 가장 현명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바로 그들이 남긴 책들을 다시 읽어 보는 일이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역사적 측면, 경제적 측면, 사회적 측면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평가되는 10여 권의 책을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각각 5회 내외로 소개해 보고자 한다.
- 세상에 없는 이상향을 내세워
- 현실을 비판한 토마스 모어
- 그가 비난한 엔클로저 운동은
- 소작농을 농토에서 쫓아낸 동시에
- 노동력을 팔아 먹고사는
- 노동계급의 출현을 가능케 했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다니? 그런 해괴한 일이 도대체 어디에서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바로 나으리의 나라 영국입지요. 영국에서는 지금 양이 사람을 잡아먹고 있답니다."
1514년 여름, 영국의 저명한 사법관인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7~1535)는 에스파냐와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외교 사절로 네덜란드의 안트베르펜에 체류 중이었다. 아직 네덜란드가 독립하기 이전, 에스파냐 왕의 영토이던 시절의 일이다. 어느 날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숙소로 돌아가던 모어는 우연히 라파엘(Raphael)이라는 이름의 항해가를 만난다. 라파엘은 모어에게 자신이 탐험한 여러 대륙과 섬들,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갖가지 기묘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가운데 모어가 가장 흥미를 느낀 곳은 바로 유토피아라는 섬이다. 토머스 모어의 저서 '가장 나은 사회상태 또는 새로운 섬 유토피아에 대해(De optimo reipublicae statu, deque nova insula Utopia, 1516)'는 바로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유토피아(Utopia)는 없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ou'와 장소라는 의미의 'toppos'를 합쳐 만든 말로, 곧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이다. 모어는 유토피아를 처음에는 'Nusquama', 영어로는 'nowhere' 즉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고 불렀다. 모어는 왜 존재하지도 않는 이상향을 이야기하고자 했을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과의 대비를 통해 당시 영국의 비참하고 비인간적인 현실을 고발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의 이야기인 동시에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현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 |  |
| '유토피아'에 실린
유토피아 섬의 지도. |
모어가 살았던 16세기 초 영국의 가장 중요한 산업은 모직물이었다. 원래 유럽에서 모직물 생산이 활발한 곳은 프랑스 북부의 플랑드르 지방이었으며, 영국은 모직물의 생산보다 양모 수출의 비중이 더 높았다. 그러나 백년전쟁(1337~1453)에서 프랑스에 패하면서 영국은 양모 수출을 금지하는 대신 모직물을 직접 생산하도록 장려하였다. 그런데 모직물 산업이 융성해지자 원료인 양모가 부족해지면서 가격도 등귀하였다. 이에 지주들은 농경지를 목초지로 바꿔 대규모로 양을 기르기 시작하였다. 농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던 땅에는 양을 가두기 위한 울타리가 둘러졌다. 이것이 엔클로저(enclosure) 즉 '울타리치기' 운동이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엔클로저란 말 그대로 토지의 둘레에 울타리를 친다는 뜻이다. 엔클로저 운동은 여러 번에 걸쳐 나타났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양을 키우기 위해 일어난 16세기의 목양 엔클로저와 대규모 농업 경영을 위한 18세기의 농업 엔클로저이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비판한 것은 바로 목양을 위한 울타리치기가 한창 벌어지고 있던 당시의 영국 사회이다. 농경지가 목초지로 바뀌면서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것은 바로 그 땅에서 대대로 농사지어 온 농민들이었다. 봉건 사회에서는 법적인 토지 소유자와 별개로, 농민들에게도 관습적인 경작권 또는 보유권이 인정되었다. 이 때문에 농민들은 자기 마음대로 토지를 떠날 수도 없었지만, 반대로 영주나 지주라 하더라도 자기 땅에서 농사짓는 농민을 마음대로 내쫓지 못하였다. 봉건제가 천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농민과 토지가 하나로 결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엔클로저 운동으로 이 결속이 해체되면서 농민들은 토지로부터 내쫓기게 됐다. 물론 토지로부터의 추방은 다른 한편에서 보면 토지로부터의 해방이기도 했다. 이제 농민들은 지주의 구속 없이 토지를 떠날 수 있게 됐다. 자본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한편에서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계급이, 다른 한편에서는 '두 가지 의미에서 자유로운(free)' 노동자계급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 의미에서 자유롭다는 말은 봉건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의미와 동시에 아무런 생산수단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봉건제로부터 자본주의로의 역사적 전환의 출발점을 엔클로저 운동에서 찾는 이유도, 이처럼 두 가지 의미에서 자유로운 노동자의 출현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엔클로저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주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되었다 하더라도 정작 농민들에게는 갈 곳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아직 산업혁명이 일어나려면 이삼백년을 더 기다려야 했던 때이다. 농민들을 받아들일 만한 공업 부문이 성장하기 훨씬 이전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농민들은 무작정 도시로 흘러들어가 부랑자가 되거나 굶어 죽어야만 했다.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양은 보통 온순하고 조금밖에 먹지 않는 동물이지만, 지금은 아주 게걸스럽고 포악해져서 사람들까지 먹어치운다"고 묘사한 것은 바로 이러한 현실이었다. 이런 일이 그저 16세기의 영국에서만 일어났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똑같은 일이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령 시작해 보지도 못하고 좌절된 용산재개발사업이 그 좋은 예이다. 이 사업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집에서 내쫓기고 다치고 감옥에 가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어야 했는가. 16세기의 영국에서는 양이 사람을 잡아먹었지만,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는 쇼핑몰이 사람을 잡아먹고 있는 것이다.
# 거지로 변한 왕자가 중세말 영국 빈민가에서 본 것은
■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
| |  |
| 국교회로 개종하기를 거부한 여성들이 화형에 처해지고 있다.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에 삽입된 그림이다. |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은 흔히 가장 미국적인 작가, 미국 문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런데 그의 소설 '왕자와 거지(The Prince and the Pauper, 1881)'의 배경은 미국이 아니라 토마스 모어가 살았던 헨리 8세(1491~1547) 시대 영국이다.
아들에 집착했던 헨리 8세는 첫 부인 캐더린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그녀와 이혼하고 앤 볼린과 결혼하려 하였다. 그런데 교황이 이혼을 허락하지 않자 헨리 8세는 영국 국교회를 설립하고 자신이 그 수장이 된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모어는 국교회의 설립에 반대했고, 끝내 사형에 처해진다. 우여곡절 끝에 왕비가 된 앤 역시 아들을 낳지 못해 참수되고, 헨리 8세는 세 번째 왕비인 제인 세이모어에게서 드디어 아들을 본다. 바로 '왕자와 거지'에서 옷을 바꿔 입은 그 왕자로, 나중에 에드워드 6세(1537~1553)가 된다.
거지와 옷을 바꿔입은 에드워드가 경험한 런던의 빈민가와 거지 소굴은 엔클로저 운동으로 땅을 빼앗기고 부랑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영국 민중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여 준다. 당시의 법률은 구걸을 하다가 체포되면 몸에서 피가 날 때까지 태형을 당했으며, 두 번째에는 태형과 함께 귀를 잘랐고, 세 번째에는 교수형에 처하도록 하였다. 이에 대해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이런 형벌은 그 자체로 공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둑을 막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하였다. 생존의 경계에 내몰린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무서운 형벌도 소용없는 법이다.
조준현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 저자약력
-부산대 경제학과, 동대학 대학원 졸업(경제학 박사)
-중국인민대학 초빙교수 역임
-저서 '중산층이라는 착각', '승자의 음모', '19금 경제학'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