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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선 갤러리의 김재선 대표가 전혁림 화백의 작품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 한국국제아트페어 산파역 큰 보람
- 좋은 전시도 관람객 없으면 도루묵
- 도심으로 옮겼으니 자주 들르세요
부산 해운대 달맞이언덕. 이곳은 부산의 대표 화랑들이 밀집한 화랑가로도 유명하다. 어림잡아 스무 군데가 각양각색의 색깔로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시계를 16년 전으로 돌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찻집은 드문드문했고, 갤러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유일했던 갤러리 한 곳은 휴관 상태였다. 그때 30대 초반의 주부가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졌다. 올해로 16년째 갤러리를 운영하는 김재선 갤러리의 김재선 대표다.
"알고 지내던 문화계 인사들이 모두 '미쳤다'고 했어요. 갤러리를 하려면 남천동이나 광안동에서 해야 한다고요. '전시장에서 바다가 보이는 갤러리', 지금은 흔하지만, 그때는 특이했어요."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부산에서 갤러리는 광복동이나 대청동, 중앙동 주변이었다가, 1990년대에 남천동·광안동 시대를 맞았고, 2000년대 들면서 비로소 달맞이언덕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가 한발 빨랐던 셈이다.
부모의 반대로 미술을 전공하진 못했지만, 김 대표는 늘 그림과 함께했다. 남천동에 작업실을 열고 세 번의 개인전을 치렀다. 부산 문화 전반에 관한 관심도 커 활동하던 단체도 여럿이었다. 문인들과 함께 달맞이 문화축제를 만들고, 갤러리 페스티벌을 만드는 등 보람 있는 시도도 했다. "처음에는 공간을 둘로 나눠 부산문화신문 발행과 갤러리를 겸했어요. 부산에서 어떤 문화활동이 일어나는지 소개하고 싶었죠. 2년 반을 병행했습니다." 국내 최고의 미술품 거래행사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의 전신이 된 아트페어를 제1회 부산비엔날레에 맞춰 미술인들과 함께 부산문화회관에서 개최한 것도 보람이다. "한창 활동할 때는 화랑계 선배가 '달맞이 다람쥐'라는 별명을 붙여 줬어요."
불황기라 불리는 최근 3~4년 새 그는 아트페어에서 답을 찾고 있다. 많을 때는 홍콩, 마이애미, 쾰른, 싱가포르 등 국내·외 아트페어 여덟 군데를 다녔다. "해외는 한 번 움직이면 수천만 원이 들지만 가야 해요. 횟수가 늘수록 우리 작가를 찾는 해외 컬렉터가 늘고 있어 힘이 납니다."
그는 최근 해운대 우동 마린시티로 둥지를 옮겨 이전 기념전으로 '전혁림'전시를 소개 중이다. 규모는 대폭 줄였고, 음료·식사를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을 곁들였다. "지금은 살아남아야 합니다. 좋은 전시를 기획해도 보러 오지 않으면 소용이 없잖아요.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으로 옮겼으니 오가며 작품을 자주 보러 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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