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면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이라는 시구가 자꾸 생각난다. 저자 김병익은 '문학과지성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다 문학과지성사를 세워 문학평론가, 출판인, 저술가로 일했다. 그의 삶에 한국 현대 문학과 인문·학술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고희를 훌쩍 넘긴 그가 펴낸 산문집 조용한 걸음은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저자가 평온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됐다. 문학과 세상에 대한 에세이, 동료 문인에게 보내는 축사와 추모사, 최근 읽은 책들에서 연유한 소감 등이다.
에세이를 모은 1부 '돌아보며, 바라보며'는 다소 쓸쓸하다. 젊은 세대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뒤로 물러난 저자는 그가 겪어온 굴곡 많았던 시대를 돌이켜보고 새로운 세대를 관조하면서 그들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2부 '도저한 정신들'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박경리, 박완서, 김수영, 오규원, 황순원, 이청준 선생 등과의 만남과 인연을 소개한다. 그들의 '도저한'(철저히 정도에 가깝다는 뜻) 정신을 잇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려준다. 3부 '가장자리에서 서성이다'는 책과 함께 살아온 저자의 다양한 일화와 날카로운 시각이 드러난다.
힐링이 대세인 시대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왔고 우리말 글쓰기에 천착해온 출판 거장이 삶의 지혜를 편안한 문장에 담아낸 이 책을 읽는 것도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해주는 힐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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