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전시 때 일부 진품 아니어서 곤혹
- 추상 계열 전시로 미술계 주목 받아
- '화상은 최고 컬렉터 돼야' 철칙 지켜
공간화랑과 조현화랑은 부산 화랑가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각각 1975년과 1989년에 개관한 두 화랑은 소재지는 지역이지만, 전시는 세계적이다. 좋은 시절, 나쁜 시절 거치면서 오늘에 이른 두 화랑은 국내외 유명 작가들을 선보이며 시민의 목마름을 달래 주었다.
부산 광안리에서 '월드 화랑'으로 문을 연 조현(사진) 대표는 컬렉터로 미술계에 입문했다. 사진을 전공한 그는 당시 다른 사업을 하고 있었지만, 주변 사람이나 여건이 늘 미술계로 향하게 했다. 지금도 그는 첫 전시를 떠올릴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한다. "컬렉션한 작품을 엄선해 전시를 열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20%가 진품이 아닌 겁니다. 오랫동안 거래했던 사람들에게 속은 거죠. 제대로 공부하고 시작해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조 대표는 잠시 화랑 문을 닫은 후 해외 유명 갤러리와 아트페어를 문턱이 닳도록 찾아다니며 세계 미술 흐름을 배웠다. "정말 놀랐습니다. 그때 우리는 윤중식, 박수근, 도상봉 등(구상 작가)의 시대였는데 외국의 현대 미술은 형태가 없는 비구상이었죠. 전혀 다른 방향이더라고요." 미니멀리즘의 대가인 이강소, 박서보 등을 만나는 계기였다. 당시로써는 서울에서도 하지 않는 추상 계열의 전시를 부산에서 선보이면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고, 해당 작가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들의 소개로 백남준 전과 요셉 보이스 전도 부산에서 성사시켰다. 앤디 워홀, 피에르 술라주, 살바도르 달리, 야요이 쿠사마 등도 모두 거쳐 갔다.
"작가분들이 공부를 시켰어요. 해외 아트페어를 다닐 때 며칠씩 함께 지내면서 온갖 것을 배웠어요. 정말 운이 좋았죠." 그들의 인연은 20년이 지나도 한결같다.
조현화랑은 미술계 최대 불황이라고 불리는 지금도 연간 6~7번의 기획전을 치른다. "기획전은 멈추면 안 됩니다. 고객이 우리 화랑을 잊지 않게 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요즘 같은 위기 때는 젊은 작가로 눈을 돌립니다. 고객도 시장 흐름을 타니까요. 작가를 재발굴하면서 세계의 작가들을 훑어보죠."
"좋은 화랑은 창고가 말해 준다"는 철칙을 지키는 그는 화상 스스로 최고의 컬렉터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고객의 작품이 언젠가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최고의 작품을 팔아야 한다는 원칙도 지켜야 한다. "대부분 20년 후를 내다보고 전시를 해요. 좋은 작가와 함께 가고 좋은 작품을 많이 알려놔야 화랑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해운대 달맞이언덕에서 매일 새 작품을 접하며 자기 안목과 싸울 수 있다는 점에서 화상으로서의 그의 삶은 "정말 복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