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세대 미디어 이론가인 귄터 안더스의 1956년 저서 '인간의 골동성(Die Antiquiertheit des Menschen)'에서 다룬 인간과 기술의 격차에 관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미디어의 발전 속도는 하루가 다르게 앞으로 나가는 데 반해 인간 신체의 한계와 사고 및 연산 처리 능력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덧붙여 라이브 공연 문화와 항상 비교 대상이 되어왔던 영상 문화의 발전 속도를 염두에 두고 영국 연극계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을 돌아보며 잠시 연극의 골동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수많은 미디어 가운데 특히 연극이라는 장르의 생산 방식은 아직도 그리스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복제가 불가능하며 여전히 몸과 몸이 모여 실제로 부딪혀가며 땀 흘려 연습해야 한다. 이에 비해 현대인들은 주머니 속에 이동하면서 볼 수 있는 영상 모바일 기기가 있어 자연스럽게 감각기관의 편향적 발달과 이에 따른 영상 미디어의 우위를 느끼고 살아가는 듯하다.
이러한 미디어의 우위는 누가 정해주지 않았지만 잘 나가는 영국 영화배우는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라도 TV 드라마나 연극 무대 정도는 쉽게 이동할 수 있으며, 유명한 TV 탤런트 또한 경우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영화에 출연할 수 있고, 연극 무대는 너무나 간단히 결정할 수 있다. 반면 유명한 연극배우가 언제나 영화나 TV에 원하는 대로 이동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SC)를 창단하고 영국 국립극장장을 역임한 케임브리지 출신의 세계적인 연극 연출가 피터 홀 역시 얼마 전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딸 리베카가 배우생활의 시작을 연극이 아닌 영화로 선택한 이유를 영화가 가진 파워를 이용하려 한다고 담담하게 고백한 적이 있다.
또 연극인들의 영상매체로의 유출은 어떤가? 많은 이들이 연극 무대에서 출발해 마지막 목표를 영상문화 진출로 잡고 있다. 마치 영상문화를 흉내라도 내듯이 라이브 무대에 무분별하게 영상을 사용하는 방식이 점차 늘어나고, 영상문화에서 봐온 스타들이 무대에 올라 완성도에 관한 의구심을 가지게 하며, 이들이 빠져나간 곳엔 자연스럽게 연극인들(또는 연극계 전체)에게 찾아드는 공허감이 자리한다. 이 모든 것이 영국 이야기지만 한국도 유사할 것이다.
'돈으로 빛을 만들어 그 빛으로 돈을 번다'는 영화가 인류의 역사로 보자면 비교도 되지 않을 화석과 같은 연극 장르를 뛰어넘어 주목받는 첨단산업이 되고 가장 대중적인 예술로 자리 잡았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영상이미지가 그토록 이른 시간에 우리를 지배해버린 것은 무슨 이유인지, 연극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한결같이 제작됐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토록 이른 시간에 공연문화가 영상문화에 잠식당한 것일까?
실제 영국에서 3세대 미디어이론과 관련해 불리는 용어 가운데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라는 단어가 있다. 세계는 두 종류의 인간으로 구분되는데 현대 정보화 기술의 총체인 스마트폰, 비디오 게임, 소셜네트워크, 인터넷 등의 디지털 기술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영국의 공연 문화 관객은 우리와 다르게 중장년층이 두텁다. 런던에선 빠르게 흘러가는 영상과 디지털 기술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을 두고 관객의 고령화를 고민한다. 이들에겐 우리 인간의 몸을 바탕으로 천천히 진행되는 라이브 공연문화가 더 친숙한 미디어가 아닐까?
과연 연극이란 장르는 영상 문화로 도배된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어떤 이는 젊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또는 (장치)제작비를 낮추는 방식으로 영상을 쓰는 경향이 늘고 있다고 변명한다. 뮤지컬의 확산 및 라이브 공연의 복제, 라이센스 공연(라이브 공연임에도 관객과의 교류 없이 마치 영상 연기를 보는 듯 한 현란한 공연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 관객이 끼어들 틈이 있는가?)이 난무하는 이 시기에 무대의 영상문화 채용을 연극의 진보로 봐야 할 것인지 퇴화로 볼 것인지, 부산연극제 기간 모든 연극인과 현재 영국이 당면한 쟁점들을 공유하면서 영국 편을 마치고자 한다.
김준영 ILOVESTAGE 대표 junyoung.kim@ilovestage.com